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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486

연산이시여, 애는 썼습니다만 연산군 말기, 왕이 조정 신료들에게 새 사모紗帽의 견본을 내린다. 그리고 가라사대 ㅡ "앞에는 '충忠'자, 뒤에는 '성誠'자를 전서체를 써서 새겼으니 대개 신하된 자로 하여금 늘 충성을 품으라는 것이다. 또 사모의 두 뿔을 내려 어깨 위로 늘어뜨리도록 했으니 임금이 위에서 아래를 제어하라는 뜻을 드러냄이로다." 애는 썼다만, 이로부터 1년도 안 되어 중종반정이 일어난다. 2021. 8. 15.
꽃 꽂은 노인 강감찬 강감찬이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개선하여 포로와 노획물을 바치니 왕은 친히 영파역迎波驛까지 나와 영접하였다. 임시로 만든 채색 누각에 풍악을 준비하여 장사들을 위한 잔치를 열어 주었으며, 금으로 만든 꽃 여덟 가지를 몸소 강감찬의 머리에 꽂아주었다. 왕이 왼손으로 강감찬의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술잔을 잡고서 위로와 감탄의 말을 그치지 않으니, 강감찬은 큰 절로 감사를 올리며 몸 둘 바를 몰랐다. 강감찬 열전에 기록된 한 장면이다. 이 부분이 워낙 인상깊었는지 후대의 사서들에서 강감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2021. 8. 7.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vs.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같은 글인데, 구두점을 다르게 찍으니 묘하게 뜻이 달라졌다. 과연 어느 것이 추사 선생의 의도에 가까울런지. 2021. 8. 7.
한글학자의 한문서예 한갑수(韓甲洙, 1913-2004), 그 이름을 이 분이 살아계실 때 들었던 기억은 없다. 어느 책 안에서 '한갑수' 석 자를 보았던 적은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사실 이 분을 잘 모른다. 네이버가 제공하는 에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나온다. 1913년 6월 26일 경기도 가평군에서 태어났다. 호는 눈메, 왈례(曰禮), 목원(牧原)이다. 1933년 전라북도 고창고보(지금의 고창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41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과를 졸업하였고, 주오[中央]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성악을 공부하였다. 1948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이어 중앙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1954년 미국공군대지휘참모학교를 졸업하였고, 1975년에는 미국 유니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 2021. 8. 1.
한국과 악연으로 얽힌 일본 관료, 미즈노 렌타로水野錬太郎 이준익 감독의 영화 을 본 이들이라면 1923년 관동대진재 때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조선인 학살을 주장했던 콧수염 아재(김인우 분)를 기억할 것이다. 그가 바로 당시의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 수야련태량水野錬太郎[1868-1949]이다. 그는 아키타 현 태생으로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엘리트 관료였다. 농상무성, 내무성의 여러 관직을 거치고 귀족원 의원, 내무대신까지 올랐다가 1918년의 '쌀폭동'으로 물러나 있었는데, 1919년 재기의 발판을 얻는다. 3.1운동으로 일제는 조선의 통치방침을 '문화통치'로 바꾸게 된다. 그때 일본 수상이었던 하라 다카시(原 敬, 1856-1921)가 미즈노에게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자리를 권유한다. 정무총감이라면 조선총독부의 2인자 자리로 조선의 입법, 사법, 행정을 .. 2021. 7. 21.
꽃남, 화랑花郞 은 고려 중기의 문인 이인로李仁老(1152-1220)가 지은 시화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에는 고려 이전, 특히 신라시대 이야기도 적잖이 들어있다. 김유신과 천관녀 이야기가 나 도 아닌 에만 실려있는 것처럼, 그가 담은 신라 이야기는 상당히 사료적 가치가 높다. 그 중 권下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화랑 얘기를 보자. 이 글만으로 우리가 대강 알고 있는 "나라를 위해 목숨바치는 우국지사" 화랑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글자 그대로 "꽃남"들을 뽑아서 일종의 마스코트를 삼은 듯이 묘사하고 있는데, 신라시대에 화랑이 어땠는지는 둘째치고, 고려 중기 "화랑"의 이미지란 그런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2021.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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