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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515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의 책 수집 이야기, 성궤당한기成簣堂閑記 "이순신은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나서도 이겼다." 이순신(1545-1598)을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지은 이는 일본 근대의 언론인이자 사학자였던 도쿠토미 소호(1863-1957)다. 그가 지은 의 임진왜란 부분에 저 글이 나온다던가(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동생도 당대 문필가로 유명했던 도쿠토미 로카(1868-1927)인데, 그는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유묵을 갖고 있던 것으로 우리에겐 유명한 인물이다. 젊어서는 민권운동에 깊이 관여했으나 나이가 들수록 군국주의에 기울어지고 끝내는 A급 전범으로까지 기소된 인물 도쿠토미 소호. 어떤 사람은 그를 두고 '일본 군국주의의 괴벨스'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런 그도 한국과 인연이 없지 않다. 초대 조선총.. 2022. 4. 3.
제주도 오미자가 참 맛있더구만 기묘명현의 한 사람으로 훗날 사림의 추앙을 받았던 충암冲庵 김정(金淨, 1486-1521)은 지금의 동문시장 근처에 살았다. 제주 유배살이에 그런대로 잘 적응을 했던 모양인지, 그의 문집 곳곳에는 제주 사람들과 소통한 흔적이 남겨져 있다. 그때도 동문시장이 있었다면 아마 시장을 드나들며 국밥 한 그릇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애초 충암 본인이 트인 성격의 소유자인데다가, 주변 환경에 대한 호기심도 많았던 모양이다. 제주의 이모저모를 기록한 도 그런 호기심의 소산이라고 해야겠다. 관심이 없었으면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을테니까 말이다. 그 중엔 이런 내용이 있다. 제주의 토산물을 얘기하는 대목이다. "오직 토산물로는 표고버섯이 가장 많고, 오미자五味子도 많이 나는데, 씨가 아주 검고 커서 마치 잘 익은 머.. 2022. 3. 9.
심향 박승무, 눈을 내려 세상을 달래다 심향 박승무(1893-1980)라는 화가가 있다. 한국화 근대 6대가의 하나로 꼽히는 인물로, 특히 눈 내린 겨울 산수화에 능했다. 짙고 옅은 먹에 아주 약간의 채색만 더했던 그의 설경이 어찌나 인기있었던지, 설경 주문만 들어온 까닭에 사다 놓았던 물감을 채 다 써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작가로서는 손해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설경을 보면 왜 그렇게 인기있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의 겨울은 따뜻하다. 겨울 그림이 따스하다니 의아할지 모르지만, 바람이 불어 스산한 풍경이 아니라 눈 개어 평온해진 정경이기에 가능하다. 하늘은 잔뜩 흐리지만, 눈을 이고 진 산이며 마을은 어둡지 않다. 자박자박 눈길을 걸어오는 등 굽은 노인은 꼭 색 있는 옷을 입으신다. 지루한 설백색에 한 점 포인트가 .. 2022. 3. 7.
추사秋史와 일본도日本刀 섬이라는 지형상, 제주에는 바다에 나갔다가 표류하여 외국에까지 흘러가는 이가 적지 않았다. 아예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겠지만,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동아시아 각국은 표류민에 상당히 관대해, 먹을 것을 내어주고 잘 대접한 뒤 고이 돌려보내주곤 했다. 우리의 추사 김정희(1786-1856) 선생이 제주에 머무를 때도 그런 과정을 거쳐 일본에서 돌아온 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추사의 제자 박혜백朴蕙百이 어쩌다 그런 사람을 만났는데,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몰라도 그가 사무라이들이나 갖고 다니는 일본도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수를 썼는지 그가 그 칼을 얻어와서 스승 추사에게 보여드렸다. 붓의 대가 추사와 '니뽄도'라니 이렇게 안 어울릴 수가 있나 싶지만, 사실 추사는 일본 칼이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 2022. 3. 7.
백송白松 지창한池昌翰, 그 사람이 사는 법 관북關北이라 불린 함경도 일대는 옛부터 무사들이 많이 나기로 유명했다. 그 이유로 흔히 높고 험준한 산이 많은 자연환경, 여진족이 틈만 나면 쳐들어오는(원래 함경도 땅의 상당수가 여진족의 터전이기도 했으니까) 사회환경을 들곤 한다. 그런데 그 말인즉슨, 문인이나 예술가가 나타나기는 어려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성계가 태어난 용흥지지龍興之地였음에도 조선왕조 500년 내내 함경도 출신 과거합격자는 드물었고 관료가 된 이들은 더더욱 적었다. 같이 차별받았음에도 관서關西 평안도와는 달리 19세기 함경도 문인들은 자신들이 차별받는 현실에 체념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하는데, 여러 모로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장유승 선생님의 라는 논문을 참조바란다. 이런 모습이 180도 달라지는 게 이른바 근대 개화기의.. 2022. 2. 20.
고려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었다 27년(1073) 정월에 유사(有司)가 아뢰기를, “법전[令典]을 살펴보건대 ‘공장(工匠)과 상인(商人)의 집안은 기술을 가지고 윗사람을 섬기니, 그들의 업(業)에 전념할 것이며, 관직에 올라 선비[士]와 나란히 할 수는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군기주부(軍器注簿) 최충행(崔忠幸)과 양온령동정(良醞令同正) 양운(梁惲)은 모두 공장의 외손이며, 별장(別將) 나례(羅禮)와 대정(隊正) 예순(禮順)도 역시 공장의 적손(嫡孫)인데 스스로 조정(朝廷)의 관리[九流]을 흠모하여 그 업을 던져버리고 이미 조정의 반열에 올라왔으니, 다시 공장으로 충원할 수는 없사오나, 바라건대 각자 지금의 직책으로 제한하시고 옮겨 제수(除授)하는 것을 허용하지 마시옵소서.” 라고 하였다. 제서(制書)를 내리기를, “신해년(1071)에.. 2022.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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