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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회는 호가 염재(念齋), 염재(恬齋), 호산(壺山)이다. 화순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한학자이자 서화가이다.
숙부인 사호(沙湖) 송수면(宋修勉, 1847~1916)의 제자로 16세에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22세에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1909년 7월 《대한매일신보》 기자로 잠깐 동안 근무하였으며, 1920년 고창으로 이거하여 고창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한문과 역사를 가르쳤다.
이후 오산보통고등학교는 고창고등보통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오늘날 고창고등학교이다.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1922년부터 31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 서예에 2회 입선하였으며 문인화 부문에서 6회 입선하면서 화단에서 활동하였다. 고암 이응노(李應魯, 1904~1989)를 지도하기도 하였다.
매천 황현, 의재 허백련, 위창 오세창 등과 교유하였다. 호남의 사찰에 그가 쓴 현판이 대단히 많다.
이 그림에는 "고창고등보통학교 부근 풍경(高敞高等普通學校附近風景)"이라는 제목으로 "1928년 가을날 양태승 군을 위해 모양성 아래 우사에서 염재 송태회가 그렸다[戊辰秋日爲梁泰承君寫牟陽城下寓舍 念齋宋泰會]"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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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서화가 송태회 선생 삶 조명(종합)
2010-09-24 14:18
https://www.google.co.kr/amp/s/m.yna.co.kr/amp/view/AKR2010092411520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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