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69 2008년 2월의 이란 길란고원 동굴 테헤란 북쪽 카스피해 인근 길란 지방 원시림을 헤매며 동굴탐사를 하던 시절 몇 장면이다. 이 장면은 나도 여러번 소개한 적 있으니 이건 당시 동행한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 촬영이다. 심광주 이기환 둘은 정년퇴직했고 신희권은 이후 냅따 시립대로 튀었으며 김충배는 지금은 국립고궁박물관 옮기고는 과로로 고개가 돌아갔다. 이 한국산 똥차로 산길 밟아 해발 이천 고지를 올랐다. 재수 없어 1년 차이로 55세 정년 퇴직한 서동철은 비정규직 임시사원으로 같은 서울신문 논설실에 출근 중이다. 지표조사 일인자는 김충배. 동굴조사하라고 충배를 밀어넣고 우리는 희희낙락했다. 저땐 다 젊었다. 물론 현재의 우리한테는 말이다. 세월은 우사인 볼트보다 빨랐다. 2023. 7. 5. 유네스코를 뒤덮은 일본 기자들과 단 한 명의 한국기자 꼭 8년 전 오늘, 2015년 7월 4일 나는 저 한 장을 독일 본에서 투척하며 이리 적었다. 일본 기자들은 우루루 몰려다니는데 오직 한 명인 한국기자는 우루루 몰려다니는 일본기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우리 외교차관을 따라가는 일본 기샤들 나로선 참말로 오감 육감이 교차한 순간이었다. 당시 이쪽에선 그 말 많은 메이지시대 산업유산 시설이 세계유산 등재되네 마네 하는 중차대한 유네스코 회의가 열렸거니와 이 일로 오죽이나 여론이 들끓었던가? 하지만 빈깡통에 자갈 하나 든 꼴이라 막상 현지에 한국 취재진은 꼴랑 김태식 혼자였고 일본은 물경 150명에 이르는 취재진이 몰렸으니 말이다. 저 일본 취재진이 우루루 몰려다니는 모습에 만감이 교차했다. 덧붙여 나는 그 출장을 떠나는 순간, 다른 부서로 발령났으니 저 .. 2023. 7. 4. 후지쓰카 치카시 藤塚隣, 과천의 추사 추사의 과천 그 위대한 출발 2006.02.02 10:50:14 엠바고 1차 : 2006.02.02 10:50:14 추사 관련자료 2천700여점 한국에 기증 김정희 친필 20여 점 포함, 日 추사 연구가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시서화에 두루 이름이 높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 사거 150주년을 즈음해 그의 친필 20여 점을 포함한 추사 관련 자료 2천700여 점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기증됐다. 이들 자료는 식민지시대에 추사 연구를 개척한 일본학자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1879~1948)가 평생 수집한 자료 중 그 집안에 소장돼 온 자료 일체로서, 그의 아들인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1912~)가 경기 과천시에 최근 기증한 것이다. 과천시는 2일 오전 시청 청사에서 관계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 2023. 7. 2. 문화재 이전 복원의 새로운 시도 판교박물관 문화재 이전 복원의 새로운 시도 판교박물관 송고시간 2012-12-03 15:55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2008년 1월 22일. 한겨울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성남 판교 신도시 건설현장 한복판에서 난데없는 '비닐하우스 발굴설명회'가 열렸다. 한국토지공사(지금의 LH) 판교사업단이 분당구 판교동과 삼평동 일대에 신도시를 건설하기 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의뢰해 한겨울에는 비닐하우스까지 치고서 문화재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성백제시대 석실분 7기와 고구려 석실분 2기를 합친 삼국시대 무덤 9기가 발견된 것이다. 이들 무덤은 구조가 잘 남았던 데다 무엇보다 이런 자료의 희소성 때문에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이럴 경우 신도시 건설안 자체가 대폭적인 변경이 불가피한 데다 보존 .. 2023. 7. 2. [내가 본 박경식] (3) 정영호 몰래 문을 연 한백문화재연구원 한백문화재연구원 홈페이지 제공 정보를 따라 그 개원에 즈음한 주요한 움직임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먼저 2005년 12월 2일 창립발기인 대회를 하고, 같은 달 14일 창립총회 및 이사회의를 하고는 이사장과 이사, 감사 등 정관 심의를 진행했다. 그리하여 이듬해 1월 6일 개원을 하고, 1월11일 설립 등기를 완료했으며 3월 3일 성수동에서 개원식을 공식으로 했다. 문화재청 발굴조사 승인은 2006년 4월 12일에 났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셈인데, 이걸 준비하느라 서영일과 방유리가 똥을 쌌다. 저 과정에서 박경식 형이 실은 나한테 이사로 들어와 주었으면 하고 의사타진을 했지만, 나는 현직 기자로서, 더구나 문화재 담당 기자로서 그건 곤란하다 해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거 보면 나도 참 당시만 해도.. 2023. 6. 30. 보스만 판결과 메이저리그 총파업 남들 눈엔 기자로서의 김태식이라고 하면, 대뜸 문화재를 떠올리겠지만, 23년에 이르는 기자 생활 기간 중 문화재 기자 생활은 17년에 지나지 않는다. 1993년 1월 1일, 연합통신(현 연합뉴스) 기자로 입사하는 나는 여러 곳을 전전하다 98년 12월 1일 문화부로 발령났다. 문화부 이전 나는 부산지사와 체육부, 그리고 사회부를 거쳤다. 체육부는 내 기억에 정확치는 않으나, 94년 7월 1일에 발령나서 96년 11월 30일까지 일했을 것이다. 대략 2년 반이라 치자. 이후 나는 사회부로 갔으니깐. 체육부에서는 제대로 해 본 것 없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시키는 대로 했으니, 야구와 축구도 해 봤다. 당시만 해도 외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체육 관련 외신은 국제부가 아니라 체육부에서 별도로 처리했다. .. 2023. 6. 28. 이전 1 ··· 30 31 32 33 34 35 36 ··· 6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