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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19

2005 식목일 낙산사 산불(1) "낙산사 덮치는 거 아냐?" 한국은 국경일을 비롯한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경제계 오랜 공습에 2006년 식목일이 기어이 희생되었다. 2006년 공휴일이 폐지되고 말았으니, 2005년 4월 5일이 나로서는 마지막 공휴 식목일이었다. 당시 달력을 보니 아래와 같이 화요일이다. 요즘이야 주 52시간을 넘길 수 없다 해서 기자사회 역시 엄청나게 변화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솔까 주말이건 공휴일이건 의미가 없었으니, 내가 확실히 기억하는 한 가지는 그날 나는 수송동 공장 4층 편집국으로 출근해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요샌 이런 풍경이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보통 언론사 편집국은 상시로 TV 채널을 이곳저곳에 것도 졸라 큰 볼륨으로 틀어놓던 시절이라, 요새 같으면 소음 공해로 질식사하고 말 일이지만 그때는 그것이 상사常事였고, .. 2022. 3. 5.
한국 문화재 ODA 사업의 시작(1)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올림픽이랑 마찬가지로 4년마다 국가를 도는 아시안게임은 2010년에 제16회 대회를 맞았다. 이때 개최지는 중국 광동성 廣東省 광저우廣州. 홍콩과 인접한 중국 남방 해변도시로, 역사 이래 이곳은 중국대륙이 외부 세계와 교통하는 대표 창구였다. 2010년 11월 12일에 개막해 11월 27일까지 열린 이 대회는 중국으로서는 1990년 베이징에 이어 두 번째 행사였다. 올림픽 종목 28개에다가 비올림픽 종목 14개를 합친 42개 종목에 걸친 메달레이스가 펼쳐졌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 회원 45개에서 총 9천704명이 참가한 매머드급 규모였다. 선수단 격려도 있고, 외교전도 펼쳐지는 곳이므로 이른바 정계 거물도 이런 자리에는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오야붕 격으로 이재오 씨가 참석했다. 이명박.. 2022. 2. 9.
아버지 박헌영 전집을 준비 중이던 20년 전의 원경 스님 공산주의 운동가 '박헌영 아들' 원경스님 입적(종합) 양정우 / 2021-12-06 18:41:16 조계종 최고 법계 대종사·원로회의 부의장 지내…2004년 '박헌영 전집' 발간 공산주의 운동가 ′박헌영 아들′ 원경스님 입적(종합)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박헌영(1900∼1956)의 아들인 원경스님이 6일 입적했다. 세수 81세, 법랍 62년.조계종에 따르면 원경스님은 이날 오전 10시께 자신이 주지 k-odyssey.com 내가 한때나마 조선공산당에 관심을 표명하며 나름대로 관련 기사를 열심히 쓰던 때가 있었으니, 사회부에서 문화부로 전근한 98년 이래 2000년대 초반까지였다. 당시 나는 문화재와 더불어 학술을 전담했으니, 이 과정에서 학술 담당기자들이 접촉하는 .. 2021. 12. 6.
문광부, 한자병용이 씌운 덤터기 문화부로 전근하고 3개월 남짓 지난 1999년 2월 9일, 당시로는 아마 약칭으로 문광부라 했을 문화관광부가 어문정책 불을 싸지른 발표를 들고 나왔으니 이른바 한자병용이라 이 문제가 워낙 폭발성 있는 까닭에 최현배 세례를 듬뿍 받은 연세대 국어학 계열 한글순수운동주의자들과 서울대와 이희승에 뿌리를 두는 혼용 계열이 박터지게 싸웠으니 지금은 국립국어원이라 일컫는 국립국어연구원이 그 진원지였고 그 수장은 서울대 교수 심재기였다. 지금 보면 아무렇지 않게 보일 수도 있지만, 물론 한글단체들은 반발한다, 이 사안이 기름을 부었으니 언론사도 갈려서 조선 동아가 당연 찬성 쪽이었고 한겨레야 노동신문과 마찬가지로 한글전용론이었으니 이 사태는 날이 가면서 계속 불이 붙었다. 당시 문화부 인력현황은 앞서 말한대로 처참한.. 2021. 10. 13.
"문화재를 맡아주었으면 싶다"는 문화부장의 연락 "미안하지만 태식 씨가 문광부까지 맡아줘야겠어." 딱 2년에 걸친 사회부를 마치고 문화부에 배당된지 석달쯤 지난 1999년 2월, 당시 박찬교 문화부장이 나를 불러서는 이리 말하는 게 아닌가? 당시 나는 기자생활 7년차라, 이미 신참을 벗어난 시점이었으니, 이런 요청이 곤혹스럽기만 했다. 당시 문화부는 언론계에서는 이른바 간지부라 해서 체육부와 더불어 이른바 곁다리로 취급받던 시절이라, 간지부란 당시 신문발행을 기준으로 체육문화면이 신문 본판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별지로 제작되던 시절이라 해서 그리 일컬었으니, 뭐 무시경멸이 들어있었다. 그에 견주어 이른바 정경사라 해서 정치 경제 사회부가 언론계 주축으로 취급받았으니, 이런 사정이 지금이라 해서 근간에서 달라진 건 없다고 나는 본다. 문화의 시대는 허울에.. 2021. 10. 11.
《경주 꺽다리 이채경 회고록》(1) 문화재 발굴조사비, 특히 소규모 개발사업의 경우 매장문화재 발굴비용 국가 부담과 옛 문화재보호법 제44조와 제74조의 개정과 제74조의 2 신설이야기 경주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확인되고, 신라천년의 수도였으며, 신라이후 다시 천년이 넘도록 지방의 웅부(雄府)였다. 경주시의 행정력이 미치는 대부분의 지역에는 시대를 넘나드는 수많은 문화유적이 분포되어 있고, 지하에는 매장문화재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각종 개발사업과 관련하여 문화재로 인한 갈등이 매우 큰 지역이었다. 그 중에서도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비용을 사업시행자가 부담하도록 규정한 당시 문화재보호법 제44조와 제74조는 개발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문화재보호법의 가장 악명높은 조항이었고 그에 따른 민원과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경주시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각종 .. 2021.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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