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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1940

불원이천리不遠而千里하고 달려간 볼차노 Bolzano 내가 풍찬노숙하던 시절 할 일은 엄꼬 목돈은 있어야겠고 해서 계약금에 눈이 멀어 이런저런 출판사랑 노예 계약을 했더랬다. 개중엔 공동 저작도 있었으니 이 분야 전문가 A와 미라 단행본을 집필하자 하고선 국내 몇 손가락에 꼽히는 A 출판사랑 계약을 했더랬다. 애초엔 미라 개설서 한 권이었는데 공동저자가 욕심을 거듭 내는 바람에 아예 난 죽을 때까지 미라 책만 내야 할 판이라, 맨먼처 마왕퇴를 뽀개고 두번째로 바로 외치를 덮칠 작정이라, 내가 불원이천리하고 계약금보다 훨 막대한 자본을 대량으로 투하하고선 볼차노로 향한 이유가 이에서 비롯하거니와, 동기야 여하하건 모쪼록 이 시체 사업 번창일로를 걸어 나나 공동저자나 퇴임 혹은 해고되고도 남는 장사됐음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18. 7. 12) *** 아직.. 2020. 7. 12.
Le due torri, 볼로냐 쌍탑 모내기? 상여꾼? 한번에 최대 70명을 입장케 한다는데 97미터에 달하는 높이라 걸어서 오르긴 힘든 곳이니, 생각보다 사람이 붐비진 아니한다. 올라보면 그런대로 드론이 결코 대체하지 아니하는 묘미가 있으니, 중세 유럽이건 조선시대 한양이건 토지이용을 극대화하려면 비름박 다닥다닥한 ㅁ자형 건물배치밖에 생각할 수 없다. 무슨 거창한 발명 혹은 문화특질이 되는양 떠들 수는 없다. (2018. 7. 12) ***** 자빠자다 지나치는 바람에 피렌체까지 남하했다가 살아서 도착한 볼로냐. 기차역 코앞이 호텔이라 룰루랄라 물 한 바가지 뒤집어 쓰고 푹 자고는 이튿날 마침내 볼로냐 정복에 나섰으니, 찾아보니 이 쌍탑이 유명하다 해서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쌍탑은 이탈리아 볼로냐를 대표하는 아이콘과도 같다 한다. 뭐 그.. 2020. 7. 12.
문화재 변모한 독일 에센공업지구 나는 구닥다리 세대라 인문지린지 뭔지 배우는 와중에 잊지 못할 이름이 독일 에센 공업지구다. 내 세대 혹은 나보다 조금 앞선 세대는 이 말이 익숙하다. 저 공업지구가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사회 지상명령인 공업화의 상징과도 같아 아마도 저것이 모델이 되어 포철이 등장하지 않았나 한다. 지금 에센은 인구 오십만 전형의 독일 중소도시라 과거의 면모는 편린이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에센을 포함한 광역지구를 루어ruhr 라 하는 모양인데 이 루어엔 한때 육백개소에 달하는 석탄 광산이 있었다 하고 개중 260개소 정도가 에센에 있었다 한다. 이곳이 독일 산업혁명 중심인 셈인데 1950년대까지만 해도 매연에 일조량 70프로가 차단되어 대낮에도 가로등을 켰다 하며 하루에도 거리 청소를 서너번 했다 한다. 이곳 석.. 2020. 7. 11.
Stained Glass at Cologne Cathedral, Germany 쾰른대성당 스테인드 글라스... 황홀하더만... 이 글라스에 얼이 빠져 첨답 오를 시간이 없었다. (2015. 7. 11) 2020. 7. 11.
2016 아프가니스탄 황금문화 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이 목하 개최 중인 아프가니스탄 황금 특별전은 기원전후, 그러니깐 이 지역이 알렉산더 원정으로 그리스로마 문화가 이식하고서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시기에 집중한다. 저 금관은 언제나 신라 금관을 논할 때면 그 원류 혹은 비교자료로써 빠지지 않는다. 이 아프간 고대문화는 우리로서는 아직 생소 혹은 이질이라는 말과 등가다. 한데 가만 보면 그 하나하나 기시감은 있어, 살피면 다 족보가 있다. 저 황금 문화 역시 가찹게는 현지 문화와 결합한 그리스로마문화와 결탁할 듯 하나 실은 그 면면한 전통 중 하나로 소위 켈트 문화도 간취할 수 있다고 본다. 암튼 이번 출품작은 일본을 거쳐 온 것으로 이미 왜국땅에서 그 선험을 경험한 이도 주변에 더러 있거니와, 아푸간 현지 사정이 개떡인 지금 그 문화 정수라 할.. 2020. 7. 11.
경주 황성동석실분 경주 구황동 석실분 발굴에 앞선 삽질이다. 사진 내장정보는 2005.3.10인데 맞는지 모르겠다 윤근일 선생이 당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으로 오야붕이셨고, 윤형원은 저때 왜 찡깄지? 아....그러고 보니, 박물관에 연구소파가 몇몇 있는데, 당시 연구소-국박-민박 세 기관 학예직 교류 인사 차원에서 국박에서 파견되어 경주연구소 학예실장으로 근무할 때였구만. 꺾다리 이채경과 당시까지만 해도 정부미였던 차순철이 보인다. 이 석실분은 도굴은 명약관화했지만, 혹시 하는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 용강동 발굴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굴이 생각보다 더욱 철저해 실망한 기억이 있다. (2017. 7. 11) 이에 대한 당시 관련자들 증언 차순철...도굴이 심했지만 석실분의 출입시설이 변화된 모습이 확인되었고, 인화문토기의 .. 2020.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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