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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1463

창덕궁 대조전 장판 뜯다가 발견한 꿩무늬 옷본 적의본(翟衣本) 사라진 옛 문헌이 배접지(褙接紙)에서 발견되는 일이 간혹 있다. 배접지란 간단히 말해 땜질용 종이다. 한지韓紙가 생명력이 길다 하지만, 이 역시 세월 앞에는 장사 없어, 시간이 오래되거나, 혹은 많이 사용하다 보면 너덜너덜해지기 마련이라, 땜질을 하게 되는데, 글자나 그림이 없는 뒷면에다가 다른 한지를 대어 풀로 붙이는 일이 많으니, 이런 일을 배접(褙接)이라 하고, 그에 사용한 땜질용 종이를 배접지라 한다. 배접지라고 해서 새 종이를 사용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이 역시 고물 딱지 옛날 책으로 이제는 쓰임이 다한 책을 갈갈이 찢어발겨 사용하는 일이 많으니, 그래서 이런 배접지에서 용케 보물을 건지는 일이 드물지만 간혹 있다.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독립신문인가 창간호는 비름박에서 발견된 것으.. 2019. 1. 30.
청와대 불상, 이젠 조계종이 결단내야 한다 청와대 불상은 볼모다. 식민지시대에는 잘 생겼다 해서 '미남불상'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石佛坐像은 볼모다. 볼모란 무엇인가?인질이다. 인질이란 무엇인가?포로다. 그렇다면 누가 인질 포로 볼모로 잡고 있는가? 놀랍게도 부처를 절대의 인격체로 섬기는 대한불교조계종이다. 이 무슨 말인가? 높이 108㎝, 어깨너비 54.5㎝, 무릎 너비 86㎝인 저 불상은 경주시 도지동 이거사移居寺라는 절터에 있다가 1912년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초대 조선총독한테 진상되어 서울 남산 총독관저로 옮겨졌다가 오늘 현재 청와대에 갇혀 지낸다. 불법으로 제자리에서 탈취되어, 더구나 조선총독한테 진상되어 오늘에 이른 역사가 이토록 명백한데도, 도대체 저 부처님은 왜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가? 놀랍게도 그것.. 2019. 1. 29.
금오산 기슭 김천 갈항사지[金烏山麓 金泉 葛項寺址] 경북慶北 김천金泉 남면南面 오봉리五鳳里엔 갈항사지葛項寺址라는 통일신라시대 절터가 있다. 지금은 과수원 밭으로 변모한 금오산金烏山 기슭에 있던 절이 갈항사라, 발굴조사도 없고 적절한 유구遺構 보호대책도 없이 방치 중이다. 이곳엔 동서 쌍탑東西雙塔 석탑石塔이 있었으나. 조선총독부가 뽑아다가 서울로 옮기는 바람에 지금 이 쌍탑은 생뚱맞게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다. 김천 출신인 나로서는 단순한 애향심이라고 하고 싶진 않다. 내가 언젠가부터 꿈을 꾸었다. 이 일대 과수원 밭이랑 다 사서 중앙정부나 지자체에 기증을 하고 싶다는 꿈 말이다. 발굴도 해서 사역寺域 범위도 확인하고 나아가 쌍탑도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으면 한다. 쌍탑 해체 과정에서 수습한 사리장엄舍利裝嚴은 또 생뚱맞게 국립대구박물관에 가 있다.. 2019. 1. 27.
강진 백련사 동백을 기약하며 강진 백련사가 나로선 처음이다. 뭔가 유명하단 소문은 일찍이 들었으되 어찌하다 지금에야 왔다. 그렇다고 기회가 없지는 아니했으니 근처를 지날 일은 여러 번이었지만 번번이 놓치고 말았다. 이 고찰을 품은 산을 만덕산萬德山이라던가? 뒤쪽 혹은 옆쪽 어딘가로 돌아가면 다산초당이란다. 하긴 그러고 보니 강진은 정약용이 오랜 기간 유배생활을 한 곳이라 해서, 그의 글과 행적이 남긴 곳은 그가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죄다 유명해졌다. 그를 두고 개혁을 꿈꾼 사람이라나 어쩐다나, 그런 개혁이 기성 보수 권력에 좌절 좌초했다나 어쩐다나 하는 논리가 야금야금 생겨나더니 요샌 너도나도 다산이란 상품 못 팔아 환장한다. 대웅전 마당에 서니 저 먼 데로 바다가 조망한다. 절 주변으론 온통 동백나무 숲이다. 유난히 따뜻한 이번 .. 2019. 1. 27.
박정희시대 문화재 특종을 일삼은 기자 우병익 January 25, 2017 내 페이스북 계정에 나는 아래와 같이 썼다. 경주박물관 도교 강연을 마치고 저녁을 겸해 우병익 기자를 인터뷰했다. 1933년 경주산, 1950년 7월 15일 육이오 학도병 1기, 열여섯에 좌익들에게 아버지를 잃었다. 1962년 한국일보 입사 이래 1980년 신군부에 의한 언론 통폐합으로 연합통신으로 옮겨 1985년 정년퇴직하면서 기자를 떠났다. 33년에 달하는 기자생활을 오로지 경주 주재로 있었다. 자칭 타칭 '동해안 특파원', 커버하는 지역이 북으로 울진, 동으로 울릉도까지였기 때문이라 한다. 그는 한국 언론사에선 문화재 전문기자 선두에 속한다. 경주관광개발 당시 내내 문화재 발굴현장 취재를 도맡아 각종 특종을 낚아냈다. 1970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문명대를 대동하고는 반.. 2019. 1. 26.
사진 석장으로 보는 경주 천마총 발굴 이야기 사진 석장으로 1973년 경주 천마총 발굴 이야기를 좀 하려 한다. 가운데 흰모자 쓴 이가 발굴단장 김정기 문화재연구실장이다. 그를 중심으로 왼편으로 차례로 소성옥·김동현·윤근일, 오른편으로 박지명·최병현·지건길·남시진이다. 이들이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파제낀 사람들이다. 저들 중에 김정기 소장은 몇년 전 작고했고, 박지명 선생은 그보다 먼저 갔다. 김정기 소장이야 따로 설명이 필요없고, 박지명 선생이 여러 일화를 남겼으니, 부산 복천박물관 하인수 관장에 따르면 부산대 건축학과와 사학과를 졸업하고 나중엔 부산박물관 학예실장으로 정년한 사람으로 "부산 오룬대고분 발굴에서 유구를 그리드법(grid法)으로 처음으로 실측한 분"으로서, "한평생 기인(?)으로 사신 분"이라고 한다. 천마총 황남대총 발굴에서도 실측.. 2019.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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