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388 실학은 근대의 선구가 아니다 필자가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썼지만우리나라 실학은 근대의 선구가 아니다. 전혀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실학을 근대의 선구로 자리매김했는지 모르겠지만이들은 딛고 있는 사회적 기반도 그렇고그 이데올로기 자체도 근대와는 관련이 없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실학을 근대의 선구로 자리 매김한 것은 이 시기를 자본주의 맹아, 근대의 맹아의 시점으로 보고, 광작운동, 자본가적 차지농 등 내재적 발전의 시점으로 설정해 놨기 때문에그에 걸맞는 근대적 사상의 단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학을 근대의 선구로 둔갑시켜 장식해 놓은 것이다. 필자가 여기에 여러 번 글을 썼듯이필자는 근대의 선구는가짜양반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실제로 근대의 문을 열어젖혀야 했을 사람들인데이 계층 자체가 성립된 시기가 너무 늦어19.. 2025. 8. 18. 몰락양반과 가짜양반 19세기 조선사회. 마을마다 유학을 칭하는 양반호가 압도적인 숫자가 되어 있었고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몰락양반"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몰락양반"이 그렇게 흔했을까? 조선시대에 가지고 있던 재산 관리를 못하고 벼슬도 떨어져 양반이었던 사람들이 양반이 아닌 처지로 굴러 떨어진 상황이 꽤 많았을 듯하지만, 호적을 보면, 그렇지 않다. 양반 자손들은 아무리 살림이 어렵고벼슬을 하지 못해 부, 조부, 증조부 직역이 학생이 되어 있어도여전히 호적상에서는 양반호로 잡혀 있었다. 몰락양반이란 것이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조선의 19세기에 늘어났다는 소위 "잔반"혹은 "몰락양반"이란, 원래 양반이 아니었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몰락양반"이라 주장하는 사람 상당.. 2025. 8. 18. 구한말의 주인공은 노비 후손이다? 필자는 이 말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도발적인 말을 하는 이유는 이렇다. 18세기 초반까지도 마을마다 절반 가까이 되던 노비사역이 18세가 후반을 거쳐 19세기가 되면 거의 사라지고 각 마을은 자기들이 양반 후손이라 주장하는 소농민들로 재편된다. 그렇다면 이전 노비는 어디로 갔겠는가, 당연히 양반이라고 주장하는 소농민들로 바뀌었을 것이다. 이 숫자가 전체 인구의 절반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과연 19세기 후반, 구한말에 들어가면 얌전히 있었을 것으로 보는가? 19세기 후반 활동하던 사람들 상당수, 심지어는 중앙정부에 발탁되어 들어간 사람들 중에도 이들이 상당수 섞여 있었으리라 보는것이 옳지 않을까. 당연히 우리나라 역사에서 구한말 활동하던 사람들 중에는 우리 조상이 100.. 2025. 8. 18. 19세기 역사에 요청한다 19세기 말 역사는 필자도 지금 조선시대 검시 자료에 대한 의학적 분석, 이 연구 프로젝트 때문에 공부를 좀 하고 있다. 이 시대 역사 전공자분들께 조금 부탁드리면, 첫째는 19세기 말 출현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개인사-. 특히 이 시기에 출세하는 모든 이가 양반의 후손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걸 그냥 당사자들이 말하는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이 시대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 같은 경우, 양령대군 후손이라지만 이미 이 분 5대조부터 벼슬이 끊겨 있었다고 하는 바, 이를 몰락양반 후손이라는 말 한 마디로 명쾌히 정리할 수 있겠는가? 우남 이외에 다른 분들의 경우에는 필자는, 이 중 많은 수가 그 2-3대 조 시기에 입신한 집안의 후손일 것이라 의.. 2025. 8. 17. 19세기 가짜양반들은 동학전쟁 때 무엇을 했을까 필자가 파악하는 바, 19세기 우리나라 향촌사회에서 변혁의 핵은 바로 가짜양반들의 급증과 함께 일어나는노비사역을 중심한 중세적 사회의 해체가 되겠다. 그 결과가 소농민의 급증, 노비사역의 급감, 그리고 가짜양반의 급증이다. 그렇다면 말이다. 이 가짜양반들은 개항 이후 무엇을 했을까, 동학전쟁 때 이 가짜양반들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정부 편에 섰을까 아니면 동학군에 가담했을까. 아니 대한제국의 멸망과 함께, 일제시대가 시작되면이 가짜양반들의 후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독립운동을 했을까. 아니면 친일을 하고 있었을까. 물론 가짜양반들의 일부는 독립운동도 했을 테고일부는 또 친일도 하고 있었겠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런 동향 파악을 전혀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그게 되겠다. 조선후기까지 열심히 향촌사회의 .. 2025. 8. 17. 페루 쿠스코 제11차 Mummy Congress 보고(7) 잘 설계된 마무리 블로그 독자분들은 아시겠지만최근 몇 년간 필자는 웻렙의 폐쇄, 드라이랩으로의 전환, 그리고 조선시대 미라 및 고고기생충 연구의 정리 작업 등 몇 가지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번 페루 학회는 필자로서는 전혀 기획된 것이 아니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마치 기획한 것처럼 마무리 작업의 하나로 끼어들게 되었다. 필자는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언젠가 세계구급 국제학회의keynote speech나 plenary lecture를 해보고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정말 세계구급일지는 알수 없겠지만 아무튼 동료 연구자들 사이에서 나름 존중받는 학회에서 그 비슷한 작업을 하고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미련이 없다. 아마도 필자가 처음 출발했던 자리, 그리고 필자 개인의 능력으로 볼 때 .. 2025. 8. 17. 이전 1 ··· 26 27 28 29 30 31 32 ··· 6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