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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244

인더스문명 최초의 부부합장묘와 Archaeology Magazine - A Plot of Their Own - Archaeology Magazine - July/August 2019At a 4,500-year-old necropolis in northern India, archaeologists discovered a grave containing the remains of […]archaeology.org 인도 데칸대학 신데Shinde 교수와 함께 우리가 조사한 인더스 문명 무덤인데 Archaeology Magazine에 나간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늦긴 했지만 블로그에 스크랩 해둔다. 믿거나 말거나 이 무덤이 지금까지 인더스문명 무덤에서 발견된 최초의 부부합장묘였다. 관련 논문은: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1.. 2024. 7. 4.
사냥으로 육고기 충당은 조선시대까지도 그랬다 흔히 신석기시대는 초보적 농경(?)으로 잡곡이나 좀 짓다가, 먹거리가 모자라니 산에 들에 멧돼지 잡고 꿩 잡고 돌아다니며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필자가 보기엔 그게 아니다. 육고기 충당을 사냥으로 하고 돌아다닌 건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그랬다. 우리나라는 농가에서 가축을 키워 그것을 잡아 먹으면서 단백질을 보충한 그런 나라가 아니다.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닭보다 꿩을 훨씬 많이 먹었고, 우리나라 발굴 현장에서 사슴뼈가 사라지고 돼지뼈가 더 많아지는 것이 생각보다 무지하게 늦다. 육고기를 사냥으로 충당한다고 해서 그것이 "수렵사회"는 아니라는 말이다. 조선후기가 "수렵사회"여서 될 말인가? 신석기시대도 마찬가지다. *** previous article *** 신석기시대 .. 2024. 7. 4.
신석기시대 농경 어찌 봐야 하나?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농경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조, 기장을 비롯한 쌀, 보리, 밀, 콩, 팥 등의 탄화 곡물이 다수 확인되어..."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조, 기장, 쌀, 보리, 밀, 콩, 팥을 키우고 있었다면, 아니 여기서 쌀과 보리는 빼도 좋다. 조, 기장, 밀, 콩, 팥만이라도 한 번 동시에 키워보기를-. 산에 들에 멧돼지 꿩 잡고 도토리 주우러 다닐 시간이 나나 안나나. 저렇게 다양한 곡물을 동시에 재배하고 있었다면 그게 어떻게 초보적 농경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밭에다 씨만 뿌려 놓는다고 가을 되면 그게 다 익어 추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세상에 그런 농사는 없다. 뭔가 쌀 농사를 대대적으로 해야 제대.. 2024. 7. 4.
왜 한국의 농경은 일본과 다른가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이렇다. 일본은 청동기와 철기가 동시에 유입되는 반면 한국은 청동기와 철기의 도입에 시간차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청동기시대 설정이 가능하다는 설법이다. 농경도 마찬가지이다. 잡곡과 도작이 일본은 거의 동시기에 한반도에서 유입되었다고 본다. 물론 최근 일본에서는 조몽시대 원시적 농경론을 입론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하는 소리고, 결국 잡곡과 도작은 일본에 발달된 농경 형태로 한꺼번에 유입되었다는 말이다. 양자간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잡곡과 도작의 도입에 차이가 없었을까? 도작 도입 이후에나 제대로 된 농경이 이루어졌겠는가 하는 말이다. 도작 이전에는 뭐 내놓을 만한 농경이 없다는 건 일본의 시각이다. 일본 금속문화 시각으로 한국을 그대로 재단.. 2024. 7. 3.
한국의 농경은 일본의 시각으로 봐서는 안된다 한국의 농경은 일본의 시각으로 보고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도작에 대한 지나친 강조, 도작 이전 잡곡농경을 원시적 수준으로 보는 시각, 농업사회가 세트로 들어와 한국에 정착했다고 생각하는 시각 등 이런 시각들은 모두 일본의 농경 도입기에 유의미한 시각이다. 한국은 다르다. 한국사는 남쪽의 도작부터 북쪽의 잡곡 농경까지 다양한 형태의 문명이 존재했고, 도작에만 일방적 우위를 줄 수 없다. 도작 이전에도 잡곡농경이 상당히 고도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농업사회가 야요이시대처럼 일거에 세트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부분 요소별로 조각 조각 나뉘어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무슨 말인고 하니, 도작, 조, 수수, 기장, 돼지, 소, 말, 닭 등 농업사회를 이루는 제반 요소가 도입 경로도.. 2024. 7. 3.
[왕밤 : 또 하나의 이야기] 원효스님 탄생담 한반도 남부에 밤이 크다는 이야기는 삼국지 동이전 외에도 있다. 삼국유사 원효전에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사라수에 관해서는 민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성사의 집은 본래 이 골짜기 서남쪽에 있었는데, 어머니가 아이를 가져 만삭이 되어 마침 이 골짜기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갑자기 해산하고 창황하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우선 남편 옷을 나무에 걸고 그 안에 누워 있었으므로 [그] 나무를 사라수라고 하였다. 그 나무 열매도 보통 나무와는 달랐으므로 지금도 사라밤[裟羅栗]이라고 한다.註 200 예부터 전하기를, [사라사의] 주지가 절의 종 한 사람에게 하루 저녁의 끼니로 밤 두 개씩을 주었다. 종은 관가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관리가 [그] 밤을 가져다가 조사해보았더니 한 개가 .. 2024.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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