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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393

사약의 기원과 그 의미 조선시대에 임금이 사사를 신하에게 내리면대개 신하되는 이는 임금이 내린 사약을 먹고 절명한다. 이 임금이 사사하면 사약을 먹고 목숨을 끊는 방식은형벌이 아니다. 그래서 대명률에도 없다. 이는 유교에서 이르는 바,刑不上大夫 禮不下庶人 형벌은 대부 이상을 올라갈 수 없고 예의는 서인 아래로는 내력가지 않는다. 곧 대부 혹은 그 이상은 형벌로 다스릴 수 없고 예의는 서인 이하한테는 따지지 않는다.이라는 사상의 구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임금이 죽음을 내리면 신하는 자살로 답하는 것이니, 사사로 죽는 한 이는 형벌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는 임금이 내린 죽음으로 자살한 것이지 형을 받아 죽은 것이 아니다. 일본도 소위 하라키리 혹은 셋푸쿠, 할복을일본 고유의 미의식으로 이야기하지만 그게 아니고 바로 .. 2024. 7. 26.
일본 유학의 스모킹 건 한국 유학자들이 공부한 책을 보면 중국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고문진보. 중국은 거의 보지 않은 책이지만 한국의 선비들은 손에 끼고 살았다. 이 책이 그다지 좋지 않은 수준이라는 지적도 당대나 요즘 공히 있지만, 그러나 저러나 한국 선비들은 많이 읽었다. 다음으로 통감절요 (소미통감). 자치통감을 왕창 줄여 놓은 이 통감의 축약 버전은 흔히 조선시대에 통감을 읽었다고 하면 이 책을 가리킬 정도로 많이들 봤지만 중국은 거의 보지 않은 것으로 안다. 다음으로 십팔사략. 중국은 이미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는데 한국에서는 많이들 봤다. 재미있는 건 에도시대 초기 일본이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파고 들어갈 때 고문진보, 통감절요, 십팔사략은 덩달아 많이 읽었다는 것이다. 물론 에도시대 후기가 되면 이 책들.. 2024. 7. 26.
장원과 지주-전호제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필자는 대토지 겸병-장원과 지주-전호제는 휴경 극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 본다. 휴경이 극복 안된 상태에서 정기적으로 땅을 놀려야 수확이 되는 수준의 농법에서는 소농민이 자립을 할 수가 없다. 농사는 어느 정도 토지가 집적화 되어 그 중 일부를 놀릴 수 있는 정도로 대규모 겸병-장원이 성립되어야 했을 것이므로필자 생각에는 우리나라도 삼국시대 이후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이러한 모양의 대규모 겸병-장원 외에 자립한 소농민이 있었다 해도 그 수는 극히 적었으리라 본다.  어쩄건 휴경이 극복되어 소농민이 작은 땅이라도 부쳐 먹고 살수가 있는 시대가 되어야 장원은 해체되고 지주와 전호 사이에 소작제로 넘어가지 않았을까. 그 시점은 조선 전기-중기 어간의 어느 시기일 것이다. 우리는 "손바.. 2024. 7. 25.
늙어서도 공부하는 이에게 주는 공자님 말씀 子曰: "賜也,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對曰: "然, 非與?" 曰: "非也. 予一以貫之." [사야, 너는 내가 많이 배우고 많이 안다고 생각하느냐?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이르기를 "아니다. 나는 일이관지 하는 사람이다.]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늙어서도 공부하는 사람은 다학다식을 지향해서는 안된다. 일이관지가 더 중요하다. 자기 평생의 연구를 실로 꿰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자신의 Question이 만들어지고 이에 답하고자 할 때 비로소 큰 구조물이 세워진다. 이렇게 범을 그리고자 해야 개라도 그릴 것이다. 2024. 7. 25.
신석기시대 농경과 휴경 신석기시대 곡물로 평양에서는 조, 수수, 기장, 쌀 등 다양한 곡물이 나왔다고 하는데 이런 다양한 곡물은 콩, 조, 기장, 쌀 모두 다른 밭에서 키워 냈을까? 아마 윤작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이전 우리나라 농업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휴경의 문제로 휴경을 하지 않으면 매년 수확이 안 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 극복을 위해서 어떻게 했느냐 우리나라 조선시대 세종 시기에는 소위 2년 3작의 윤작법이 황해도 이북에서 시행되었다고 기록이 남아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 첫해 봄에는 조나 기장을 심는다. 이 블로그에 쓴 것 같지만 조나 기장은 수확이 빨라 첫 번째 수확이 끝나면 바로 보리를 심었다고 한다. 그 다음해 보리 수확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그 땅에 콩을 심고 2년차 하반기는 땅을 놀렸다는 것이다. 여기.. 2024. 7. 25.
손바닥 만한 땅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던 시대 시대가 흘러 조선후기쯤 되면 손바닥 만한 땅이라도 비료를 갈아 넣고 때려 부어 매년 농사를 지어 수확을 거두는 일이 가능했겠지만 우리나라는 조선 전기까지도 휴한 농경이 극복이 안 되고 있었다. 지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의 반드시 일정기간마다 농사를 쉬어야 했다는 말이다. 이건 무슨 뜻이냐. 손바닥 만한 땅 가지고 있는 이들이 그 땅 부쳐서 먹고 살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농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쉬는 땅과 농사짓는 땅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하니 농사의 기본 단위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휴한농경을 할 수 없는 소토지 소유자는 어차피 그 땅 가지고 있어봐야 먹고살 수가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휴한 농법이 토대로 되어 있는 사회는 장원의 출현이 필연적이었다는 뜻이겠다. 이는 무슨 소리냐 하면, .. 2024.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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