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257 식어버린 청동기시대 기장밥은 어떻게 먹는가 청동기시대 찐 기장밥을 한 번 더 만들었다. 아무리 먹을거리가 부족한 청동기시대라 해도 기장밥 같은 잡곡밥도 한끼 식사 끝나고 남지 않았을 리 없다. 남았을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번 알아보자. 기장밥 찐것을 반나절만 놔 두면 마치 모래알처럼 바뀐다. 찰기가 있는 찰기장인데도 그렇다. 청동기시대도 이랬을 것이다. 이건 어떻게 먹었을까? 그냥 먹어봤다. 사람이 먹을 게 못된다. 다시 찌면 나아질 것 같은데 다시 쪘을까? 이건 분명히 국물을 썼을 것이라 생각하고 국물을 만들어 먹어보았다. 이거다. 청동기시대 잡곡 찐밥은 한번 식으면 절대로 그냥은 못먹는다. 반드시 국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냥 바로 한 밥 보다도 더 낫다. 이상 청동기시대 기장 찐밥, 식은 밥을 먹는 방법에 대한 실.. 2024. 3. 8. 조선시대는 고려시대보다 반드시 뭔가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 고려에서 조선시대 사이의 획기는 단지 왕조가 교체되었을 뿐 아니라 반드시 두시대 사이는 뭔가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으니 이는 바로 "역사는 발전한다"는 테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역사는 발전한다, 그건 좋은데 일본을 보면 도저히 하나로 묶기 어려울 것 같은 헤이케 정권에서 에도막부까지를 묶어 무가정권이라 부른다.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 고려왕조와 조선후기까지의 사회의 질적 차이는 헤이케 정권에서 에도막부사이의 차이보다도 더 적다. 헤이케 정권과 에도막부는 고려왕조와 조선후기까지의 차이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사회인데도, 이를 무가정권이라 하나로 묶고, 굳이 에도시대를 따로 쓰고 싶다면 여기서 근세를 따로 둔다는 말이다. 고려시대를 귀족사회, 조선시대를 사대부사회. 억지다. 고려시대의 잘나.. 2024. 3. 8. 고려와 조선시대는 질적으로 동일한 사회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시대 구분을 하면 안 되는 시기다. 두 시대 모두 사대부사회다. 고려시대가 귀족사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두 시대 모두 과거제에 기반한 사대부 사회로 북송 이후 중국의 사대부사회에 정확히 대응하며, 일본의 경우 헤이케 정권 이후 무가정권에 대응하는 단계다. 일본에서 무가정권을 헤이케-가마쿠라-남북조(무로마치)-전국시대-도쿠가와 시대로 나누듯이 그렇게 우리도 장구한 고려시대 이후의 기간을 사대부사회 하나로 묶고 그 안에서 시대를 다시 나눠야 한다. 고려시대가 조선시대와 정말 그렇게 질적으로 다른 사회였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때가 됐다. 2024. 3. 8. 필사본이 주류인 초기 고사기 일본의 고서들은 오래된 것은 대부분 필사본이다. 이건 한국하고 좀 많이 달라서 우리가 무심코 넘기기 쉬운데 일본의 경우, 임란 이후 에도막부가 열리면서 목판이건 고활자본이건 인쇄본이 나오기 시작하며 그 이전은 대부분 필사본이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삼국사기 삼국유사 현존하는 고본은, 전부 인쇄본이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고사기 일본서기는 필자가 아는 한 에도시대 이전 인쇄본은 없고 전부 필사본이다. 아래를 보자. 『古事記』の原本は現存せず、いくつかの写本が伝わる。成立年代は、写本の序に記された年月日(和銅5年正月28日(ユリウス暦712年3月9日))により、8世紀初めと推定される。 現存する『古事記』の写本は、主に「伊勢本系統」と「卜部本系統」に分かれる[19]。 伊勢本系統 現存する『古事記』の写本で最古のものは、「伊勢本系統」の.. 2024. 3. 7. 목판 활자 필사본 동아시아에서 이 세 가지 책 제작 매체는 시간 순으로 하나씩 발전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상황에 따라 병렬적으로 발전하였다. 목판은 대량생산의 수요가 있는 중국. 활자는 굳이 한국에서 발전한 이유는 딱 그 독서층의 수요 때문이다. 일본에서 필사본이 주류를 이루다가 임란 이후 처음에 활자로 개판한 것은 결국 독서층의 당시 수요를 반영한 것이고 이후 목판으로 전환한 것은 독서층의 증가를 의미한다. 목판, 활자, 필사본은 그 사회의 독서수요에 따른 변용이다. 어느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발전을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다. 필사본, 목판, 활자로 발전하여 활자가 가장 발전된 형태라고 쉽게 말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2024. 3. 6. SCI 논문 쓰느라 날 샌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한문 읽는 건 둘째 치고 한문으로 글 짓고 동문선 백 이십 몇 권을 쉽게 보는 것을 많이 보는데,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는 한문 때문에 나라 망했다. 한문 익히고 쓰는 그 노력의 10분의 1만 국문에 신경 쓸 겨를이 있었으면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100배는 많은 인문적 자산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21세기에도 SCI 논문 한 편 쓰려면 머리털 다 빠지는데 조선시대에 한문으로 글 짓고 시 쓰고 동문선에 왕조실록에 고려사 도대체 왜 그렇게 한문에 집착해야만 했을까? 딴 거 없고, 과거제 때문이다. 과거제의 시험과목이 딱 정해지면 식자층은 거기서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 조선시대 내내 사림들은 과거제의 폐단을 지적했지만 문과는 고사하고 사마시라도 붙으려면 과거 시험 공부를 안 하면 어쩔 건데? 젊.. 2024. 3. 5. 이전 1 ··· 149 150 151 152 153 154 155 ··· 37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