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서들은 오래된 것은 대부분 필사본이다.
이건 한국하고 좀 많이 달라서 우리가 무심코 넘기기 쉬운데
일본의 경우, 임란 이후 에도막부가 열리면서 목판이건 고활자본이건 인쇄본이 나오기 시작하며
그 이전은 대부분 필사본이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삼국사기 삼국유사 현존하는 고본은, 전부 인쇄본이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고사기 일본서기는 필자가 아는 한 에도시대 이전 인쇄본은 없고 전부 필사본이다.
아래를 보자.
『古事記』の原本は現存せず、いくつかの写本が伝わる。成立年代は、写本の序に記された年月日(和銅5年正月28日(ユリウス暦712年3月9日))により、8世紀初めと推定される。
現存する『古事記』の写本は、主に「伊勢本系統」と「卜部本系統」に分かれる[19]。
伊勢本系統
現存する『古事記』の写本で最古のものは、「伊勢本系統」の南朝: 建徳2年/北朝: 応安4年(1371年)から翌、南朝:文中元年/北朝:応安5年(1372年)にかけて真福寺[注釈 4]の僧・賢瑜によって写された真福寺本『古事記』三帖(国宝)である。奥書によれば、祖本は上・下巻が大中臣定世本、中巻が藤原通雅本である。道果本(上巻の前半のみ。南朝:弘和元年/北朝:永徳元年(1381年)写)、道祥本(上巻のみ。応永31年(1424年)写)、春瑜本(上巻のみ。応永33年(1426年)写)の道果本系3本は真福寺本に近く、ともに伊勢本系統をなす。
卜福部本系統
伊勢本系統を除く写本は全て卜部本系統に属する。祖本は卜部兼永自筆本(上中下3巻。室町時代後期写)である。
그러면 고사기는 죽도록 필사만 했을까?
아니다. 물론 인쇄도 했다. 언제부터?
에도시대 부터이다.
江戸時代初期の寛永21年(1644年)に京都で印刷による刊本『古事記』(いわゆる「寛永古事記」)が出版され、研究が盛んになった。出口延佳が『鼇頭(ごうとう)古事記』を貞享4年(1687年)に刊行したほか、『大日本史』につながる修史事業を始めた徳川光圀(水戸藩主)にも影響を与えた[23]。
우리는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우리 고문헌이 인쇄본이라는 데 무덤덤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과 비교하면 인쇄본이 주류가 된 문헌사는 오히려 특이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은 에도시대 이전까지 필사본 책이 주류였기 때문이다.
일본이 조선 전기 한국에 틈만 나면 와서 대장경 인쇄를 해달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일본이 필사본이 주류였다가 어느 시점에 고활자인쇄가 되고 목판이 개판되어 성행한 시기를 주의하지 않으면
도대체 왜 일본이 툭하면 나타나 대장경을 달라고 난리를 쳤는지 이해를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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