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119 일제시대는 어떻게 비판해야 하는가 오늘 김단장님 블로그에 글을 많이 남긴 것 같아 이제 간단하게 쓴다. 일제시대는 어떻게 비판해야 하는가. 일제시대 비판은 그 시대 조선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니라 일본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선의 교육제도는 조선만 달랑 봐서는 절대로 그 숨겨진 의미를 알 수 없다. 일본의 메이지사, 그리고 그들의 교육사를 봐야 비로소 일본 식민통치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조선만 죽어라 파면 식민통치의 구조가 보일까? 최근 일각에서 나오는 식민지 무조건 악마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은 한국학계의 일본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이유가 크다. 조선만 놓고 보면, 그것이 식민지악마론이건 식민지근대화론이건 간에 그 구조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동아시아 전체를, 세계사 전체.. 2023. 5. 27. 일제시대 전문학교 및 학생 수 일제시대 전문학교 및 학생수. 조선인 학생수는 1937년 현재 2600명 정도로 대부분 사립 전문학교에 몰려 있다. 경성제대 예과 입학생의 절반과 공사립 전문학교 졸업생 2600명이 조선인으로 매년 대학진학이 가능한 숫자의 전부였던 셈이 되겠다. P.S.1) 1944년에는 연희전문과 보성전문이 문을 닫았다. 2023. 5. 27. 식민지시대 연전과 보전: 고졸자 그러나 후순위 앞서 식민지시대 고보를 고등학교로, 전문학교는 대학으로 많이 착각한다고 하였다. 이제 식민지 시대 전문학교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제일 유명한 양대 사학, 연전과 보전에 대한 이야기다. 연전과 보전은 졸업할 때 학사학위를 받지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학사학위는 대졸자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학사호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조선에서는 경성제대 졸업자 뿐이었다. 대학이 그거 하나였기 때문이다. 연전과 보전은 졸업장이다. 학위기가 아니라. 연전과 보전을 졸업하면 고등학교 졸업 학력이 인정되었다. 학력으로만 보면 경성제대 예과 졸업생과 동등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연전과 보전 졸업생은 경성제대 진학이 가능했을까? 거의 불가능했다. 이유는 경성제대 본과는 원칙적으로 예과졸업생 우선, 그 후순위로 구제 고등학교.. 2023. 5. 27. 일제시대 교육제도: 착시의 이유 일제시대 교육제도 전반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 식민지 조선에는 초등, 중등, 고등, 대학교육이 모두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착시가 일어나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초등교육인 소학교 졸업후 조선에서는 고등보통학교 (고보)에 진학하였는데 이름이 비슷해서인지 이 학교를 대개 고등학교로 인식한다. 특히 해방이후 양정, 경기 고보 등이 모두 고등학교로 바뀌면서 일제시대의 양정고보, 경기고보를 고등학교로 인식한다. 하지만 일제시대 고보는 중학교 과정이고, 고등학교는 따로 있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고보라고 인식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에는 "고등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내지에는 고등학교가 많았다. 이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대학"진학이 되었다. 이 고등학교에 대응하는 조선의 교육기.. 2023. 5. 27. 한국사: 서바이벌의 제왕 20세기까지의 한국사를 단 하나의 영어 단어로 뽑아보라면 필자의 경우 단연코 "Survival"이다. 한국사는 살아 남기 위해 모든 것을 총동원한 역사다. 결국 역사라는 것이 번영은 둘째이고 일단 살아남는 것이 첫 번째 명제라면, 한국사는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다. 실제로 수없이 많은 문명이 명멸하는 와중에도 한국은 끝까지 지도에서 지워지지 않고 21세기로 넘어왔으니 가히 "Survival"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단순히 survival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을 누리고자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략과 비전을 한국사는 가져야 한다. 쳐들어온 도둑놈을 잡는 세계관으로 한국과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수천년간 한국사를 관주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자는 것이다. 도둑놈 잡는 세계관 이상의 그 무엇을 .. 2023. 5. 27. 젤렌스키와 이승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싸움이 마치 한국전쟁 때처럼 전선의 변화 없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젤렌스키가 이 전쟁을 이길 것인가 하는 것보다, 그가 이 전쟁을 어떻게 빠져 나오고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 하는것이 더 궁금하다. 사실 지금 우크라이나 젤렌스키와 가장 비슷한 상황이었던 사람은 6.25 당시 이승만이다. 3년간 계속된 전쟁이 휴전으로 끝나는 국면에서 이승만이 보여주었던 눈부신 외교전은 젤렌스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이승만이 휴전국면 때 보여준 변칙 외교는 때로 미국까지도 격분시켰지만 절대약자가 어떻게 체스판의 말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싸움을 최대한 자기에게 유리하게 끝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할 수 있겠다. 우크라이나는 이 전쟁을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상태로 종식시키되 그 전후.. 2023. 5. 26. 이전 1 ··· 248 249 250 251 252 253 254 ··· 35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