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478 호치민에 투영한 건준 일본군 무장해제 후에는 어떻게 될지 전혀 비전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베트남도 45년 8월 15일 이후, 힘의 공백기가 만들어졌는데 그 공백의 정도는 일본제국의 지근거리에 위치한 조선의 경우보다 훨씬 강력했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진주한 군대가 북쪽의 중국군과 남쪽의 영국군이라는 점에서 소련과 미군이 진주한 한반도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베트남이 45년 8월 15일 이후, 가장 두려워 한 것은 2차대전 이전 이 지역을 식민지배하던 프랑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특히 프랑스는 비시정권 이후 드골의 자유프랑스가 연합국-승전국의 편에 섬으로써 베트남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해방과 함께 추축국 일본이 궤멸되어 사실상의 식민모국이 공중분해 되어버린 조선과는 상황이 달랐.. 2023. 9. 9. 카이로선언이 운명을 가른 한국과 베트남 카이로 선언(1943. 11)은 여러모로 의문에 싸인 사건이다. 카이로 선언에서 전후 일본의 처리에 대해 연합국 미국, 영국, 중국 3개국이 밝힌 내용을 보면, 3대 동맹국은 일본의 침략을 정지시키고 이를 벌하기 위하여 이번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위 동맹국은 자국을 위하여 어떠한 이익도 요구하지 않으며, 또 영토를 확장할 의도가 없다. 위 동맹국의 목적은 일본이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개시 이후에 탈취 또는 점령한 태평양의 도서 일체를 박탈할 것과 만주, 대만 및 팽호도와 같이 일본이 청국으로부터 빼앗은 지역 일체를 중화민국에 반환함에 있다. 또한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될 것이다. 앞의 3대국은 조선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자주 독.. 2023. 9. 8. 해방전후사: 베트남의 경우 베트남은 한국사와 비교되는 경우가 많지만 두 나라의 역사는 엄밀히 비교하면 많이 다르다. 두 나라 모두 중화제국의 외연에 위치하면서 대륙의 정책에 동시에 반응하면서 유사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로 두 나라의 대응과 역사의 진행은 많이 달랐다. 멀리는 우리의 고조선과 베트남의 남월-. 한군현이 들어오기 전 이 두 나라의 포지션도 약간 달랐고, 중국군현의 축출 과정도 달랐다. 한국은 서기 4세기 초반 군현이 축출된 데 반해 베트남은 군현이 완전히 쫒겨난 시기는 우리의 고려시대 초기에 해당한다. 이처럼 두 나라는 그 구성 인종이 다르니 당연히 역사도 달랐을 것이고, 또 한가지 두 나라의 차이를 만든 이유중 하나는 지리적 차이다. 앞에서 언급한 군현의 경우, 한반도의 군현은 중국이 영가의 난을 거치며 한족.. 2023. 9. 8. 재발견하는 김밥, 한때는 천대받던 한국문화의 표상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3/09/07/TW6BOMDKKVHSHOBEIFSGRLY6CY/ ‘조회수 1100만’ 美김밥 열풍 주인공 “5살땐 먹다 따돌림 당했는데…” 조회수 1100만 美김밥 열풍 주인공 5살땐 먹다 따돌림 당했는데 www.chosun.com 최근 한국문화 열풍은 뜨겁다. 휩쓸고 있다는 말까지는 어려울지 몰라도 적어도 한국문화에 대한 리스펙은 상당한 정도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는 박대 받은 문화까지도 재발견되는 판이다. 김밥도 그렇다. 미국인들은 해초를 seaweed라 해서 거의 먹지 않는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한국에 초청받아 오는 필자의 지우-연구자들은 해초 요리 (김, 다시마, 미역 등)를 생소.. 2023. 9. 7. 끌려간 학병과 생존을 선택한 조선지원병 일제 말 학병과 조선지원병제도가 있었다. 이 둘은 얼핏 듣기에 비슷하여 자주 혼동하고 하는데 사실 이 두 제도는 아주 다르다. 이 두 제도 중에 먼저 실시된 것은 조선지원병이었다. 조선지원병에 지원할 자격은 처음에는 소학교 졸업이었다. 그런데 너무 지원자가 적었다. 애초에 조선땅에는 소학교 졸업자도 많지 않았던 탓일 게다. 그래서 그 후 소학교 4년인가 3년인가로 지원 자격을 낮추었다. 이 정도라면 글자를 간신히 읽는 정도라 군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 뻔했다. 이 조선지원병제도에 나간 사람들은 그래서 장교가 없다. 말단 사병을 전전하거나 좀 잘 풀린 사람들은 약간의 진급도 있었지만, 그래봐야 장교는 아니었다. 이 조선지원병을 강제로 끌어갔냐 아니면 지원이냐하는 문제로 시끄럽지만, 필자가 보기엔 그.. 2023. 9. 7. 일본 근대화와 한국의 외채, 그리고 허무맹랑한 종속이론 앞서 80년대 한국의 강단은 소위 종속이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기 때문에 60-80년대까지의 한국의 발전을 인정하지 않았다. 뭐라고 했는고 하니, 이는 발전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제국주의 다국적 기업에 종속되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국부는 유출되고 결국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학생들한테 썰을 풀었다. 이들이 볼 때 한국의 거대한 외채는 바로 그 물증이었다. 외채는 조만간 지불불능의 상태로 갈 것인데, 그 이유는 한국 경제가 제국주의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종속의 고리를 끊어야 외채로 상징되는 국부 수탈의 역사는 종식된다. 그것이 한국의 소위 잘나가는 교수들 입바른 소리였다. 필자가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쓰겠지만, 한국의 당시 강단 교수들은 한국경제의 외채의 실체에 대해 중대한 .. 2023. 9. 6. 이전 1 ··· 268 269 270 271 272 273 274 ··· 41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