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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118

조선시대의 보湺 https://www.chosun.com/national/transport-environment/2023/03/27/WZAEQBWN6ZEJNDXYMI4MCWRBZY/ 文때 없애려던 영산강·금강 보, 가뭄에 도움文때 없애려던 영산강·금강 보, 가뭄에 도움 영산강 승촌·죽산보, 금강 세종·공주·백제보가 물 잡아둬www.chosun.com 이에 대한 논란은 조선시대에 대한 인식이 조금만 깊이 있어도 피할 수 있었다고 나는 본다. 조선시대 후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우리 조상들이 모내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한반도 기후를 어떻게 극복해 냈는지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저작이 필자가 아는 한에서는 아래 저술이다. 김동진 교수가 쓴 이 책은 최근 10년간 역사학계에서 나온 저작물 중 필자에게.. 2023. 3. 27.
식민지반봉건론은 식민지근대화론의 쌍생아다 서로 완전히 정반대로 다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같은 아버지를 둔 쌍생아라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죽어도 해방 이후 한국사회 혁명적 발전의 결과물은 인정 못하겠다 이건데, 해방 이후 발전은 "식민지반봉건사회"의 팽창일 뿐으로 조만간 외채 때문에 망한다던 나라가 안 망하니 이번에는 반대로 일제시대까지 올라가 실제로 한국사회 근대화의 기원은 일제시대다? 그게 아니라, 한국사회의 제대로 된 발전은 1945년부터 시작이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간은 시간 낭비였던 기간이고. 한국사회를 냉정히, 팩트에 입각해서 해석하는 제대로 된 논리를 학계에서 좀 보고 싶다. 해방이후에도 문맹률 75프로인 나라에서 근대화가 식민지때 이루어졌다는 게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1945년 이후 70여 년간, 민주주의.. 2023. 3. 26.
심포지움: East Asian People's Life and Death 본 연구실은 조선시대 검안檢案 서류에 대한 법의학적 고찰을 위해 서울대학교 지원으로 여러 분야 교수님과 함께 학제간 협동연구로 현재 연구과제를 수행중입니다. 본 프로젝트 일환으로 2023년 4월 2일 (오후 2시-4시 40분), 인문학자들과 생물인류학자들이 조선시대 검안서류에 대해 한 자리에 모여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자유 참여가 가능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https://snu-ac-kr.zoom.us/j/93409748024?pwd=MFA4WUZmUWNTSmhnTXZYZkU0bm8vQT09 Join our Cloud HD Video Meeting Zoom is the leader in modern enterprise video communications, wi.. 2023. 3. 26.
1930년대 일본어 교육 조선에서는 1930년대 후반부터 학교에서는 조선어 교육을 줄이고 일본어교육이 강화되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필자가 보기엔 이것도 해방직후 조선 문맹률 75프로에 큰 공헌을 했다. 조선인들 중 상당수가 초등교육 단계에서 2-3년 다니다가 중퇴가 많았는데, 그 짧은 교육기간 동안에도 학교에선 일본어, 집에 오면 조선어라는 이중언어생활을 해야 했으니 식자율이 올라갈래야 올라갈 수가 없었을 듯 하다. 역으로 말하자면, 해방이후에는 조선어 교육 일원화, 한글 전용으로만 가닥을 잡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식자율은 크게 반등했을 듯. 50년대 문맹률 감소에 군대에서 사병들 대상으로 한 한글 교육이 상당한 역할을 했는데, 사실 그 짧은 군대교육도 식자율 제고에 효과가 있었던 것을 보면, 30년대 후반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만 제.. 2023. 3. 26.
일제시대 양주동 선생의 경우 이제 "일제시대~~의 경우" 마지막 사례이다. 양주동 선생의 예를 보겠다. 위키에는 양주동 선생에 대해 "경성 중동고등보통학교를 졸업 후, 1928년에 일본 와세다 대학 영어영문학과를 나왔고,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하였다. " 이렇게 해놓았다. 그런데 이 기술은 누락된 부분이 많다. 우선 중동고보는 앞에서 이야기 한것처럼 중학과정으로 와세다대 영문과로 바로 진학이 불가능하다. 아마 뭔가 빠진 이력이 있을 것이다. 한편 나무위키에는 "1903년 경기도 개성군에서 태어나 중동학교를 마치고 1921년 와세다대학 불문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 영문과로 전과하여 1928년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했다"이라고 되어 있다. 이 프로필도 누락분이 있다. 중동학교를 마치면 불문과건.. 2023. 3. 26.
일제시대 교육과정 착시의 이유 앞에서 쓴 것처럼 일제시대 학력을 우리가 볼 때, 고등보통 (고보)를 고등학교, 전문학교를 대학으로 인지하는 일이 많다. 이때문에 일제시대 고보, 전문학교 졸업생들을 고등하교, 대학 졸업생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해방이후 전문학교를 대학으로, 그 하위교육기관은 고등학교 (혹은 중학)으로 재편제하면서 나오는 착각이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당시 조선인 학력을 보면, 보통학교--양정고보--보성전문--메이지대 전문부 (법학졸업) 손기정 선생 이런 학력처럼, 양정고보, 보성전문을 각각 고등학교, 대학으로 인지하면 보통학교와 고보 사이에 중학과정이 없는 것을 알게 된다. 때문에 전문학교를 졸업해서는 절대로 "대졸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 공부한 사람 대부분이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30년대 이후.. 2023.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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