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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382

조선시대 인골의 정리 언젠가 한번 여기 쓴 것 같지만 필자가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인류학 연구의 가장 문제점은 제대로 된 고인골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모셔온 조선시대 인골 300-400위에 대한 정리작업을 시작한다. 인골의 발굴 history를 모두 정리하고 하나하나 인골 모두를 사진을 찍어 둘 것이다. 관련 정리 내용은 국내 학술지에 정리하여 보고하여 향후 연구의 기준으로 삼고 이 조선시대 인골 관련 정보를 앞으로 이를 관리하실 분에게 모두 함께 이양할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조선시대 인골은 후속세대에서 제대로 연구하기 어렵다. 이 인골 관련 정보가 앞으로 우리나라 조선시대 조상님들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지남이 되었으면 한다. 2023. 7. 22.
필자의 마지막 Wet lab 작업 미라 조직의 조직학적 분석이 미진하여 향 후 몇 년간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자연과학 쪽에서는 소위 말하는 실험실 작업을 wet lab이라고 한다. 반대로 문헌이나 자료로만 연구하는 작업을 dry lab이라고 한다. 필자는 최근 dry lab으로 넘어가기 위한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여 왔는데 이번 wet lab 작업이 끝나면 필자의 연구에서 이 부분은 마무리 될 것이다. 그 다음 작업은 dry lab에서만 진행하게 될 것이고, 지금까지 필자가 진행해 온 wet lab작업은 오창석 교수와 홍종하 교수에게 모두 이관된다. 2023. 7. 22.
위키에 크게 늘어난 한국사 서술 필자는 위키에 서술된 한국사 (History of Korea)를 장기간 유심히 봐왔는데, 최근 들어 한국사 항목 기술이 전방위로 크게 늘어났다. 영어는 물론이고 몇년 전하고도 달라진 것이 영어권 이외의 언어에서 History of Korea 항목의 기술이 크게 팽창했고 내용도 디테일이 상당히 정확해졌다. 이유는? 당연히 K culture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선진경제권에 들어가면서 K culture의 폭발을 불렀고, 이 문화의 성장이 경제와 인문학적 영향력에 연쇄적으로 파급되는 양상이다. 한국역사 바로 알리기? 그런 것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그 외국어 항목 기술자들이 한국어를 배워 가장 업데이트 된 정보를 자국어로 올리기 때문이다. 한국사 바로 알리기는 이제 필요 없다. 그것보다 한국사의 내용자체를 .. 2023. 7. 21.
가나안으로 못 들어간 모세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No one from this evil generation shall see the good land I swore to give your ancestors, except Caleb son of Jephunneh. He will see it, and I will give him and his descendants the land he set his feet on, because he followed the Lord wholeheartedly.” Deuteronomy 1:35-36 그 이유는 신에 완전히 의지하지 않고 끊임없이 의심했기 때문이다. 구세대가 완전히 죽어 사라진 후 비로소 이스라엘 사람들은 약속된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2023. 7. 21.
정조는 인문학적 천재인가 영화를 비롯해서 심지어는 학술논문에서도 그려내는 정조의 모습은 인문학적 천재다. 신하를 데려다 놓고 학생처럼 가르치면서 써먹는다는 이런 경향은 사실 그의 할아버지인 영조로부터 물려받은 (더 위로 올라가면 숙종때부터) 것이 틀림없는데, 군왕이 신하를 뽑아 놓고 학생처럼 가르치면서 유교의 도통의 계승자를 자처한다는 것이 정상인가? 공자이래 군왕이 도통의 계승자를 자임한 적은 중국이건 한국이건 단 한 번도 없었다. 정조는 정말 그렇게 뛰어난 인문학적 천재였을까? 정조의 인문학적 소양과 수준. 냉정히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는 없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정조는 인문학적 천재도, 신하의 스승으로 자임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고 본다. 2023. 7. 20.
나라에 망쪼가 들었던 조선 말기 숙종 영조는 일단 제쳐두고, 정조 때부터만 따져 봐도 쓰잘데기 없는 토목공사를 몇 번을 일으켰는지 알 수 없다. 수원 화성은 도대체 뭐하러 만들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본다. 왕이 가서 살았던 것도 아니고, 수도를 그리로 옮기려고 했다는건 화성 크기를 보면 택도 없는 소리다. 아마 여러 가지 이유 겸사겸사 수원에 행차할 때마다 묵을 행궁을 지킬 성을 만들자고 지은 게 화성이었던 듯 한데 그렇다고 정조가 거기가서 살았던 것도 아니었다. 정조의 이런 삽질은 정약용의 기중기로 미화되고 있지만 도대체 왜 이 성은 지었는지 자세한 속내는 오리무중이다. 화성을 건설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이런저런 것이 나온 것이 있지만 하나도 설득력있게 들리는 것이 없다. 왕이 가서 살지도 않을 거면서 국비를 낭.. 2023.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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