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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404

학회가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는 이유 나이가 들어도 학술활동, 연구를 계속 수행할 수 있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유심히 보면 나이가 든 사람의 경우 실제로는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를 이리저리 조합하여 새로운 결과물로 내 놓을 뿐이지실제로 이전에 전혀 없던 논리나 주장의 생산은 하지 못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일견 현명하게 보이는 것은 젊은 시절보다 축적된 경험이 많아져어떤 이야기의 단초만 들으면 진행과 결과까지 거의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젊은시절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경험을 잘 활용하면나이 들어서도 상당기간 이 방식으로 학술활동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학술활동을 하는 것은 좋지만 이렇게 노령화한 연구자들이 너무 전면에 나서 연단 발표까지 하게 되면그 학회.. 2025. 7. 13.
용도불명의 목활자본: 열성수교 (1) 19세기 신분제도 격변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하나 써 보면, 필자가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아 우연히 접한 이야기 중에 열성수교列聖受敎라는 책이 있다. 규장각에서 올린 해제 책 내용을 보면 이렇다. 고려의 개국공신 申崇謙 (?~927)의 후손들에 대한 우대 조치를 지시한 수교들과 신숭겸 관련 자료들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版心題, 卷首題는 ‘列聖受敎’이다. 황색 표지의 線裝本으로, 표지 서명은 표지 좌측에 기재되어 있다. 본문 제1면 우측 상단에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책이 작성된 시기는 본문의 가운데 “致祭太師祠文 維嘉慶二年歲次丁巳八月十六日”이라는 기록을 통해 1797년(정조 21)임을 추정할 수 있다. .. 2025. 7. 10.
19세기 幼學 다시보기 19세기 호적에서 이전에 평민 심지어는 노비 후손들까지도 약 1세기에 걸친 노력으로 대거 유학으로 등장하는데 과연 유학이란 무엇인가. 이 유학이라는 이름은 지금은 학생이라는 명칭과 함께 제사 때나 들어볼 수 있는 "선생" 같은 호칭이 되어버렸지만 원래는 조선시대 호적에 기록되던 양반 유생들의 직역으로 18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아무나 붙일 수 없는 이름이었다. 호적에서 유학을 달면 일단 군역에서 면제되며 법적으로 과거 응시가 가능한 포지션이 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말로 해서 뭣하리오. 조선시대 18세기 전반만해도 서얼들은 "업무" "업유"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뿐 양반의 끝자락에 해당한다는 이들도 "유학"이라는 이름을 쉽게 붙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18세기를 넘어 19세기로 들어가면 동네마다 ".. 2025. 7. 10.
19세기 가짜 양반들을 다시 보기 우리나라 희극계의 거성 구봉서 배삼룡 선생의 "양반 인사법"이다. 이 희극은 언제 봐도 정말 웃기는 장면이지만19세기에 각 향촌마다 넘쳐난 "가짜양반"들이 과연 저렇게 맹한 모습이었을까? 우리가 세상 살다 보면 남들 다 안 된다고 하는 것도 희안하게 되게 만들어 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박정희 정주영을 만나면 크게 출세하는 것 아니겠는가? 19세기 양반으로 올라선 이들은 바로 "어떻게든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들어 오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들은 호적으로 상징되는 양반사회의 빈 구멍을 찾아서 끊임없이 기회를 노리다가그것도 수십 년에 걸친 공작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족보에 양반으로 자신과 가족들을 올려놓고 이를 발판 삼아 더 큰 재부를 추구하면 살았던 사람 아니겠는가? 19세기 가짜 양반들은 무.. 2025. 7. 10.
"유학" 그 강렬한 상징성 조선후기 신분 상승을 꿈꾼 노비들이 19세기가 되면 죄다 스스로 "유학"을 칭한다. 집집마다 동네마다 "유학"이 없는 집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왜 하필 "유학"일까? 물론 유학을 칭해야 군역에서 빠지기 쉽다는 현실적인 이익이 분명히 있을 테고, 양반이라면 식자층이어야 하고배운 사람이라는 간판이 있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있을 터이다. 그런데 자신의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왜 "유학"을 선택했을까? 이 "유학"이 결국 20세기가 되면 대학졸업장이되고, 박사학위가 되는 것이다. "유학"간판을 단 사람들이 양반 대접을 받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거기서 "못배운 한"이 나오는 것이다. 19세기에 너도 나도 "유학"을 칭하는 순간에 이미 20세기의 우골탑과 교육열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겠다. 2025. 7. 9.
출세를 위한 교육, 신분상승을 위한 공부 흔히 출세를 위한 교육, 신분상승을 위한 공부를 망국병이라던가 한심한 동기라고 폄하하는 시각을 보는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조선시대, 공부라는 것이 위기지학으로 수기치인, 도덕적 완성을 위해 해야 한다는 그 시대에도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사서삼경을 읽는 것은 소과라도 붙어 양반 자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함이지 위기지학 수기치인이라는 건 웃자고 하는 소리지 정암 조광조 같은 기인이 아니면 심각하게 이걸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문집에 이런 이야기를 가득 채워놨다고 해서 정말 그런 동기에서 공부했으리라 보는 건 바보 같은 생각이다. 정말 그렇다면 하루 일과를 적어 놓은 일기에 수기치인의 수련 이야기가 가득차야 할 텐데일기에는 대부분 뭐 먹었는지 이야기, 누구하고 술먹었다는 이.. 2025.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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