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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815

한국청동기시대 사회 규명의 일 과제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사회에 대해서는 많은 분이 연구에 뛰어 들어 중요한 성과를 얻고 있지만, 이런 것도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농촌사회는 수렵 채집을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농경문화를 통채로 들어다 한반도에 이식한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이 아니고, 한반도에는 우리가 아는 농촌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즉, 잡곡농경, 도작, 소 사육, 돼지사육, 개 사육, 양봉과 누에 치기, 닭 사육, 등등이 하나씩 하나씩 들어와 한반도 안에서 조립되었으며 그 최종적 결과물이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의 농촌사회다. 우리가 아는 잡곡과 도작을 같이하며개, 소, 닭, 말, 돼지 등을 키우며누에를 쳐 옷감을 짜는 농촌이 완성된 시기는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늦을 것이다. 대략 필자는 그 시기를 점토대토.. 2024. 8. 20.
2025 세계고고학회 세계고고학회가 내년 호주 다윈에서 개최된다. 2025년 6월 22일에서 28일까지. 대략 4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학회로 안다. https://worldarchaeologicalcongress.com/wac10/call-for-submissions/ Call For Submissions – WAC-10We invite you to contribute to creating a vibrant, wide-ranging and thought-provoking academic program for WAC-10. To submit a proposal, click on the links for themes, sessions, papers, workshops and posters below. Proposals for T.. 2024. 8. 20.
언어는 도구, 중요한 것은 논의할 지면의 선택 필자 생각은 이렇다. 연구자한테 언어는 도구에 불과하다. 논문을 한글로 쓰건, 영어로 쓰건, 일본어로 쓰건, 중국어로 쓰건, 그 논문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영어가 가지고 있는 힘은 자명하다. 영어 논문은 지구상 가장 많은 연구자에게 가 닿을 수 있는 수단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주제는 영어 논문이 커버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논문에 대해서인데, 필자는 한국학자의 경우 필요하다면 한국어 논문 외에 일본어와 중국어 논문을 써서 해당국 학술지에 직접 출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야요이시대 인골 논문? 일본 관련 학술지에 필요하다면 투고한다. 요서 지역 인골에 대한 논문? 필요하다면 중국인류학회지에 직접 투고.. 2024. 8. 19.
필자의 일본어 논문 필자는 2021년부터 일본에서 논문 출판 작업을 계속 하고 있어 이전까지는 영어와 한국어 논문출판을 했지만, 이제는 매년 2-3편 일본어 논문을 현지에서 내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논문의 성격상 일본학자들과의 논의가 필요한 부분들이 있는 경우, 우회하지 않고 일본어로 출판하여 이들과의 학술적 논의를 직접적으로 추동하기 위해서이다. 아래에 2021년부터 올해까지 기 출판된 필자의 일본어논문 리스트를 적어둔다. J2023-1.李陽洙・金智恩・洪宗河・申東勳. 考古学からみた韓半島における馬飼育様相の変遷. 動物考古學 (日本) Vol. 40. 1-10. J2023-2. 藤田尚・申東勳. 考古寄生虫学とトイレ考古学. Anthropological Science (Japanese Series) (日本). 202.. 2024. 8. 19.
"시스템" 규명에 들어가야 할 일제시대 연구 필자가 누차 여기에 쓴 것 같지만, 일제시대 연구 논문 중에 일단 욕부터 하고 보자는 의도가 너무 눈에 띄는데 반해정작 내용은 별것 없는 논문이 상당히 많다. 욕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사실 학술논문에서 욕부터 나와서 될 일인가 하는 점은 있겠다),내용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일제시대 연구에서 중요한 점은당시 식민통치가 얼마나 잔학했는가를 밝히는 부분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식민통치의 시스템을 정확히 밝히는 데 있다 하겠다. 일본의 통치는 1차대전 이후에는 이미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방식으로, 즉자적이고 임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설사 수탈이라 하더라도 법령에 의해 진행되는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1차대전 이후의 일본의 식민통치를 규명하는 데는 일본과 조선을 묶는 시스템의 정확한 이해와 규.. 2024. 8. 18.
호태왕비에는 연나라와의 싸움이 없다 재미있는 부분은-. 삼국사기의 광개토왕 기사는 영락 6년의 백제토벌 이전의 백제와의 싸움, 그리고 연나라[후연]와의 싸움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반해, 광개토왕비에는 연나라와의 싸움이 거의 기록이 되어있지 않고 반면에 삼국사기에는 없는 한반도 남정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삼국사기와 호태왕비는 서로간에 교집합부분이 크지 않고 별개의 사건을 각각 적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럴까? 필자 생각으로는 광개토왕비가 세워지던 당시까지도 호태왕이 싸웠던 연이 그대로 존립하고 있었던 부분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말해 이 부분에 있어서도 광개토왕비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직필한 사서가 아니라, 당시의 정치군사적 상황을 많이 감안한 기록이라는 김단장의 의견에 공감한다. 광개토왕비문이 객관적인 사서에 준하는 기록물.. 2024.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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