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2849 1915년과 1917년 능산리고분을 가르는 중대한 분기선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근대적인 의미에서 문화재로 발견된 때가 1915년이다. 이를 백제시대 왕릉으로 재발견한 이가 흑판승미 黑板承美 구로이타 가쓰미 와 관야정 關野貞 세키노 다다시다. 이들은 이해 7월, 각기 다른 통로로 부여에 왔다가 우연히 삽자루 들고는 능산리를 파기 시작했으니, 이를 통해 비로소 사비시대 묘제墓制의 실상을 어느 정도 들여다 본다. 다음 조사는 곡정제일 谷井濟一 다니이 세이이치에 의한 1917년 발굴. 이 두 시기 조사 사이에 중대한 제도 변화가 있게 된다. 문화재 보존을 위한 총독부령과 그 시행세칙이 제정 시행되고, 그 운용을 위한 기구로써 고적조사위원회가 출범한다. 단군 이래 없던 강력한 문화재 보호정책이 시행에 들어간다. 이 법률을 통해 비로소 무엇이 문화재인가가 확정된다. 봤는.. 2024. 1. 11. 태대각간, 옥상옥에 다시 얹은 집 안록산 사사명의 난이 낳은 최고 스타는 곽자의와 이광필이었다. 안록산의 난이 진압 기미가 있는 시점에 급하게 황제 자리에 오른 숙종이 이미 "두 사람은 더 이상 전공을 포상할 방법이 없는데, 안록산의 난이 평정되면 무슨 자리를 덧붙여 주는가"를 걱정할 정도였다. 이런 고민에 똑같이 봉착한 이가 신라 문무왕이었다. 신라가 백제에 이어 고구려를 멸하자, 그 최대 공신 김유신을 포상할 방법이 없었다. 군신이 머리를 싸맸다. 모르긴 해도 이런 말이 오갔을 것이다. "저 영감을 달래긴 해야는데, 이미 직급도 대장군이요 대각간인데 자칫하면 삐질 텐데 도대체 뭘로 보상한단 말이요?" 이런 고민이 한참 이어지다 누군가 이런 제안을 냈다. "대각간이 최고 아입니까? 그럼 대각간 우에 한자리 더 만듭시데이" "거 좋은 생.. 2024. 1. 11. [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5) 무왕 왕비가 선화공주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익산 미륵사 석탑 봉영사리기가 발견, 공개되기 전에 이미 나는 여러 번 단언했다. “선화공주는 때려죽여도 백제 무왕의 정비(正妃)일 수는 없다. 정비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자칫 대통령이 탄핵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했다가 결코 그리 하지 않은 새누리당 대표 이 머시기 꼬라지가 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이렇게 장담했다. 나는 내 저 장담이 내 생전에 증명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데 정말로 느닷없이 출현한 백제시대 금석문이 백제 무왕의 정식 왕비는 신라 출신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좌평 사탁적덕의 딸임을 폭로했다. *** previous article *** [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4) 화랑세기 자매편 상장돈장上狀敦牂과 선화 [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4) 화랑세기 자매편 상장.. 2024. 1. 11. 왕조 존속 기간과 조선총독부 시대가 지닌 힘 촉한 42년(221~263) 조위 45년(220~265) 서진 52년(265~317) 유송劉宋 49년(420~479) 남제南齊 23년(479~502) 양梁 55년(502~557) 진陳 32년(557~589) 수隋 27년 (581~618) 태봉 17년(901~918) 후백제 44년(892~936) 조선총독부 35년(1910-1945) 총독부 식민지시대 35년, 통감부 시대(1906~1910)를 포함하면 물경 39년에 달하는 저 시대가 얼마나 긴지 실감할 것이다. 저 통감부 총독부시대는 한국사로 보면 별개 왕정이다. 그 통치자가 일본 천황인 왕조국가였고, 그 아래서 신민은 국민으로 급속히 편제되고 한반도에서는 처음으로 국민이 탄생함으로써 단군조선 이래 그 국민이 권리를 갖고 국민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시.. 2024. 1. 10. 강조康兆의 변變, 앞뒤가 안 맞는 고려사 미스터리 목종이 승려가 된 대량원군(훗날의 현종)을 궁중으로 불러들였다는 건 죽음을 앞둔 후계자 지명이다. 회생 불능이라 판단한 목종은 태조 왕건의 혈육(손자)인 대량원군을 환속시켜 보위를 물려주려 했다. 이미 죽음을 앞둔 왕이었다. 분란이 생길 것을 우려해 그 후견인으로 목종은 서부지역 사령관 강조에게 군사를 이끌고 들어와 호위하라 했다. 근데 강조가 칼을 거꾸로 돌려 목종한테 겨눴다고? 왜? 목종을 폐위케 하고 유배를 보냈다고? 그리고 자객을 보내 죽였다고? 죽음을 앞뒀다는 그가 살아났다고? 안 맞자나? 이미 죽음이 눈앞에 둔 왕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강조康兆의 변變 도대체가 이 난은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이 난을 접하게 되기는 중학교 때 처음이었을 것이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2024. 1. 10. 화랑세기가 아니었으면 영영 묻혔을 문노文弩 화랑세기를 통해 부쩍 친숙한 이름이 된 신라 중고기 인물 문노는 표기가 두 가지라, 삼국사기와 같은 기존 문헌에서는 文努라 하지만, 화랑세기는 文弩라 해서 세심한 차이가 보인다. 둘 중 어느 쪽이 실상에 가깝냐 단언하면 단연 후자라, 이는 그가 걸은 길 때문이다. 대가야 왕실 계통이라는 혈통을 지녔다지만 사통해서 낳은 아들로 그 혈통이 확실치 아니한 그는 대가야 멸망과 더불어 신라사회에 편입되기는 했지만, 이렇다 할 배경이 없어 무직武職을 전전할 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간난을 뚫고서 마침내 출세한 그는 군사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냈으니, 이런 족적을 볼 적에 그것이 비록 태어나서 얻은 이름이 아니라 훗날 바꾼 이름일 가능성이 많기는 하지만 당연히 그에 더 어울리는 이름은 文弩다. 글자 그대로는 이.. 2024. 1. 10. 이전 1 ··· 259 260 261 262 263 264 265 ··· 47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