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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410

[독설한국미술사] 도식적 옷주름 불교미술사 같은 분야 종사자들이 항용 어떤 조각품을 묘사할 때 쓰는 말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도대체 어떻게 시각화해야 할지 난감무지다. "평면적 신체 표현, 도식적 옷주름" 도대체 뭐가 평면적이며, 어떻게 해야 도식적인지? 제발 불교미술사, 이런 말 좀 쓰지 마시오. (2012. 11. 9) 2020. 11. 9.
국기에 대한 맹세와 운율 맹세문 변천과정은 다음과 같다. 초기 맹세문 :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1974년 이후 맹세문 :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2007년 이후 맹세문 :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이런 맹세문은 낭독을 염두에 두므로 운율을 고려해야 한다. 순전히 운율로써만 평가하면 중간 유신시대 맹세문이 입안에 착착 감긴다. 영시로 말하면 스타카토 쫙쫙. 충성이 주는 파열음이 가장 강렬하다. 다른 두개는 낭독하면 구질구질하고 잘 나가가다 그루터기에 툭툭 채는 느낌을 준다.. 2020. 11. 9.
도전받는 근친혼, 익숙에 대한 반란 모든 질투는 새것에 대한 반란이다. 구시대는 신시대에 자리를 내주기 마련이라 익숙은 언제나 생소에 패배할 수밖에 없어 이를 신진대사라 한다. 장강 물결을 밀어내는 것은 같은 장강 뒷물이다. 그 뒷물도 앞물이 되어 그 뒷물에 다시 밀려난다. 지금 사랑은 언제나 새 사랑에 밀려나기 마련이다. 이를 권태라 한다. 권태란 익숙에의 신물이다. 이 신물은 새것이 나타나면 밀려나기 마련이다. 지금 사랑이 울고불고 왜 날 버리느냐 철퍼덕 주저앉아봐야 소용없다. 익숙은 언제나 생소에 밀려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무수한 사랑과 집착이 새로운 것들을 향해 떠났다. 새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다. 묵은 술은 깨끗이 비워져야 한다. 그 자리 내 자리라 해봐야 굴욕만 남을 뿐이다. 질투 시기에 밤을 지새는 자들한테 고하노니.. 2020. 11. 8.
진골정통과 대원신통, 근친혼사회가 족외혼을 유지하는 장치 신라를 비롯한 한국고대사회에 광범위한 근친혼은 그런 생각을 퍼뜨린 주범 중 하나가 중국에서 비롯하는 유가 논리였지만 그런 중국도 의외로 근친혼이 광범위했으니 이들한테 근친의 기준은 같은 성씨였다. 바로 이 틈바구니를 근친혼이 예리하게 파고 들거니와 고모류 자식을 받아들이는 일이 한 예다. 부계 중심으로는 명백히 다른 성씨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명백히 같은 피다. 그럼에도 성씨가 다르다는 이유로 근친이라는 혐의를 피해간 것이다. 신라는 근친혼이라 하지만 이 근친혼은 배우자는 같은 부족에서 취하지 않는다는 인류학의 오랜 발견을 언뜻 배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른바 족내혼族內婚에 대한 족외혼族外婚이다. 한데 화랑세기가 제공하는 신라사회는 저 오랜 발견을 단 한 치도 배신하지 않는다. 근친혼과 족외혼은 명백히 상극.. 2020. 11. 8.
[스핀오프] 동륜의 태자책봉, 삼국사기의 이례異例 *** [개한테 물려죽은 진흥왕의 태자] 스핀오프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편년체 정사로서는 참말로 불친절하기 짝이 없으니, 무엇보다 너무나 축약이 많아 전후맥락이 생략한 기술 천지라는 점이 첫 손에 꼽힌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을까 하는 단서를 우리는 그것을 지어받치면서 그 시말을 정리한 편찬 총책임자 김부식의 말에서 일단을 추론하니 무엇보다 《삼국사기》 이전 그 위치를 점한 《삼국사三國史》의 번다함을 꼽을 수 있다.(이 《삼국사》를 김부식의 《삼국사기》 출현 이후에는 구별을 위해 《구삼국사舊三國史》라 부른다.) 이 번다함은 김부식보다 후대에 태어나 《구삼국사舊三國史》와 《삼국사기》를 모두 본 이규보가 전재한 《구삼국사》 동명왕편東明王篇으로 증명하거니와 두 판본을 비교하면 《삼국사기》가 무엇을 지향했.. 2020. 11. 7.
무한반복하는 한글창제 신화 "한글의 창제에 대한 수많은 연구의 저변에는 '영명하신 세종대왕이 사상 유례 없는 과학적인 문자를 처음으로 만드셨다'는 국수주의적인 주장이 깔려있어서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어떠한 연구도 용납되지 않는 것 같다. 또 우리 학계의 풍토도 한글의 위대성, 과학성, 편의성에 대한 연구라면 얼마든지 환영을 받지만 이에 반하는 연구는 철저하게 외면하거나 배척하였다. 그리하여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비슷비슷한 연구가 반복되었고 이제는 누가 어떻게, 얼마나 더 한글의 우수성을 찬양하는지 경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이해하는 수준의 연구논문이 학회지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정광, 《훈민정음과 파스파 문자》, 역락, 2012, 11쪽 2020.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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