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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410

[개한테 물려죽은 진흥왕의 태자] (2) 폐위되는 왕비 pictures by Songeun Yeo 진흥왕비는 두 명이다. 선비先妃는 앞서 말한 어머니가 같은 지소태후인 숙명淑明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공히 진흥왕비로 기록한 사도思道는 애초에는 후궁이었다가 숙명이 쫓겨나자(실은 스스로 물러나자) 뒤이어 왕비가 되었다. 그 교체 시점은 나중에 말하게 되겠지만 진흥왕 재위 27년(566) 무렵이다. 그렇다면 왕비 교체를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앞서 본대로 진흥왕은 왕비 숙명이 어머니가 같다 해서 총애하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숙명 역시 다른 남자를 찾아다녔으니, 그가 바로 어머니 지소가 총애하는 청년 이화랑이었다. 이화랑은 지소가 아낀 데다가 음악과 문장 모두 잘해 궁중을 드나들면서 지소의 잠자리까지 시중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화랑은 자연 지소의 딸들인.. 2020. 11. 6.
이종욱이 《화랑세기》를 진본으로 본 가장 큰 이유 이는 그의 전공 혹은 관심사와 연동한다. 사석에서도 그런 말을 여러번 했지만, 그는 실은 역사학도이기 이전에 인류학도를 자처했다. 그는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인가에 가서 인류학을 공부한 걸로 기억하고, 실제 수업 시간에도 이 인류학의 중요성을 매번 설파하곤 했다. 나는 인류학을 정식으로 터득한 적이 없다.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나는 그쪽에는 젬병이다. 다만, 나는 내가 인류학을 배우지 않아도, 어떤 텍스트에 작동하는 그 원리는 간취하는 능력이 있다. 이 능력, 실은 내가 인류학을 배우건 아니 배우건, 나는 그것과 관계없이 나는 그 작동 원리를 간취해 낸다고 나는 믿는다. 이종욱은 인류학을 습득하고, 그것에 심취한 사정에서 화랑세기라는 텍스트를 보고, 그에서 드러나는 이런 인류학적 원리 혹은 법칙 혹.. 2020. 11. 5.
[개한테 물려죽은 진흥왕의 태자] (1) 엄마 애인을 눈겨본 딸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은 정식 마느래가 박씨 사도부인思道夫人이다. 《화랑세기》에는 이와는 전연 다른 내용이 있다. 사도는 후비後妃다. 그에게는 사도에 앞서 정식 부인으로 맞아들인 이가 있었으니 숙명淑明이다. 숙명이 바람 피우다 폐출되고선 새로 얻은 왕비가 사도다. 숙명은 누구인가? 4세 이화랑二花郞 전이다. "이화랑은 (초대 풍월주인) 위공魏公의 아들이다. 피부가 옥과 같이 부드럽고 눈은 미소짖는 꽃과 같으며, 음률과 문장을 잘 했다. (그런 까닭에) 12살에 능히 (2세 풍월주인) 모랑공의 (화랑 집단 넘버2인) 부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런 그를 진흥왕 어머니인 지소) 태후가 매우 아꼈다. 그때 황화黃華 숙명 송화松花 세 공주가 모두 공을 따라 배우니 이에 숙명궁주와 정을 통하게 되었다... 2020. 11. 5.
수미쌍관하는《순자荀子》 현재 우리가 보는 선진先秦시대 문헌은 대체로 짜깁기라는 느낌이 강하거니와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전사傳寫 과정에서 수많은 착간錯簡, 예컨대 注가 본문으로 치고 올라간다거나 죽간竹簡의 탈루脫漏 현상 등에 말미암은 것이니, 그리하여 같은 문구가 다른 문헌 이곳저곳에서 산발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선진 이후에도 여전하니, 해당 문헌의 저자에 대한 이론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에서 말미암는라. 그럼에도 실로 요상하게도 오직 《순자荀子》만큼은 저 방대한 현재의 모습이 오로지 수미首尾가 쌍관雙關하니, 이것이 도대체 어이된 일인이 이전부터 몹시도 궁금하다. (2012. 11. 4) *** 이런 주옥 같은 글에 순천향대 중문학과 홍승직 옹이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다. 옛날, 제자백가 수업시간에, 제자백가 중 최초로 작.. 2020. 11. 4.
지상과 천상, 이승과 저승의 메신저 혹은 차량들 지상과 천상, 혹은 이승과 저성의 메신저 혹은 그 운반도구로 애용한 것들은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이에서 누락한 것들이 있지만, 우선 생각나는 대로 정리하는 것이다. 이 메커니즘을 이해해야만 한다. 저러한 이동은 곧 생명으로서는 영생불사永生不死라, 그런 존재가 되는 과정을 도교에서는 승선昇仙이라 했으며, 그러한 과정을 거쳐 영생불사하는 삶을 획득한 존재를 바로 신선神仙이라 했다. 따라서 이에서 저로의 이동이 바로 승선이다. 죽음은 영생불사를 위해 모름지기 거쳐야 하는 관문이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고대인들은 그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는, 혹은 죽어서도 죽지 않은 영생불사를 획득했다는 상징 장치로서 저런 운반도구 혹은 메신저를 개발한 것이다. 오늘 신라문화유산조사단이 발표한 경주 토함산 석탈해 사당터 출토 .. 2020. 11. 3.
뜨신 아랫목과 온돌 기원 전후 무렵 한강 유역 주거지 발굴 성과를 보면 공중에세 내려다본 모양새가 나름 독특하니 사각형에 가차운 대문이 있고 그것을 지나면 네 모서리 각을 죽인 이른바 말각抹角 방형 혹은 원형에 가차운 몸체시설이 나온다. 부엌 아궁이는 이 몸체시설 한쪽 귀퉁이에 마련하고 한쪽 벽면을 따라 온돌 혹은 이른바 배연排煙시설을 마련한다. 굴뚝은 거의 예외없이 몸체시설 뒤쪽에 마련하기 마련인데 그 상부 시설이 남아있는 경우는 가뭄에 난 콩만 같아 구경이 힘들다. 언제인지 춘천 쪽 발굴현장에 갔더니 기적처럼 굴뚝 상부도 유추할 만한 족적이 있었다. 이런 주거시설에서 아랫목이 가능했을까? 가능했을 법도 한데 그보다는 페치카 형에 가차울 것으로 본다. 같은 시대 한반도 남쪽엔 온돌은 눈 씻고 찾아보기도 에렵다. 수원대 양.. 2020.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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