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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301

숙수宿水를 말놀음한 소수紹修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 소백산 기슭을 정좌定座한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애초 이름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라, 한국 최초의 서원이면서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이라 해서 대서특필하거니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풍기군수를 역임한 주세붕周世鵬(1495~1554)과 이황李滉(1502~1571)이 그 개창주다. 즉, 풍기군수로 재임하는 주세붕이 처음 이 학당을 세울 때는 백운동이라 했다가, 나중에 같은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퇴계가 주동이 되어 소수紹修로 개칭한 것이다. 서원은 극한 예외가 없지는 아니하나, 그것이 위치하는 데를 따라서 이름을 짓는다. 김녕김씨 집성촌인 내 고향 경북 김천 대덕면 조룡만 해도, 백촌 김문기 할배를 배향한 서원을 이름하기를 섬계剡溪라 하니, 이 서원 앞을 지나는 시내 이름이 섬계인 데서 말미암음이다.. 2023. 4. 15.
국립전주박물관 강연록 '무령왕릉과 쌍릉사이, 백제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전문 파일 2023 국립전주박물관 박물관대학 '문화재 그 이면의 이야기' (국립전주박물관 강당) 중 4월 13일 첫 번째 강좌로 나는 아래를 강연했다. 무령왕릉과 쌍릉사이, 백제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이 강연록은 이미 챕터별로 농가 게재했지만, 그 원문 전체 파일을 첨부한다. 오타 등등이 더러 발견되는데 곤치지 아니했음을 밝힌다. 2023. 4. 14.
옛날신문과 직지, 그리고 박병선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3/04/14/S36WOZXRBNGZHBUS4G2BHB2LVY/ 박병선이 ‘직지’ 첫 발견자 맞나...50년만의 공개가 불러낸 논란 박병선이 직지 첫 발견자 맞나...50년만의 공개가 불러낸 논란 www.chosun.com 오늘자 신문. 그런데 재미있는 건 네이버 옛날신문을 찾아보니 당시 정황을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국 서지학자들은 당시 이거 프랑스에 있는지도 몰랐던 것 같음. 그리고 박병선 선생이 감정을 요청하며 복사본을 들고 왔는데 이쪽에서는 금속활자인지 아닌지도 구별을 잘 못한 것 같은데.. 당시 국회도서관장이라는 분은 직접 프랑스로 가서 박병선 선생 통해서 실물을 실견한 모양인데 목활자라고 .. 2023. 4. 14.
[무령왕릉과 쌍릉 사이, 백제 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일신한 치석治石 기술, 전대미문하는 무덤 집을 만들다 그렇다 해서 하루아침에 없던 기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 전축분을 이식·습득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이 부족한지는 분명히 드러났다. 그 이전 우리는 명색이 치석治石이라 하지만 구석기 시대 그 기술을 벗어나지 아니해서 가공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돌맹이를 주어다가 새로 쌓았을 뿐이니 그건 치석이 아니라 실은 재배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 문제는 바로 이거다. 말 그대로 돌을 가공하자! 이 정도는 공정이 하나 더 늘고 공사 단가가 높아지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차피 우리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우리 가치를 스스로 높이는 것이기에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해서 어느 순간 백제 엔지니어들이 돌을 가공하기 시작했다. 돌덩이는 애초 쓰임새를 염두에 두고 잘라내고, 그것은 다시금 .. 2023. 4. 13.
[무령왕릉과 쌍릉 사이, 백제 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협잡과 혁신, 위기의 양 날개 전축분 도입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백제 장인들한테는 일대 위기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의 이런 좌절 분노을 딛고서 막상 모습을 드러낸 그 전축분 왕릉이었다. 어랏? 우리가 그렇게 전축분은 안 된다고 그렇게 집요하게 공격했는데 막상 완공에 즈음해 드러낸 그 모습을 보고는 또 한 번 좌절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들한테는 주마등처럼 그네들이 이 전축분 이전에 그네들이 만든 다른 왕릉과 오버랩할 수밖에 없었다. 막상 모습을 드러낸 그 벽돌집 왕릉은 누가 봐도 그네들이 지금껏 만든 그것과는 도대체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뽀대가 났다. 우리가 봐도 폼이 나기는 하네, 이런 감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랬다. 겉으로는 중국 놈들이라 해서 별 다를 것도 없다 했지만, 그네들 무덤 만드는 기술은 분명 우리보다.. 2023. 4. 13.
[무령왕릉과 쌍릉 사이, 백제 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수릉壽陵, 대권 잡은 군주가 맨 먼저 만든 자기 집 구미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동아시아권 군주, 특히 중국의 경우 대권을 잡으면서 가장 먼저 착수한 일 중 하나가 자기가 죽어서 살 집, 곧 제 무덤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렇게 생전에 미리 만든 왕릉을 수릉壽陵이라 한다. 이런 전통이 한반도 문화권에서는 어떻게 발현되는지 모호한 측면들이 있다. 죽을 때를 대비해 미리 만든 무덤은 그 죽을 시점에 무덤 문을 따고 들어가야 하는데, 신라의 경우 중고기 이전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있으니, 경주분지를 장식하는 저 거대한 무덤들은 적석목곽분이라 해서, 개중 몇 기를 발굴하기는 했지만, 수릉 흔적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문을 따고 들어가 시신을 나중에 안치하기 위한 시설은 아무래도 적석목곽분은 구조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으며, 그런 전통은 중고.. 2023.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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