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옛 가축과 작물 이야기/식물고고학24 잡곡농사보다 도작이 우월한 것이 아니다 잡곡농경과 도작농경의 생산성 차이는 필자가 보기엔 한반도의 경우, 연작 가능성 유무에 달려 있었을 것이라 본다. 다시 말해 잡곡농경 자체가 도작 농경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 척박한 한반도 환경에서는 순수 잡곡농경으로는 연작이 도저히 불가능하여 떠돌이 화전농경을 극복할 수가 없었던 것. 그것이 이유라고 생각한다. 같은 잡곡농경이라도 황하유역처럼 범람으로 특별한 시비없이도 매년 연작이 가능한 땅이라면, 당연히 문명이 일어난다. 신석기시대 잡곡농경만으로도 세계적 수준의 문명이 황하유역에서 일어난 이유 그리고 청동기시대 도작이 시작되면서부터에야 문명이 한반도에서 일어난 이유는 잡곡과 농경의 생산성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무논과 연작 가능성, 한반도의 척박한 토질조건 등 이런 부분이.. 2024. 9. 12. 논과 밭의 차이 우리는 한국사에서 도작과 함께 한국사 수준의 일약 도약이 이루어졌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왜 도작이 전작에 비해 그렇게 우월한지 설명이 명쾌하지 않다. 땅을 갈아 씨만 뿌리면 자라는 줄 아는 전작에 비해 도작은 논도 만들어야 하고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어야 하니 전작보다 우월하지 않겠냐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실제로 전작은 땅만 갈아 씨만 뿌리면 이루어지는 농사가 아니다. 전작을 수준있게 짓는 데는 많은 노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특히 시비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상고시대의 전작이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전작이란 결코 씨 뿌리고 사냥 다니다 돌아와서 추수만 하면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전작도 도작만큼 노력과 기술이 필요한 농경기술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도작과 함께 일약 생산성의 도약.. 2024. 9. 12. 논농사는 매년 일으키는 인위적인 홍수와 같다 문명중심 지역 특징 중 하나가 하천의 범람이다. 특별한 시비 없이도 매년 새로운 토양이 밀려 내려오고 축적된 노폐물이 쓸려 나가 생산성 높은 농사를 연작하는것이 가능해진다. 신석기시대, 아마도 한반도의 농부들이 척박한 지력을 극복할 길이 없어 정기적으로 화전을 통해 간신히 농사짓던 시절에도 황하유역이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찬란한 문명이 탄생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 문명은 황하의 선물이자 나일강의 선물이기도 하다. 한반도에서 무논 농사는 매년 인위적인 홍수를 일으키는 것과 같다. 무논에 물을 넣었다 빼고, 상류에서 흘려 내려오는 토양과 거름 성분을 잡아 논안에 가둠으로써 인위적인 홍수의 효과를 지속적으로 주어 비로소 이전의 정처없는 화전 떠돌이 농경을 종식시킬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이루었다는.. 2024. 9. 12. Early Modern이라는 에도 일본, 그 옆나라가 뜬금없는 들고 나온 여전제 일본사는 식민지화하지 않고 자생적으로 제국주의까지 진입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다른 아시아 국가와 차별화하는데 성공하였다. 메이지유신 이전 에도시대 일본사는 서양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략 어느 수준에 해당하는가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있겠지만 최근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대략 Early Modern정도에 해당한다고 보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Early Modern이라면 어느 정도의 단계인가? 위키 설명을 보면 이렇다. Various events and historical transitions have been proposed as the start of the early modern period, including the fall of Constantinople in 1453, the start of th.. 2024. 9. 10. 신석기시대 화전론에 대한 해외의 시각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필자가 이 블로그에 쓴 신석기시대 화전론은 필자가 처음 한 이야기가 아니다. 온라인만 찾아 봐도 필자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한 이야기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예를 들자면, A. The results of the experimental slash-and-burn demonstrate that permanent cultivation was not possible without additional organic matter inputs. Therefore, agriculture in the Neolithic could have been maintained by slash-and-burn of new areas of the forest, or by the addition of org.. 2024. 9. 10. 조선후기, 느닷없이 들고나온 여전제 동아시아사의 발전을 보면 한국사에서 유난한 부분은 사전私田을 뒤집어 공전公田화한 시도가 최소한 두 번은 성공했다는 점이다. 한 번은 전시과 제도. 또 한번은 과전법 체제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한국사에는 있지만 전시과제도와 과전법 체제는 사전을 부정하고 경제제도를 과거로 되돌린 반동적 흐름에 해당한다. 공전제를 무너뜨리고 사전이 성장하여 나올 때 한국처럼 사전을 완전히 해체하고 공전제로 복귀를 관철한 나라는 없다. 이러한 흐름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가면서 억지로 만들어 놓은 공전의 구조는 다시 무너지고 사전이 다시 자라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조선 후기. 나라가 잘 안 돌아간다고 공전제를 다시 하자고 들고 나온 얼빠진 유학자들이 있었다. 여전제 한전제 균전제 다 마찬가지다.. 2024. 9. 10. 이전 1 2 3 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