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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1547

천마도 바탕이 된 자작나무 껍질 천마총 천마도 장니 밑바탕 재료가 자작나무 껍질이다. 지금 평지에서 자라는 자작나무는 부러 관상용으로 심었지만 기후가 맞지 않아 잘 크지를 않는다. 앞 사진 속 자작나무는 2010년 5월 30일, 오대산 북대암으로 스님을 만나러 뵈러 갈 적에 그 정상부에서 만났다. 나는 자작나무만 보면 껍질을 홀라당 벗기곤 한다. 껍질은 이처럼 잘 벗겨진다. 그림을 그리려면 속껍질까지 홀라당 벗여야 하지만 그러면 나무가 죽어 맛배기만 본다고 벗겨봤다. 이 자작나무 껍질을 북대암에서 보니 이런 식으로 벗겨서 말리고 있었다. 아마 무슨 약재나 차로 쓰는 게 아닌가 했다. 혹여 기능을 아시는 분은 교시 바란다. (2014. 4. 9) 2023. 4. 6.
홍릉수목원의 언터처블 넘버원 문배나무 홍릉수목원을 장식하는 나무로 이맘쯤 그 어떤 동료나무보다 압도적 위용을 자랑하는 이가 이 문배라 돌배나무 일종인 이 문배는 그 개화한 모양이 같은 시기 같은 장소 왕벚을 능가하지만 눈길은 덜 끈다. 이 문배나무 내력과 특징은 아래 현장 안내판으로 대체한다. 문배 장미과 / 한국 Pyrus ussuriensis var. seoulensis 개화 : 4월 / 결실 : 5월 새로운 식물을 발견하여 이름을 처음 붙이게 되는 나무를 기준표본목 이라고 한다. ■ 1935년 이곳의 문배(1906년생)는 현 위치에서 일본의 식물학자인 나카이(Nakai) 교수에 의해 처음 발견되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나 1966년 이창복 선생에 의해 다시 아름 지어진 나무로써 학술적 가치가 큰 나무이다. ■ 문배는 산돌배나무의 변종으.. 2023. 4. 4.
조선 선비가 새벽 두 시에 잠을 깨는 까닭 물론 저 시절에도 사람 나름이라 농땡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진배없어 종일 퍼질러 자고 술 노름 일삼는다. 하지만 서원 같은 데서는 저리 했으니 지금 보면 와 조선시대 사람들은 부지런했구나 하겠지만 우리가 간과한 대목이 있으니 저때는 전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전기가 없으니 오죽하면 형설지공이라 해서 반딧불 잡아 놓고 보름달 달빛 반사하는 눈오는 밤에 책을 읽었겠는가? 해가 지면 잤다. 호롱불? 그 밑에서 책 읽다보면 금방 시력 간다. 책도 낮에나 읽는 소일이지 밤에 읽겠는가? 우리 동네는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면서 전기라는 게 들어왔으니 한글은 호롱불 밑에서 깨쳤다. 전기가 들어오건 말건 지금도 농촌은 농번기 시즌이면 해가 지면 모두가 뻗어버린다. 녹초가 되니 쏟아지는 잠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초저녁에 잠.. 2023. 4. 4.
여의도선 벚꽃 vs. 인왕산은 산불 두 군데 다 난리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라 여의도선 벚꽃 구경 인파로 미어터지고 인왕산은 화마가 덮쳐 인근 주민들까지 대피하는 대소동이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같은 시간이 빚어내는 풍경이다. 둘 다 계절성이 아주 강하지만 한쪽은 이 시즌이면 으레 이런 일이 일어나고 다른 쪽은 이 시즌의 특권이긴 하나 좀처럼 드문 불규칙성을 갖는다. 그렇다고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탓하겠는가? 단군조선 이래 으레 그랬다. 한쪽에선 누군가 죽어갈 때 다른 쪽에선 누군가는 태어났다. 2023. 4. 2.
전통문법론, 그것을 직접 계승한 일반언어학, 특히 변형생성문법의 경우 전통문법 학교문법론자들이 문법을 찾았다면 일반언어학론자들은 비문법을 착목했다. 전자가 그라마티컬을 추구한데 견주어 후자는 언어현상에 빈발하는 언그라마티컬을 주시하면서 그에서 언어학의 일반법칙을 추구했다. 그런점에서 후자는 전자를 경멸하고 그에서 한발 더나아가 그들은 언어학도 아니라 깡그리 무시했지만 후자야말로 전자의 직접 유산이며 그 직계후손이다. (2015. 3. 17) *** 이 점에서 20세기 언어학 혁명이라는 촘스키 변형생성문법 이론이란 것도 실상 전통 문법의 직접 계승이며 직계 후손이다. 그가 말하는 인간의 생득적인 언어습득 능력이란 실상은 교육화한 학교문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간은 미지하는 힘으로 언어를 습득하는 능력을 타고 나지만 문법을 동반하지 아니하는 소리를 언어라 할 수 없다... 2023. 3. 17.
뒷방으로 밀려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정희 회심작 중 하나인 성남 운중동 한국학중양연구원이다. 출범 당시 이름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거 개장하고 얼마 뒤 박정희는 탕탕탕에 갔다. 박정희 유산이라 해서 적지 않은 질타를 받은 곳이기도 하며 실제 그것이 타당한 면이 많다. 한국정신문화 탐구를 내걸었지만 정신교육하는 감옥과도 같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 국책연구원이 이룩한 무수한 성과가 있으니 구비문학대계와 민족문화백과사전 편찬과 같은 일은 불후하다. 나름 한국적 풍토를 살린다며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건축물을 만들었다. 주변 풍광은 천지개벽이라 내가 이곳을 출입처란 이름으로 들락거리기 시작한 1998년 말만 해도 그야말로 운중동雲中洞, 구름 속 동네, 선경 같아, 비가 오는 때나 비온 직후 연무에 쌓인 이 동네는 귀곡산장을 방불했다. (2.. 202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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