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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402

한국교회가 왜 성립되었는가, 아직 전혀 규명된 바 없다 한국교회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가 아니라, 왜 성립되었는가, 필자가 아는 한 이에 대해서는 아직 전혀 규명된 바 없다. 단순히 보자면 야훼를 모르고 살던 아시아의 한 국가에 마침내 기독교가 전파되어 들어갔다, 선교사 한 명 보낸 바 없는데 교회의 씨앗이 생겨났으니 이것은 성령의 움직임이요 기적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초기 한국교회의 주역인 인물들-. 특히 초기 한국교회의 이른바 "장로", "집사"급 인물들 - 필자가 여기서 굳이 개신교의 교직의 명칭을 초기 천주교회의 주역들에게 붙인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이들이 왜 일류 성리학자에서 느닷없이 어느날 교회를 만들었는가, 이 부분은 전혀 해명된 바 없다는 말이다. 이것을 조선 유학에 염증을 느끼고 진리를 찾다 보니 교회의 진리를 발견하고 귀.. 2025. 4. 28.
성리철학에 대한 설명에서 시작해야 하는 초기 한국교회사 우리는 한국 초기 교회사를 연 인물들이 당시로서는 일류급 성리학자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는 것 같다. 필자가 조선후기 성리학의 불임성을 자주 지적하다 보니 이 찬란한 동아시아 중세 철학을 무시하는 것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성리학의 완성도나 수준은 동아시아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이를 깨고 나오는 것은 성리철학에 침잠해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당시 조선의 일급 성리학자였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교회 건립에 뛰어 들었는지 그 이유를 단지 성령의 역사로만 이해하거나 공리공론 성리철학의 반발로 기독교에 귀의했다고 보는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반대다. 성리학자가 왜 기독교에 매력을 느끼는가? 사실은 성리철학 자체가 기독.. 2025. 4. 28.
개신교와 더 닮은 초기 한국 천주교 이런 생각 해보셨는지 모르겠다. 한국 천주교는 재미있는 해프닝이 있다. 한국 천주교가 자랑스러워 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선교사의 선교 없이 교회를 세웠다는 부분. 선교사나 신부가 오지도 않았는데 신도들끼리 성직자도 정하고 미사도 드리고 성사도 주고 했다는 부분-. 그러다가 북경성당에 확인해 보고 정식 성직자가 아니면 성사를 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생적 교회를 해체했다는 부분인데, 사실 한국 천주교에서는 이 부분을 자랑스러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냉정히 따져 보면 당시 한국천주교회를 세운 사람들 대부분이 성리학자였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왜 그럴까? 성리학에서는 선교사나 사도전승으로 대표되는 스승에서 제자로의 전수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주교.. 2025. 4. 27.
사하라 사막이 그린이던 시절, 그곳을 터잡은 사람들의 이상한 족보 사하라 사막이 지금과는 달리 수풀이 무성했을 7,000년 전 '그린 사하라Green Sahara' 시절, 이곳을 터전으로 살다간 인골 DNA를 분석했더니 현대 어느 인류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엥? 왜? 그들은 대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갔단 말인가?2008년, 고고학도들이 리비아 남서부 다카르코리 바위 그늘Takarkori rock shelter에서 놀랍게 잘 보존된 자연 미라화한 여성 2명을 포함하여 15구 해골을 발견했다. 한때 무성한 “그린 사하라” 일부였던 이 지역은 호수, 식생, 초기 인간 활동이 풍부했다.로마 사피엔차Sapienza 대학(이 대학 고고학과 유명하다)과 밀라노대학 연구자들이 이 유적을 분석하면서, 이 목축민들한테서 알려진 사하라 사막 이남, 북아프리카 또는 근동 그룹과 연결하는 .. 2025. 4. 17.
(당시) 역사의 법칙대로면 개판이었을 일본 중세 지금은 서양사를 기반으로 세계사를 쓰고 읽고 있지만동양사도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통용되던 역사의 법칙이 있었다. 소위 말해서 정통성있는 군자가 다스리는유교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왕조로서 왕을 넘어서는 힘을 휘두르는 정치권력은 모두 이단이나 사설, 역적으로 취급되었다. 이러한 당시의 "역사의 법칙"대로면 일본의 중세사만큼 개판 오분전도 없다. 왕은 전혀 힘을 못쓰고 무사들이 정권을 잡아 심지어는 왕을 우습게 보는 것도 정도를 넘어선 것이었고 일본에서 중세에 전개되는 역사는 전통적인 동양의 "역사의 법칙"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족보도 없는 역사의 전개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일본의 중세사가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서양사를 만나게 되면서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메이지 유신 이후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의 .. 2025. 4. 6.
너무 쉽게 받아 쓰는 "역사의 법칙" 역사를 논할 때"역사의 법칙"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법칙이라는 건 책 한 권 보고 뚝딱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현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이 있어야 되고 만들어 낸 "법칙"에 대한 부단한 검증작업이 있어야 한다. 소위 우리들이 역사를 볼 때 알게 모르게 통용되는 "역사의 법칙"그 "역사의 법칙" 만드는 데 우리가 세상 모든 나라 역사를 두루 살펴보기를 했나?필자가 생각하는 바 우리나라에서 통요되는 소위 "역사의 법칙"은 개별사를 제대로 음미한 데서 나오는 경험칙에 뿌리 박은 통찰이 아니라 외국의 누군가가 이야기한 것을 허겁지겁 우리 역사에 외삽하여 해석한 것이 대부분이다. 역사의 법칙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면 적어도 어떤 나라, 어떤 사회에서도 통용되는 그런 발전의 룰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 정말 .. 202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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