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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403

외발뜨기(흘림뜨기), 족보의 탄생 비결이 된 제지술 한국족보박물관 제2전시장 한가운데 닥나무 껍질(백피)와 분산제(황촉규 뿌리)가 수조에 담기고 발틀 위에 발을 올려 한지를 뜬다 족보를 만드는데 사용된 전통 한지 초지(제지, 제작)기술 전시 한국족보박물관에 소장된 족보의 섬유배양성을 분석하여 초지기술의 개량(근대, 산업)화로 도입된 쌍발뜨기(가둠뜨기) 기술이 아닌 조선시대에 한지를 만들던 외발뜨기(흘림뜨기) 기술로 제작된 종이가 16세기~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족보에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물론 전수 조사를 한 것이 아니니 예외가 나타날 것임. 그래도, 일단은, 전시장 중앙을 차지한 오브제가 전시의 의도를 말해 줄 것. 그런데 왜 철망안에 가두었을까? 팬더도 남방돌고래 제돌이처럼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할까? 팬더를 보호하고 관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2024. 9. 21.
과격한 척불론은 성리학의 본령이 아니다 물론 척불론은 성리학자들이 계속 이야기한 부분이긴 하다. 당대의 거목 유학자로 성리학의 남상을 이룬다고 평가받는 한유도 그 유명한 (논)불골표에서 척불의 뜻을 남겼고 이 글은 그 후 천여년간 유학자들이 줄곧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의 모든 척불론도 이러한 흐름의 파생이다. 그런데-. 척불론은 성리학의 주장에 분명히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조선처럼 불교의 씨를 말리라고 한 사람은 없다. 벽이단론闢異端論은 이미 맹자에서 나오는 오래된 유교의 주장이지만 이 벽이단론은 불교를 씨를 말려버리라는 소리가 아니다. 이 때문에 척불론을 포함한 성리학이 국가체제교학이 된 송대 이후의 중국, 에도시대 이후의 일본에서도 불교는 여전히 살아 남은 것이다. 이 두 나라에서는 중앙정치와 사대부의 정신세계.. 2024. 9. 20.
아는 것보다 더 나간 여말선초의 사대부들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이 사서집주에서 주희가 적어 놓은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은 16세기이지 싶다. 사서집주가 워낙 유명하고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이를 우습게 보는 경우도 있던데 사실 성리대전이니 하는 성리서를 본다고 해서 사서집주의 수준을 많이 뛰어 넘는 것이 아니다. 조선성리학 16세기의 발전은 성리대전과 각종 성리서를 수입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사서집주에 대한 오랜 침잠의 결과로 그 내용을 마침내 이해하게 된 데서 온다. 사서집주의 성리철학 주가 이해하기 상당히 난해해서 그것을 이해하고자 주자어류니 성리대전이니 하는 것을 보는 것이지 사서집주의 주자 주 자체가 수준이 낮은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말이다. 사서집주의 주자 주를 다 이해하면 다른 성리철학 관련 서적은 볼 필요도 없다. 그 안에.. 2024. 9. 20.
절 재산이 탐나 벌인 척불정책 물론 성리학에는 척불적 기조가 있다. 그런데-. 그 척불적 기조의 정도가 문제겠는데, 당장 성리학자의 원류 중 하나로 척불론의 원조격이 될 한유만 해도 논불골표論佛骨表 등을 보면,부처의 말을 다 믿지 말고 이를 중앙 정치판에 끌고 오지 말라는 이야기지절 집을 뺏고 재산 몰수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조선에 들어오기 이전의 송-원대 성리학자들 주장 어디에도 절집 재산 빼앗고 박해하라는 소리는 없다.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네 번의 폐불운동이 있어 불교를 탄압했는데정작 성리학이 흥한 후 북송대 이후에는 제대로 된 폐불운동이 일어난 바 없다. 앞에서도 한 번 쓴 것 같은데 여말선초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이해하는 성리학 수준은 그다지 깊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주자의 사서집주 주석도 완전히 이해 못한 수준이었을 것이라 .. 2024. 9. 20.
일 시키고 보수를 줘서 신기했던 청계천 준천 영조가 말년에 당신이 했던 일중에 가장 잘 한 일이라 자평했다는 청계천 준천. 이 사업은 신기하게도 사역한 사람들에게 보수를 줬다. 필자가 알기론 이것도 국고에서 나온 게 아니라 내탕금에서 지급된 것으로 아는데, 아무튼 어쨌건 준천 한 사람들에게 보수를 줬다. 보수를 안주고 일을 시키면 어떻게 될까? 가끔 그런 생각 한 적이 없는가? 조선시대에 만들어 놓은 성벽저걸 성벽이라고 쌓았나 싶은 그런 성벽들 말이다. 죄다 공짜로 부려 먹고 시키려다 보니 만들어진 성벽이 그 모양이다. 얼마전 본 유튜브에서 북한에서 나무 심기 할 때 나무를 어떻게 심는가 설명하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탈북민 이야기로는 빨리 갈 생각에 뿌리를 다 쳐내고 꽂아 놓고 집에 간다는 것이다.당연히 그 나무는 다음 번에 오면 말라죽고 없다. 요.. 2024. 9. 19.
조선정부의 회심의 일격: 일 시키고 돈 안주기 앞에서 직역과 석고를 묶어놔 스스로를 사무라이라고 주장하는 자라면 석고제에 따라 쌀을 받으면 반드시 뭔가 내놔야 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던 일본과 달리 대대로 지주로 살면서도 국가에 대해 어떠한 의무도 지고 있지 않던 조선의 사대부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렇다면 조선왕조는 어떻게 지탱할 수 있었을까? 토지와 직역을 묶어놔서 유사시 수십 만 병사를 일거에 모을 수 있는 일본과 달리 선비들이 땅은 땅이요 의무는 의무로서 지방의 토지소유자인 선비들이 국가에 어떤 의무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 조선 후기의 시스템이었다면, 조선정부는 도대체 어떻게 정부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이 바로 "백성 일시키고 돈 안주기"다. 조선시대 내내 각종 부역과 노역은 공짜로 사람들을 징발.. 2024.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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