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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태생 자체가 막부 정권이다 동시대 중국은 당唐 제국이 결딴난 상황이라, 절도사 시대가 개막하면서 막부정권 문을 다시금 열었다. 다시금이라 하는 이유는 인류 역사는 언제나 군사력을 바탕으로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연 까닭이며, 이에서 후삼국시대 개막과 그에 따른 고려왕조로의 통일 역시 이에서 단 한 치 어긋남이 없는 까닭이다. 절도사에 비견하는 중앙 정부 파견 관리가 없던 신라의 경우, 도독이니 뭐니 해서 무던히도 봉건제후화하는 지방 거점 권력을 억누르고자 했고, 그것이 장기간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겉만 그리보였을 뿐, 속으로는 발호하는 권벌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도독들이 사라진 자리에 숨을 죽이고 있던 지방권력들이 틈바구니를 헤집고 나서기 시작했으니, 깡패 두목들까지 설치는 막부시대가 화려한 팡파르를 울리며 개막했다. 고려는 태.. 2024. 2. 7.
거부당한 희망퇴직, 출근거부투쟁으로 저항한 최항 본격적인 그의 시대 개막과 더불어 그대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국정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성종의 물음에 응대한 최승로 시무 28조 중 일부는 성종이 채택했다. 다만,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은 그 시무책 중에서도 오직 최승로의 그것만 남은 까닭에 그것이 새로운 국정 정책으로 채택되었다 해서, 꼭 그것이 최승로만의 독창적인 발안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실 최승로가 지적한 국정방향이란 것들도 뜯어보면 새로운 내용은 없고 당시 이를 응대한 신하들이라면 누구가 지적했을 법한 것이 대부분인 까닭이다. 내가 보건대 한국역사학은 이를 혼동했다. 개중에는 따라서 꼭 최승로만이 아니라 다른 신하들 시무방진책에도 보였을 내용이 카니발 폐지 혹은 축소였다고 보이는데 이건 시대 흐름상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 2024. 2. 7.
서희, 여든 할아버지가 으랏차차 해서 얻은 아들의 아들 파블로 피카소는 1881년 10월 25일에 태어나 1973년 4월 8일에 죽었다. 백수가 흔치 않게 된 요즘이야 대수롭지 않겠지만 당시 의료 사정을 고려할 때 92년 성상이라는 기록적인 장수를 누렸다. 더 큰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정력이 더욱 용솟음쳤다는 사실. 끊임없이 여자를 바꿔제낀 그의 마지막 자식은 팔로마 피카소로 알고 있는데 1949년생이라, 68세에 낳은 딸이다. 피카소보다 대략 천살 많은 서신일徐神逸이라는 사람은 피카소를 무색케 한다. 친구들은 다 송장이 된 여든살에 으랏차차 해서 아들을 낳았고, 더구나 그 아들과 그 아들의 아들과 다시 그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모조리 재상을 지냈으니 이렇게 후손 복이 많은 사람 있을까 싶다. 그의 아들이 내의령內議令까지 지낸 서필徐弼이요, 서필의 아들이 이.. 2024. 2. 7.
아시안컵 축구 4강전 패배에 부친다 요르단 전력이 생각 외로 강했다. 나아가 오늘 준결에서 두 골 모두 결정적인 패스 실책이 빌미가 되었다는 점 그것이 이번 대회 내내 최악 경기력으로 평가받는 박용우가 첫 골을 헌납한 점 그리고 황인범 역시 조규성 박용우가 하도 욕을 먹는 바람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내 보기엔 이번 대회 내내 경기력 최악이었고, 두 번째 실점이 그의 실책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곱씹어 보아야 한다. 둘은 후반 시작과 더불어 바로 교체했어야 했다. 더구나 황인범은 이른 시간 받은 경고가 계속 문제가 된 상황이었다. 이는 결국 클린스만 용병 실책으로 귀결한다. 클린스만도 무슨 생각이 있어 박용우를 계속 믿은 모양이지만, 오늘도 실점 장면을 포함해 세 차례 정도 있을 수 없는 어이없는 실책을 저질렀으니 그런 그를 계속 기용한 건 이.. 2024. 2. 7.
호남 마한론에 꿀 먹은 벙어리들 낙랑이 평양인가 요동인가 요서인가 하는 걸로다가 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민족주의 재야 엉터리 사학이라 공격하면서 어째 전남 마한론은 다 꿀먹은 벙어리인 거임? 호남이 마한 맞어? 왜 한 놈도 얘길 안해? (2022. 2. 7) *** 삼국이 정립한 이래 호남이 마한이라는 근거는 단 한 군데도 없다. 그 단 한 군데도 없는 마한이 느닷없이 출현해 제국을 만들고 있다. 한데도 이것이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 하는 사람이 없다. 묻는다. 마한이 어딨단 말인가? 2024. 2. 7.
Well-dying은 사찰에서, 서희 부자의 경우 요새는 죽음을 보통 병원에서 맞이하지만, 그 이전에는 집에서 죽었다. 불과 몇십년 전만 거슬러올라가도 그랬으니, 앞서 신동훈 박사께서 쓴 대로, 병원에 있다가도 집에서 죽어야 한다 해서 죽을 때가 되면 굳이 집으로 모셨다. 내 선친은 집에서 말년을 몇년 동안 누워계시다가 집에서 돌아가셨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 만한 고역인지 모른다. 불효를 논하기 전에 이는 죽어가는 사람도, 남아있는 사람도 못할 짓이다. 병원으로 가야 한다. 악습이라 해야 할 이 전통이 한국사회에 자리잡은 것은 주자가례 도입이 결정적이었다. 더 정확히는 유교가 불교를 완전히 타도하고 절대 윤리로 군림하면서 이런 전통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불교가 국교이다시피한 고려시대에는 어땠을까? 있는 집안에서는 보통 죽음을 사찰에서 맞이했다. 요양을.. 2024.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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