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활자인쇄는 그렇다고 치고
목판인쇄-.
목판인쇄를 하고 나면 충분한 부수가 인출되어
목판을 만든 수고와 경비를 상쇄하고도 남는 경우도 물론 경우에 따라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 일본은 거의 목판이 없다.
에도시대 이전 이야기다 .
왠 만한 건 전부 필사본이다.
일본서기 고사기 심지어는 육국사까지도
에도시대 이전 흘러 내려오는 것들은 모두 필사본이고
독서층이 급증하는 에도시대 이후에나 이런 책들은 인쇄되어 산출되었다.
문제는
우리나라 책들인데
우리는 물론 필사본도 많겠지만 인쇄본이 정말 많은 것 같다.
활자본은 그렇다고 쳐도
과연 이 많은 목판 인쇄본이 경제적으로 타당한 것들이었을까.
예를 들어 팔만 대장경
초조대장경까지 하면 16만장 이라는 건데
도대체 이 팔만 대장경 몇 부나 인쇄했을까.
이 거대한 팔만대장경을 제대로 인출한 부수가 몇 부일까 하는 것이다.
목판을 새기는 것이 경제적으로 타당한 행위였을까.
조선후기 송시열의 송자대전.
목판이 남아 있는 것만 일 만 장이 넘는다.
이것 몇 부나 찍었을까.
경제적으로 이게 타당한 사업이었을까.
필자 생각에는 금속활자는 한번 조판하여 인출한 후 판을 깨버리니 그렇다고 쳐도
목판은 이게 도대체 경제적으로 타당한 사업이었는지
목판인쇄의 경제학
이런 연구가 한 번 나와야 하는 것 아닐까.
조선전기 틈만 나면 우리에게 찾아와 대장경 좀 달라는 일본.
목판을 직접 자기들이 새겨 인출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수지가 맞았을까 아니면,
정기적으로 사신을 보내 대장경 인쇄해서 좀 달라고 매달리는 편이 나았을까.
재미있는 건 대장경 목판인쇄는 일본의 목판인쇄술이 흥하던 에도시대에라도 한 번 시도되었을
만한데
필자가 아는 한 일본에서 대장경 작업은 메이지시대까지도 시도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경제적으로 수지가 안 맞는 작업이었다는 이야기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
삼국사기 목판을 인쇄하여 뿌리는 게 나았을까 아니면
일본서기 고사기처럼 필사하여 전하는 게 나았을까.
중국의 목판인쇄
이해할 수 있다.
나라가 크니 독자층도 많았을 테니.
우리의 경우 국보 보물이 된 책들이 대부분 인출한 책들로 아는데
이것이 경제적으로 제대로 된 설계였을지 의문이 간다는 말이다.
당시의 경제적 상황,
독차층 규모,
이런 것들을 모두 고려할 때
과연 목판을 새기는 것이 맞는 것이었나.
그런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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