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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활자의 출현은
경제적인 문제였을 것 같다.
목판으로 뭔가 수지타산이 안 맞으니
적은 부수를 싸게 인출해 낼 방법으로 활자인쇄가 성행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목판 인쇄에서 대략 몇 부 정도 찍어내야
필사의 비용을 확실히 넘어설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 목판인쇄, 활자인쇄 등등은
아마 돈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을 것 같다.
어떤 책이 왜 목판으로 나왔는가,
왜 활자로 찍혔는가,
왜 필사가 되었는가,
결국 돈 아니겠는가?
경제적 문제가 책의 형식을 결정했을 것이라 본다.
이것 남아 있는 문서들을 잘 살피면
수학 공식화할 수 있을 수도 있고,
이 공식으로 부터 당시의 인쇄와 관련된 경제적 사정을 역으로 유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editor's note ***
전통시대 한국 출판은 상업 목적이 아니었다. 조선후기에 방각본이니 해서 상업 출판이 잠깐 성행하기는 했지만 국가 단위는 물론이고 문중 단위에서도 출판은 배부용이었다.
왕실 조정 책은 내사본이라 해서 신하들한테 증정용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책이 거래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비쌌다.
보통 중국 가서 사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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