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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대 초반 명나라 벽돌 무덤 최근 산서성고고연구원山西省考古研究院이 분양시汾阳市 풍학구冯郝沟 명나라 시대 무덤들을 발굴하고선 그 성과를 공개했다.이들 무덤은 남북 장축 방향으로 만들었으며 무덤방은 팔각형 목조 건축물을 모방한 벽돌 무덤으로 드러났다.껴묻거리로는 주로 그릇과 항아리 조합이 드러났다. 개중 M12와 M14라는 명칭이 붙은 두 무덤 제문祭文에 따르면, 당시 여성들은 중요한 자리에서 이름을 쓰지 않고 시집온 아내를 '씨氏', 시집간 딸을 '姐'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이번 발굴은 팔각형 무덤의 발전 변천 및 존속 연대 범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실물 자료를 제공했다고 연구원은 평가했다.제문을 분석한 결과 M12는 정덕正德 원년(1506) 학취郝聚 부부 합장묘이며, M14는 정덕 正德 16년(1521) 학시연郝时演 부.. 2025. 7. 3.
고대 이집트 유전체, 메소포타미아와의 연관성 드러나 고왕국 시대 남성 인골 유전체 완전 시퀀싱 연구진이 최초로 고대 이집트 한 남성의 유전체 전체를 시퀀싱했으며, 그 결과 이 남성이 메소포타미아 DNA와 유전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가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된 지 불과 몇 세기 후인 기원전 2천년대 고왕국 시대를 산 이 남성은 연구자들에게 고대 이집트인의 유전적 뿌리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 남성의 시신은 1902년 상이집트Upper Egypt 누와이라트Nuwayrat 한 무덤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이를 통해 초기 이집트인의 유전적 구성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이번 분석 이전에는 고대 이집트인 유전체가 세 개만 시퀀싱되었으며, 모두 부분적인 분석이었다. 영국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The Fran.. 2025. 7. 3.
웨일스 카디프 도심서 청동기시대 고대 매장지 발굴 지역사회 자원봉사자들과 협력 카디프 트렐라이 공원Cardiff's Trelai Park 햇볕에 바랜 축구장과 인적이 드문 개 산책로 아래에서 고고학자들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청동기 시대 화장 매장지cremation burials 세 곳과 새로운 고대 건물 윤곽을 발견했다.흥미롭게도 이 매장 구덩이에는 화장된 유해가 가득 차 있었다. 이는 기원전 1500년으로 추정되는 '가장 오래된 집'이 같은 장소에서 발견된 지 불과 2년 만이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땅 속 깊이에는 초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2000년~16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 원형 구조물이 발견되어, 이미 복잡하게 얽혀 있던 유적의 연대에 새로운 깊이(와 복잡성)를 더했다. 네 번째 단계에 접어든 카라우 & 엘리 재발견 문화유산 프로젝트.. 2025. 7. 3.
고대 메소포타미아 도시생활 보여주는 찬가 발견 AI 도움 빌려 점토판 문학 자료 완전 해독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뮌헨 대학교Ludwig Maximilian University of Munich(LMU)와 바그다드 대학교 협력으로 2천 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 찬가가 재발견되어 완전히 해독되었다.저널 이라크(Iraq)에 게재된 이 연구 결과는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생활, 제의, 그리고 고대 문학에 대한 자연의 영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LMU 아시리아학 연구소Institute of Assyriology 엔리케 히메네스Enrique Jiménez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수 세기 동안 사라졌던 바빌론 찬가를 발견했다.이 찬가는 도시의 장엄함을 찬양하는 250행 시다. 히메네스 교수와 그의 팀은 전자 바빌로니아 문학(Electronic Babylon.. 2025. 7. 3.
민농시 쓴 여가에 노비 잡으러 다니던 양반들 웃기는 것은 양반들이 민농시를 열심히 써제끼던 그 시절-. 문집에 남길 글에는 불쌍한 농부를 노래하다가붓을 놓고 나면 도망간 노비를 잡으러 다녔다는 것이다. 문집에 남아 있는 조선 시대 사대부들 글을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되는 이유이다. 이들 역시 생활인으로서 먹고 살자니 농사 지을 노비가 도망가면 그걸 잡으러 다녔을 텐데 생활인으로 살면 그렇게 살면 될 것을 가지고 불쌍한 농민의 땀이 어쩌고 하는 글은 왜 짓는가 말이다. 20세기 들어 나라가 망한 후에 우리나라 유도가 완전히 망해 쪽박을 차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절실하지도 않고 솔직하지도 않고 누구보다도 더 속물이었던 주제에아닌 척 군자인 척 글을 남기고 죽고 나면 그걸로 목판 일만장을 파서 문집을 꾸리니 나라가 망한 후에 유가를 어떻게 봤겠는가.. 2025. 7. 3.
오슈 후지와라 미라(13): 오슈 통일 전쟁의 시작 헤이안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앞에서 이야기한 동북지역도 급격하게 세력이 재편되었는데 율령체제를 기반한 헤이안쿄平安京의 야마토 조정 입장에서는 당장 주변의 무사들도 통제가 안 되는 판에 당시로서는 열도의 북쪽 끝에 해당하는 오슈 지역까지 힘이 제대로 행사될 리가 없었다. 이 지역은 헤이안 시대 말, 크게 두 힘이 충돌하여 정국이 복잡하게 돌아갔는데, 첫째는 율령체제의 성립과 함께 이 지역을 무력으로 통치한야마토 조정의 힘, 그리고 둘째는 앞서 언급한 이 지역 토착 부수장俘囚長들이었다. 俘囚長이라고 하지만 이들의 세력도 간단치 않아서 크게 보아 아베 씨(安倍氏), 데와 기요하라 씨(出羽清原氏), 그리고 오슈 후지와라 씨(奥州藤原氏) 세 세력이 있었다. 이 셋 중에 앞선 두 세력, 아베씨와 기요하라씨는 좀 .. 2025.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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