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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2545

조선시대의 만경평야? 만경평야... 조선시대에 이런 풍광 혹은 이 비스무리한 풍광 가능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저 대부분은 황무지였다. (2016. 9. 4) *** 갈대밭이었다. 슾지였다. 잡초였다. 툭하면 물에 잠겼다. 우리가 아는 평야는 대부분이 식민지 유산이다. 보가 만들어지고 댐이 들어서며 수리협동조합이 우후죽순 등장하며 비로소 우리가 아는 곡창지대 평야가 맹글어졌다. 2020. 9. 4.
졸업과 동시에 사제 관계는 끝난다 내 주변, 그리고 이곳 페북으로 얽힌 친구 중에서도 선생질 하는 사람이 많아 대뜸 이 제목에 괜시리 기분나빠할 사람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제 관계는 졸업과 동시에 종말을 고해야 한다. 졸업 이후, 아니 재학 기간에도 동등한 인격체에 의한 관계여야 한다. 문화재 업계로 국한한다. 이 사제 관계가 형성되는 곳은 특히 학예직이 유독 강한데, 이 관계가 청산되지 못해 질질 끌려가는 곳이 학예직 세계다. 한 번 선생은 영원한 선생이라 해서인지 모르나, 그 제자가 공직 혹은 다른 연구기관에 진출하고도 강고한 사제관계가 형성되니, 이러고서도 무슨 행정이 되겠는가? 문화재청이나 국립박물관 학예직으로 진출했으면, 그 순간에 사제관계는 청산해야 한다. 다이다이 맞다이적인 관계여야 한다. 이건 소위 제자들에게도 말할 것도 .. 2020. 9. 3.
고고학의 독점 유적은, 유물은 이 분야 전공자들, 예컨대 고고학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존이고 정비고 그것을 그들이 전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이유다. 학문적인 판단, 예컨대 그 유적 유물이 어느 시대 소산이고 그 성격은 무엇이고 하는 따위는 당신들이 해라. 기타 우수마발까지 우리가 해야 한다는 발상은 성립해서도 안되고 성립할 수도 없다. 한국 문화재정책의 비극은 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까지 독점한다는 점이다. (2016. 8. 26) *** 그래서 문화재위원회 관련 분과는 해당 전공자를 외려 최소화해야 한다. 그 분야 전문가가 정책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가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네들 손에서 정책이 놀아난다. 문화재위원회에서 이른바 전문가집단은 원천적으로 제외해야 한다. 2020. 9. 2.
허공을 향한 삿대질 문화재 현장에서 이런 일 너무 많이 봤다. 언제나 근엄하게, 그리고 언제나 정의롭게, 비난이 아닌 비판을 쏟아내는 사람을 많이 봤다. 한데 언제나 그 비판의 대상은 문화재청을 비롯한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이다. 문화재청더러, 지자체더러,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말을 쏟아낸다. 이런 비판 얼마나 쉬운 줄 아는가? 피드백이 없고, 명예훼손에 걸릴 염려도 없기 때문이다. 한데 그런 일이 언제나 정의인양 포장되곤 한다. 나는 허공을 향한 삿대질, 경멸한다. 싸우려거든 주민, 시민, 국민을 향해 싸우라. 돌진해봐라. 그에서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거들랑 그에 돌진하여 옥쇄하라. 주민, 시민, 국민을 향해 도시락 폭탄 들고 돌진해 봐라. (2017. 9. 2) *** 이런 무책임을 보여주는 전형이 무슨 학회 이름으로 나오는.. 2020. 9. 2.
오지 콧물에서 창안하는 순진무구 주로 오지 혹은 저개발국가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성향 중 하나는 꼬질꼬질하고 콧물 질질 흘리는 어린이들에게서 순진무구를 창안한다는 점이다. 구질구질 농촌에서 도시문명과 견주어 때묻지 않았다고 칭송하곤 한다. 이르노라 꼬질꼬질에 순진무구는 없다. 그것은 낙후이며 가난이며 질병이고 고통이다. 그것은 박멸해야 할 과오요 퇴출해야 할 미개다. 배때지 부른 소리 걷어치워라. (2014. 9. 2) *** 개중에 순진무구 혹은 등신 같은 사람이 있을 순 있으나 개중엔 개차반 오입쟁이 약삭빠른 놈 다 있다. 그들이라고 욕망과 색욕이 없겠는가? 어린아이를 두고 순진무구하다지만 그놈들 하는 말을 들어보면 90프로가 거짓말이더라. 저들이 순진무구한 까닭은 나한테 총칼을 휘두르지 못하기 때문이지 착해서.. 2020. 9. 2.
저 광활한 논을 바라보며 황달 현상을 일키는 들판 가을이다. 파주 임진각에서 저런 논을 소유하고 그에서 농사를 지어보는 게 내 선친의 꿈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2016. 9. 2) *** 계단식 논이 아닌 저런 넓은 평지에서 천수답이라 해서 비가 와야 모내기를 하는 그런 계단식 논이 아닌 저런 넓은 땅 큰 강을 낀 저런 벌판에서 농사지어 보는 게 꿈이었다. 혹자는 누구 탓도 아니요 안목이 없다 하겠지만 안목은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사람들한테는 사치였다. 왜? 선친한테는 내일이 없었다. 오늘을 살아남아야 했으므로... 2020.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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