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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2267

외국정상 관람없는 국립박물관 : 투탕카멘묘를 찾은 노무현 *** 방한 중인 버락 오바마 미 합중국 대통령이 그제 경복궁을 관람했다. 아래 기사는 그에 즈음해 과거에 이와 관련한 사안을 긁적거려 본 것이다. 당시를 회상하면 투탕카멘 묘를 관람하는 노무현 대통령에 격발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펼쳐졌다.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해에 중국을 방문했을 적에 서안을 일부러 찾아 그곳 진시황 병마용갱을 관람했다. 외국정상 관람없는 국립박물관송고 2006.03.10 15:52:53(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0일자 각 언론에는 이집트를 순방 중인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카이로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투탕카멘 왕묘에서 발견된 황금가면을 관람하는 사진을 일제히 실었다.이 장면을 보면서 기자는 씁쓸함을 지울 길이 없었다. 그런 노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국립.. 2018. 2. 22.
문고본 시대의 재림을 꿈꾸며 문고본 시대의 재림을 꿈꾸며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 기자이는 아래에 게재됐다. http://www.nl.go.kr/upload/nl/publish/201306/book-data/4.pdf 출판 경향이라는 점에서 볼 때, 60~70년대 한국 출판계는 문고본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내 세대 사람들에게도 그런 문고 전성시대의 향취랄까, 여진은 남아 있다. 삼중당문고로 문학을 접했고, 을유문고로 지적 호기심을 충족했으며, 그 외 무수한 문고가 있었다. 문고본은 주머니가 얄팍했던 가난한 학생에게 저렴한 가격에다 휴대의 편리함까지 주었으니 그 혜택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당시 문고본 중 상당수가 여전히 서재 한 켠을 채우거니와, 나 같이 책이 많으면서도 더러 이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요즘.. 2018. 2. 22.
안경, 시각의 혁명 안경은 여로 모로 인류 문화사 혁명이었다. 안경은 세계를 넓혀주었으니, 무엇보다 시력에서의 문자의 해방이었다. 안경이 이 땅에 상륙하기 전, 글자가 작은 책은 시력이 좋은 일부 계층의 전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안경이 없는 세상은 문자를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남이 대신 읽어주어야 했다. 이런 거간꾼을 안경은 축출했다. 다음은 심수경(沈守慶․1516~1599)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 보이는 이야기인데, 이 무렵까진 안경이 조선에 들어오지 않았거나, 들어왔다 해도 그 쓰임이 광범위하기 못했나 보다. 육방옹(陸放翁)은 이름이 유(游)이고 자(字)는 무관(務觀)으로, 송(宋)나라 시인의 대가다. 그의 시는 호방하고 평이하여 난삽(難澁)하고 기괴(奇怪)한 병통이 없으므로, 내가 전부터 좋아했다. .. 2018. 2. 19.
가야 주체의 역사학과 임나일본부설 논쟁 나는 법정으로까지 간 이덕일-김현구 임나일본부 논쟁에서 이덕일을 편들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지만, 그렇다고 김현구가 말하는 임나일본부설을 찬동하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두어 번 했다. 김현구는 임나일본부를 백제가 가야를 통치 혹은 지배 혹은 조종하는 군사령부로 이해한다.(혹 내가 읽은지 오래라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 질정 바란다)이 논쟁에서 김현구는 이런 자신의 전력을 내세우며, 그 자신을 임나일본부를 인정한 식민사학자로 이덕일이 부당하게 매도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나는 '일본'이라는 주체를 '백제'로 치환했다 해서 그것이 식민사학 극복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것은 또 다른 식민사학이라고 비판했다.가야는 막 떼어내 일본에 주거나, 백제에 주거나, 신라에 주는 처치물이 아니기.. 2018. 2. 17.
문화재와 국가주의 망령 - 석굴암과 무령왕릉의 경우 문화재와 국가주의 망령 - 석굴암과 무령왕릉의 경우 *** 이 글은 사단법인 한국박물관협회가 발간하는 소식지인 《박물관소식》 2002 3․4호에 ‘특별기고’ 형태로 투고한 글 전문이다. 석굴암을 감도는 유령이 있다. 국가주의와 국민주의가 응결된 국민국가주의라는 망령이 그것이다. 한국인은 석굴암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TV는 장중한 애국가를 들려주며 그 배경으로 석굴암을 빼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석굴암이 훌륭한 문화유산의 하나임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다만 여기서 이런 의문을 품어봐야 한다. 석굴암을 ‘반만년유구한 한민족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만든 주인공은 과연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그렇게 했는지를 이제는 되짚어보아야 한다. 이러한 반추 과정이 왜 필요.. 2018. 2. 12.
해외문화재, 그 참을 수 없는 약탈의 신화 대책없다. 해외로 나간 우리 문화재라 해서 그것이 약탈이란 방식으로 나간 경우는 매우 드물고 실상은 합법적인 통로를 통해 반출된 것이 대부분이라 해도 도통 믿으려 하지 않는다. 더구나 약탈당한 것으로 의심을 산다 해서 그것이 곧장 약탈로 치환되어 인식되곤 한다. 그렇지 않단 말 수십 번 수백 번 골백 번 해도 말귀가 도통 통하지 않는다. 서산 부석사 보살상만 해도 헛소리가 난무한다. 약탈? 약탈 의심? 그건 우리의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실제 약탈당했다 해도 그 사실이 증명되지 않으면 말짱도루묵이다. 조선시대엔 대마도가 조선의 對일본 무역중개기지다. 두 나라 사이에는 국가 혹은 민간차원에서 수많은 물자가 오갔다. 요즘은 문화재라는 가치가 투여된 물품이 이 방식으로 교류됐다. 조선초기 일본이 매양 .. 2018.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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