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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Reading of History and Histories63

원화 폐지와 그에 따른 화랑 설치 그 비밀이 일거에 풀린다 신라가 화랑(花郞)을 설치한 시점을 두고 논란이 적지 않았으니,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다음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37년(576) 조 다음 대목에서 비롯한다. "三十七年春 始奉源花" (37년 봄에 처음으로 원화를 받들었다) 이 대목이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는 이렇다. "三十七年, 始奉原花爲仙郞" (37년, 처음으로 원화를 받들어 선랑으로 삼았다) 그에 대해 《삼국유사》는 권 제3 탑상(塔像) 제4 〈미륵선화·미시랑·진자사(彌勒仙花 未尸郞 眞慈師)〉에서 진흥왕 37년에 원화 혹은 선랑, 곧 화랑을 처음 설치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연대가 틀렸다고 지적질했으니, "國史 眞智王大建八年丙申 始奉花郞 恐史傳乃誤"(국사에서 이르기를 진지대왕 대건 8년 병신에 처음으로 화랑을 받들었다 했거니와, 이는 아마도 사.. 2019. 4. 5.
스포츠광 고려 의종의 대중정치와 격구 고려 제18대 임금 의종(毅宗, 재위 1146~1170)은 은닉(隱匿)해야 하는 동아시아 군주상의 이단異端이다. 그는 스포츠 광이다. 폴로 경기에 미쳐 날뛰며 날마다 격구를 했다. 밤을 밝혔다. 궁성 사방에다가 격구장을 만들었다. 이는 대간들의 반발을 불러왔다.이는 군주는 자고로 이러해야 한다는 무언의 합의에 대한 배신이었다. 군주가 구중심처를 박차고 나가 대중 앞에 설 때 이를 가장 두려워한 자들이 있다. 대중 앞에 선 군주는 대중과 직거래를 한다. 그들의 박수갈채는 관료들에겐 위협이었다.의종이 결국엔 쫒겨난 까닭이다. 그의 이단적인 행보를 《고려사절요》 제11권 의종 장효대왕(毅宗莊孝大王)에서 추려본다. (의종은) 휘(諱)가 현(晛)이며, 자는 일승(日升)이요, 그 이전 휘가 철(徹)이니, 인종(仁宗.. 2019. 3. 26.
접이식 공책으로 해체한 무령왕릉 묘권墓券 공주 송산리 고분군 중 무령왕릉 출토 돌판 두 장을 우리한테 익숙한 종이책 혹은 공책으로 환원하면 이렇다. 이 한 장을 만들기 위해 나로서는 20년을 쏟아부었다. 보다시피 이렇게 종이책으로 묶어 놓으니, 그 특색이랄까 특징이 확연히 드러난다. 무덤방으로 통하는 무덤길에 놓인 상태로 발견된 돌판은 두 장. 이 돌판은 각각 앞과 뒤로 텍스트를 적었다. 따라서 이들 두 돌판은 전체 4쪽이다. 그 쪽마다 순서대로 ①, ②, ③, ④쪽이라는 번호를 붙였다. ①과 ②가 돌판 한 장이라, 그 앞뒤다. ③과 ④는 다른 돌판이라, 역시 그 앞과 뒤다. 이를 하나로 이어붙여 놓으니, 공책이 저런 식으로 펼쳐진다. 이렇게 보면, 이 돌판 두 장이 첩식帖式 문서라는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간단히 말해 4폭 병풍이다. 이 두 .. 2019. 3. 12.
《김태식의 讀史日記》 잘못된 만남 지금 내 앞엔 유병례가 번역하고 해설한 《송사宋詞, 노래하는 시》(천지인, 2004)가 있다. 宋代 문학을 대표한다는 詞 중에서 30편을 뽑았지만, 편자도 말하듯이 개중에는 詞가 문학 전통으로 자리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唐代 작품도 11편을 포함했다. 이에 수록한 그 첫 편은 작자 미상이며, 아마도 唐末 혹은 五代 작품으로 간주되는 '베갯머리 앞에서다'다. 원래 제목은 없으나 첫 구절을 따서 편자가 임의로 이렇게 붙였다. 이는 곡조 명칭이 보살만普薩蠻으로, 청말인 광서光緖 26년(1900) 감숙성 돈황석굴에서 발견된 돈황곡자사敦煌曲子詞 중 하나다. 보살만은 단순히 곡조 명칭일뿐, 사 내용과는 전연 무관계하다. 그 번역과 원문은 다음과 같다. 번역은 유병례를 최대한 존중하되 리듬감을 위해 조금 바꾸었음.. 2019. 1. 15.
비조강본궁(飛鳥岡本宮), 고대 일본의 도교사원 도관(道觀) 《일본서기》 제명천황(斉明天皇) 2년 조 말미에는 그 발생 날짜를 특정하기는 힘들어 '시세(是歲)'라는 표지 아래 다음과 같은 비조강본궁(飛鳥岡本宮) 터 확정과 그 궁궐 완성한 사건을 기술했다. 飛鳥岡本更定宮地。時、高麗・百濟・新羅並遣使進調、爲張紺幕於此宮地而饗焉。遂起宮室、天皇乃遷、號曰後飛鳥岡本宮。於田身嶺、冠以周垣(田身山名、此云大務)、復於嶺上兩槻樹邊起觀、號爲兩槻宮、亦曰天宮。 飛鳥의 岡本에다가 궁을 세울 자리를 다시 정했다. 이때 高麗・百濟・新羅가 모두 사신을 보내 調를 받치자 이들을 위해 이 궁 자리에다가 감색紺色 장막을 치고는 그들에게 향연을 베풀었다. 나중에 궁실이 완성되자 天皇이 그곳으로 옮기고는 이름하기를 後飛鳥岡本宮이라 했다。전신령田身嶺에다 그 봉우리를 빙 두른 담을 쳐서 마치 갓처럼 만들고(전신田.. 2018. 8. 13.
김유신론(7) 보안사령관에 수방사령관을 겸한 절대권력자 서기 654년 음력 3월, 신라 제28대 왕 김승만(金勝曼)이 재위 8년 만에 죽으니, 이를 흔히 진덕왕(眞德王)이라 한다. 《삼국사기》 그의 본기에서는 그가 죽자 "시호를 진덕(眞德)이라 하고 사량부(沙梁部)에 장사 지냈다. 당 고종이 이를 듣고는 영광문(永光門)에서 애도를 표하고 태상승 장문수(張文收)를 사신으로 삼아 부절을 가지고 조문케 하고, 진덕왕에게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를 추증하고 부의로 비단 3백 필을 내려주었다"고 하거니와, 이제 문제는 차기 대권이 누구한테 가느냐였다. 그의 죽음이 실로 묘한 까닭은 죽음에 대비한 후사 문제를 전연 정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대목이 수상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곡절을 따지면 그럴 만한 사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니, 승만의 죽음으로 신라에는 이제 신분.. 2018.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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