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New Reading of History and Histories63 김유신론(6) 칠성파 두목 군사 분야에서 단연 압도적 두각을 드러낸 김유신은 선덕왕 말년에 발발한 비담의 난까지 계엄총사령관으로써 진압하는 한편, 그 작당 30명을 모조리 죽임으로써 최고실력자로 등극했으니, 진덕왕 재위기간(647~654)은 그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즉위한 진덕이 과연 여주(女主)로서 어느 정도 지도력을 발휘했는지는 미지수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였는지, 아니면 바로 앞선 시대 그의 사촌언니 선덕이 그랬듯이 주체로써 국정 운영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갔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진덕왕 시대 신라는 소위 집단지도체제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는 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음 《삼국유사》 기이편 '진덕왕(眞德王)' 다음 증언에서 비롯한다. 왕이 즉위한 시대에 알천공閼.. 2018. 4. 17. 김유신론(5) 비담을 누르고 선 권력의 정점 영화 황산벌 이 한 장면(유투브 링크...1분20초 부분 이후)이야말로 나는 김유신의 진면목을 제대로 드러낸 명대사로 본다. 신라 최초 여왕이라 해서 즉위 과정에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빚었을 김덕만(金德曼)도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순간에 도달했으니,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는 이젠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직전이었다. 이미 즉위할 무렵 제법 나이가 들었을 그가 마침내 쓰러진 것이다. 재위 16년(647) 새해가 개막하면서 몸져 눕자, 차기 왕위계승권자를 중심으로 권력 재편에 들어갔다. 신라 조정은 선덕과 같은 전철, 곧 또 한 명의 여주(女主)를 피하고자, 선덕에게서 후사를 생산하고자 안간힘을 썼으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아, 이젠 성골로는 남녀를 통털어 마지막으로 남은 그의 사촌.. 2018. 4. 15. 김유신론 (번외판) 70세에 사표 던진 김유신, 맘대로 죽을 수도 없었다 《삼국사기》 신라 효소왕본기를 보면 원년(692) 8월에 "대아찬 원선(元宣)을 중시로 삼았다(以大阿飡元宣爲中侍)로 삼았다"고 하고, 그 3년 뒤인 같은 왕 4년(695) 겨울 10월에는 "중시 원선이 늙어서 관직에서 물러났다(中侍元宣退老)"고 한다. 이 원선은 김원선(金元宣)이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그 계보가 보이지 않으나, 《화랑세기》에 의하면 김흠순(金欽純)의 아홉 아들 중 여섯째다. 그가 언제 출생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출생 시기를 대략 짐작할 근거는 있다. 그의 아버지 김흠순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생몰년이 없지만, 김유신 동생이라 했으니, 형이 태어난 595년 이후 출생해야 한다. 《화랑세기》에는 그가 599년, 건복(建福) 16년이자 진평왕 21년에 태어나 8.. 2018. 3. 20. 김유신론(4) 전쟁은 영웅을 부르는 법 김유신이 신라의 미래 동량으로 두각을 드러나기 시작할 무렵, 한반도는 시종 전운이 감도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단 한 해도 전쟁이 없는 시대로 돌입했다.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본기에서 그 흔적을 추려보면, 38년(616) 겨울 10월, 백제가 모산성(母山城)을 쳤는가 하면, 40년(618)에는 북한산주 군주 변품(邊品)이 가잠성을 되찾고자 병사를 일으켜 백제와 싸웠지만 패배하고 해론(奚論)이 전사했다. 45년(623) 겨울 10월에는 백제가 늑노현(勒弩縣)을 습격하더니 이듬해 46년(624) 겨울 10월에는 백제가 군사를 일으켜 속함(速含)ㆍ앵잠(櫻岑)ㆍ기잠(歧暫)ㆍ봉잠(烽岑)ㆍ기현(旗縣)ㆍ혈책(穴柵) 여섯 성을 포위한 결과 세 성이 함락되고 급찬 눌최(訥催)가 전사하는 대패를 기록했다. 시종 백제 공세.. 2018. 3. 4. 김유신론(3) 불루칩에 투자하는 미실 정치는 바터 (진평왕 엄마인) 만호태후 뜻을 알고는 미리 물러난 미실. 그리하여 자기 아들 보종을 내리고, 그 자리에 만호태후가 점 찍은 15살 꼬맹이 유신을 풍월주에 앉힌 미실한테 만호 역시 무엇인가 보답을 해야 했다. 역시 정치는 주고받기라, 노회한 정치가 만호는 또 다른 노회한 정치가 미실을 보답할 방법을 생각한다. 미실로서도 그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만호가 내민 선물이 블루칩이고 가상화폐였기 때문이다. 11세 풍월주가 하종夏宗이다. 갑신년(564)에 태어났으니, 아버지가 세종世宗이요, 어머니가 바로 미실美室이다. 《화랑세기》 하종공 전에 의하면 15살에 화랑에 들어간 그는 역사를 사다함 형인 토함한테서 배우고, 노래는 이화공에게 배웠으며, 검술은 문노에게 터득했으며, 춤은 미실 동생인 미.. 2018. 3. 4. 김유신론(2) 외할머니 만호태후의 절대 비호 김유신이 금관가야 왕가의 정통 후손임은 널리 알려졌거니와, 그의 증조부가 바로 금관가야를 통째로 들어 신라로 귀부한 구형왕이라, 그의 세 아들 중 김무력이 아비와 더불어 투항하매, 진흥은 사도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적통 공주 아양을 배필로 주니, 이 사이에서 난 아들이 바로 김서현이다. 따라서 부계로 보면 김유신은 금관가야만이 아니라, 진흥왕의 증손이었다. 그렇다면 김유신의 혈통은 이것으로 끝인가? 이것만이 그의 벼락출세를 보장하는가? 이에서 우리가 쳐다보아야 할 곳이 바로 그의 모계 혈통이니, 그의 어머니는 만명(萬明)이었으니, 실은 그의 출세를 보장한 것은 바로 이 모계였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上에서는 만명을 일러 "갈문왕(葛文王) 입종(立宗)의 아들인 숙흘종(肅訖宗)의 딸"이라 했거니와, 이리 되.. 2018. 3. 4. 이전 1 ··· 4 5 6 7 8 9 10 1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