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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튄 현종, 보름 만에 날아서 나주에 닿다 성종이 친정한 이른바 2차 고려거란전쟁에서 결국 개경까지 함락 당할 위기가 닥치자 현종은 1010년 12월 28일 임신일에 남쪽으로 줄행랑치기 시작해 1011년 1월 13일 정해丁亥(양력 2월 18일) 노령蘆嶺을 넘어 나주羅州에 입성하니 개경 출발 기준 불과 보름 만이었다. 왕의 행차가 이렇게 빠를 수는 없으니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줄행랑이었다. 예서 궁금증. 남쪽은 고려시대 당시에도 개경을 기준으로 삼아 크게 두 가지 통로가 있었다. 나주로 곧장 남진하는 코스와 소백산맥 넘어 경주 방면으로 가는 길이 그것이었다. 두 길은 천안, 구체로는 갈기비가 있는 데서 갈라진다. 현종은 단 코스를 선택했다. 왜? 저 코스는 전반으로 보아 평탄하나 두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천안.. 2024. 1. 30.
장성을 왜 쌓았을까 우리 역사에는 몇 차례 장성 축조 역사가 있다. 고구려, 고려 때 두 차례 천리장성이 있고 전술한 대령강장성도 어느 시기엔가 쌓았던 6백리짜리 장성이다. 연길에도 장성이 있다. 이것도 고구려 시대라는 주장이 있는데 알 수 없다. 장성을 왜 쌓았을까. 흔히 문명과 야만의 경계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여유가 있었을까. 나이가 들면서 한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는데 한국사는 경제적으로 넉넉했던 적이 없는 역사인데 그 없는 살림에 필사적으로 군대도 운영하고 대장경도 찍고 금속활자로 100부 되는 다품종 책도 찍어내고 한글도 만들고 했던 나름 근검 절약 빡센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처럼 호화막대한 건물 유적은 별로 없어도 수천년 무지막지한 침략에도 살아남고 수 없는.. 2024. 1. 30.
강동6주? 서희가 강제로 탈취했지 거져 얻은 것이 아니다 저 강동육주江東六州라는 말은 전통시대 사서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이 못내 옛날부터 미심쩍기 짝이 없었지만, 그런 대로 저 시대 역사를 설명할 때는 편리한 점이 많아 그대로 따르기는 했지마는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우리한테 각인한 이미지는 서희라는 세 치 혀로 무장한 뛰어난 고려시대 외교관이 80만 대군이라 설레발 친 거란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지어 그 자리서 저 땅을 받았다고 하지만 천만에. 당시 양쪽 조정을 대표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밀실 야합이 있었는지는 고려사(절요 포함)와 요사 모두 침묵하지만, 이후 전재된 양상으로 보건대 명확해서, 또 많은 이 시대 연구자가 지적하듯이 고려는 송과의 조공책봉 관계를 끊고 이제부터는 거란을 종주국으로 섬겨 요나라에서 조공 책봉을 받겠다. .. 2024. 1. 30.
조선의 건국, 왕후장상을 씨로 따지는 시대의 개막 거리마다 외국산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가 있었다. 해마다 외국 상선이 쏟아져 들어오는 시대가 있었다. 장사로 떼돈 버는 사람도 생겼다. 언감생심 출세는 꿈도 꾸지 못할 사람들이 불알 짤라 출세하고 소 잡는 백정하다가 벼락출세하는 시대가 있었다. 그들은 당당히 외쳤다.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있으리오? 이런 시대 카니벌이 있었다. 모인 군중은 툭하면 삼만이요 많으면 수십만이었다. 한데 혁명이 일어나 느닷없이 외국산 수입 전면 금지 조치를 내렸다. 원리주의자들이 등장해 세상은 썩었다고 성토하면서 농업만이 살 길이라고 설레발을 쳤다. 군중 집회 역시 전면 금지되었다. 이로써 한국사는 오백년을 후퇴했다. 저 싸가지 없는자 수괴가 이성계요 정도전이다. 저들이야말로 수구반동이다. (2016. 1. 30) *** 좀 과.. 2024. 1. 30.
혈혈단신, 보재기 들고 가는 사신 없다 전통시대 왕조국가 체제에서 저런 식으로 선물 꾸러미 몇개 든 쫄개 몇 명 데리고 가는 사신 행렬단은 유사 이래 없다. 외교를 내 아버지가 내 담임 선생님 뵈러 갈 때 우와기 걸치고 쌀 가마니 하나 들고 가는 그런 모습으로 할 수는 없다. 심지어 전투 중인 양쪽 군대에서도 협상을 벌일 때도 저런 식으로 하지 않았다. 비상 사태에 대비해 적어도 수 백 명 이상 되는 중무장한 양쪽 군대가 뒤쪽에서 집결한 가운데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물론 이해는 한다. 드라마니깐. 고려거란전쟁에서 2차 전쟁이 끝나고 양측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전쟁을 막아보고자 고려 조정에서 김은부를 거란에 파견하는 장면이다. 촬영 무대가 어딘지 모르겠는데, 저런 장소 찾는다고 애를 먹었겠다 싶다. 배경은 CG 처리해야 했으니 돈도 .. 2024. 1. 30.
강동육주와 대령강장성 흔히 강동육주의 획득으로 압록강선까지 진출했다고 하는데 강동6주를 얻기 이전의 고려와 거란, 혹은 여진과의 경계선은 어디었을까. 이것은 맨땅에 그어진 것이 아니라 이것 역시 강을 경계로 국경선이 이루어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한다. 강동육주의 모양을 보면 위와 같은데 남쪽 경계는 청천강이 아니라 대령강이라는 강이다. 강동육주를 얻기전, 고려는 대령강이라는 강을 경계로 거란 혹은 여진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셈이다. 이 대령강에는 "대령강장성"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이 장성은 대령강을 따라 남쪽으로 달리는데 전체 길이는 240킬로 미터 정도 된다니 리수로 하면 600리 장성인셈이다. 이 장성은 중국쪽에서는 전국시대에 한반도 안으로 밀고 들어온 만리장성의 유지로 보아왔다. 따라서 중국쪽 주장대로.. 202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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