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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고고학] 형식분류 제작기법 축조기술은 투고 자체를 원천봉쇄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고고학은 당장 어찌해야 하는가?저거다.형식분류 제작기법 축조기술 타령 일삼는 그 어떤 논문도 투고 자체를 원천 금지하며 그런 논문이 들어와도 자동으로 퇴짜를 놓아야 한다.사람이 아닌 물건을 천착한 논문은 그 어떤 것도 게재해서는 안 된다.왜?쓸데없기 때문이다.물레를 돌렸건 말건 그딴 거 이젠 하나도 안 중요하다.부엽공법 이제는 눈꼽만큼도 새삼스럽지 않다.보축이 뭐가 대단하단 말인가?무너지면 다시 쌓는 거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무너짐을 막고자 부엽하고 보축하는 일 너무나 당연하다.문화권별 토기 양태 달라야지 안 다른 게 있다면 그게 문제이지 다른 게 왜 문제인가?말 같잖은 소리 이제 그만 둘 시점이다.멀쩡한 삼국사기 비틀어 고고자료 지 꼴리는 대로 조작해서 고구려가 475년 전쟁과 더불어 한강.. 2024. 1. 6.
치아 마모도는 곡물 도정과 관련이 있을 것 사람의 치아는 계속 닳는다. 요즘은 그 정도로 닳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고인골의 치아를 보면 치아의 수질 부분까지 다 노출되도록 닳은 경우가 많다. 이렇게 닳은 모양을 보고 거친 음식 때문이라고 대개 추정을 하거나 아니면 밀과 같이 가루를 만들어 빵을 굽는 경우에는 가루를 만들때 미세한 돌가루가 섞여 들어갔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거친 음식이라 하면 역시 애매하다. 거친 음식으로 예를 들어 식물성 섬유를 과거에 요즘보다 많이 섭취한 것을 들기도 하는데 식물성 섬유 때문일까? 필자가 보기엔 이빨을 가장 빨리 닳게 만드는 건 식물성 검유나 미세한 돌가루가 아니라 곡물의 도정 정도다. 정말 잡곡과 도정이 덜된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면 거친 밥이라는 게 뭔가를 실감하게 되는데 특히 이걸 .. 2024. 1. 6.
독자 제로인 글을 논문이라 발표하는 개떡 같은 세상 직업적 학문 업계서 매양 나오는 불만 중 하나가 그런 이야기는 내가 이미 발표했는데 그것도 읽지 않아느냐는 것이니 또 하나 설혹 그것을 참고했다 인용문헌 참고문헌에 밝혀놨다 해서 모름지기 그가 내 논문을 읽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하니 그 인용맥락을 보면 거의 백퍼 내 주장을 오도하거나 정작 중요한 지점은 쏙 빼버리고 엉뚱한 데를 강조 오도한 일을 부지기로 본다. 이건 내 경험이기도 하고 여타 주변 사람들도 거개 반응이 같다. 더 어처구니 없는 일은 정작 내 글을 인용하기는 했는데 엉뚱한 데다 인용처를 밝혀주면서 정작 내가 주장한 건 아무런 인용도 없이 지가 주장한 것처럼 처리한 일이니 이는 실수가 아니라 고의다. 더더욱 어처구니 없는 일은 나중엔 그 놈 글을 인용하면서 내 글은 쏙 빼어버린 경우다. 이런 .. 2024. 1. 6.
건강과 음식은 관련이 있다 필자가 요즘 음식에 매달리는 것은 그냥 재미로 하는 것은 아니고, 이유가 있어서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건강은 음식과는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보면 고인골의 치아 마모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같은 나이인데도 치아 마모도가 다르다. 이런 건 결국 먹는 음식의 성격 때문이다.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는 반드시 알아야 풀리는 부분이 많다. 아마도 먹는 음식의 종류나 쌀이 도정 정도가 치아 마모도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걸 과연 낱낱이 밝힐 수 있을것인가 하는 의문은 필자에게도 있지만, 어쨌건 한국에 대해서도 이런 작업은 있어야 하고 또 이걸 전 세계적으로 본다면 관련 자료의 축적량이 만만치 않다. 필자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단지 몇 번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며 앞으로 이 블.. 2024. 1. 6.
[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1) 신라 공주를 취한 마를 캐는 백제 아이 이 선화공주 건은 여러 번 산발로 다룬 적이 있지만 이참에 제대로 정리해 보고 싶어 다시 붓을 댄다. 이 문제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화랑세기가 김대문의 그것을 필사한 소위 진본인가? 아니면 그 필사자인 남당 박창화라는 사람이 꾸며낸 역사소설인가를 판별하는 데도 가늠자가 된다. 백제 무왕武王은 삼국사기 그의 본기에 의하면 본명이 장璋이니, 법왕法王의 아들이다. 서기 600년, 부왕이 죽자 왕위에 올라 재위 42년째인 641 봄 3월에 훙薨했다. 그의 본기에서는 시호를 무武라고 하고는 사신을 당에 보내어 표문을 올리기를 “임금의 외신外臣인 부여장扶餘璋이 졸卒했습니다”고 아뢰니, 황제가 현무문玄武門에서 애도식을 거행하고 조서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위로했다고 한다. “먼 나라를 위로하는 방도는 총애로운 책명보.. 2024. 1. 6.
[독설고고학] 그릇은 그릇에 어울리는 역사가 있다 언젠가 한 말이지만, 어떤 미친 놈이 21세기 대한민국사를 쓰는 데 그릇으로 쓴단 말인가? 물론 그릇에는 그릇에 어울리는 역사가 있다. 그 자체 완결성을 갖기도 하는 주제 혹은 소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거기에 없는 권력을 집어넣고 거기에 없는 정치를 집어넣어 오직 그것으로써 문화사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 시대 정치문화사를 쓰는 데 그릇은 데코레이션이다. 우리네 고고학 사정은 어떤가? 죽어나사나 토기타령에 정치타령이라, 그래 토기 분포를 보아 어떤 특정 정치체가 영향을 미친 범위를 추정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 해서 그것이 정치 자체로 치환될 수는 없다. 토기가 중요한가? 당연히 중요하다. 사람이 어찌 그릇 없이 살 수 있겠는가? 그렇다 해서 그것이 정치요 권력이다?.. 2024.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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