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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짓는데 쓴 토기는 "와분" 삼국유사를 보면, 진정법사가 딱 하나 있던 쇠솥을 시주하고 토기로 밥을 지었다 하는 구절에서, "와분"이라 하였으니 乃以瓦盆爲釡, 熟食而飬之 아래 밥 짓는데 쓴 것 같은 시루 토기는 최소한 고려시대까지는 와분이라 불렀던 모양이라, 와분이라면 그 당시에 이미 저건 그릇도 아니라는 의미도 있는 듯. 밥 짓는데 썼을 토기. 삼국유사에는 "와분"으로 나온다. 뭐 당시의 고유명사였는지는 모르겟지만, 철솥이 나온 후의 토기의 운명을 짐작하게 하는 이름이다. *** 盆 《禮記‧禮器》: “夫奧者, 老婦之祭也, 盛於盆, 尊於瓶。” 鄭玄 注: “盆、瓶, 炊器也。” 2024. 1. 6.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간절한 마음만큼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이루고자 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넘어서야 하는 한계를 “문”에 비유하고 있다. 이 말은 한편으로 노력해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노력이 부족했거나, 덜 간절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결국은 문을 열지 못한 당신의 노력이 부족했던 거라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더 많이, 더 열심히 해야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동안 나는 덜 간절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나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말인가? 요즘, 약간의 번아웃이 오면서 드는 생각, “그동안 나는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2024. 1. 6.
7세기 신라의 밥솥 상황 삼국유사 권 5의, 真定師孝善雙羙을 보면 7세기 신라의 밥솥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法師真定羅人也. 白衣時隷名卒伍, 而家貧不娶. 部役之餘傭作受粟以飬孀母. 家中計産唯折脚一鐺而已 一日有僧到門求化營寺䥫物, 母以鐺施之. 旣而定従外敀. 母告之故且虞子意何如厼. 定喜現於色曰, “施於佛事何幸如之. 雖無鐺又何患.” 乃以瓦盆爲釡, 熟食而飬之. 진정법사라는 이는 의상의 제자라니 아마 통일기의 승려인 듯하고, 그의 출가 이전 상황을 보면 집이 가난해서 재산이라고는 다리 부러진 鐺하나였다는데, 鐺이 뭔지 모르겠지만, 일본쪽 설명을 보면 다리 셋 달린 솥이라 하니 그렇다면 정과 비슷하지만 다른 쇠솥이었나보다. 재미잇는 건 이 다리 부러진 쇠솥도 절에 시주해버리고 나니 집에서는 밥짓는데 瓦盆을 솥으로써서 밥을 지어 어머니를 부양.. 2024. 1. 6.
타키투스 게르마니아 역주 [1] 지리 From The Germany and the Agricola by Tacitus; The Oxford Translation, Revised, with Notes; The Handy Book Company: Reading, Pennsylvania GERMANY THE SITUATION, MANNERS AND INHABITANTS OF GERMANY [ Part 1 ] The Geography of Germany — Origin of the People of Germany — The German Hercules — Appearance of the Germans — Character of the Country — Description of Armor — Election of Kings — Respect Pai.. 2024. 1. 6.
역사를 통괄하는 남색男色 간단히 말한다. 이 경우 남색이란 남자 호모를 말한다. 《화랑세기》 얘기다. 이 화랑세기에는 남색이 적지 않게 나온다. 특히 법흥왕은 여자도 많았지만 남자 애인도 적지 않았다. 이 남색을 두고 화랑세기 진본론자이기는 마찬가지인 이종욱 전 서강대 총장과 나는 적지 않은 충돌을 일으켰다. 이종욱 선생은 단순한 총신寵臣으로 봤고, 나는 호모라고 봤다. 하도 열받아서 졸저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에서 호모 얘기 열라리 했다. 이종욱 선생과 내가 금이 간 여러 요인 중 작은 것에 해당한다. 졸저 출간 이후 《고려사》를 통독할 일이 있었다. 그 긴 《고려사》를 통독하다 보니 적지 않은 왕의 남자 애인이 등장했다. 심지어 그 남자 애인들의 족적을 보니 완연히 신라시대 화랑의 복사판이었다. 그리고 중국사를 통괄하니.. 2024. 1. 6.
국물을 부르는 잡곡 찐밥 잡곡 찐밥은 국물을 부른다. 필자 생각에는, 잡곡 찐밥을 주로 먹던 부여 고구려인들은 국물을 끼고 살았을 거라고 본다. 필자는 된장과 콩간장은 부여 고구려인이 처음 만들었을 것이라 추측하는데, 생각보다 된장을 이용한 국은 기원이 올라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된장국이 있다면 잡곡찐밥도 간단히 말아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밥에 국을 붓는 것이 먼저였을까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 먼저였을까. 잡곡 찐밥이 국물을 부르는 이유는 이렇다. 찐밥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밥을 끓이다 뜸들이는 방식의 취사만큼 곡물에 함수율을 높일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잡곡 찐밥이 거칠다고 느끼는 이유는 필자가 보기엔 함수율이 낮아서 그렇다. 함수율이 올라가면 훨씬 먹기가 편할 것이고 그것이 필자가 생각하기에 바로 국이다... 2024.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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