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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도성에서 맞닥뜨린 "자네 지금 뭐하는 겐가?" 근대의 이름난 인류학자였던 석남石南 송석하宋錫夏(1904~1948)가 어느 날 철원에 갔다. 지금은 군사분계선 안에 폭 갇혀버린 궁예弓裔의 옛 도읍 풍천원楓川原에 들렀는데 마침 그 토성 동쪽에 '웅장하고도 우아한' 오층석탑 하나가 오롯이 서 있었던 모양이다. 감탄하면서 보다가 하나 흠을 발견한다. 워낙 오래되었으니 잇대었던 돌과 돌 사이 틈이 버쩍 벌어져있던 모양. 석남은 무심코 굴러다니던 기왓장을 들고 그 틈을 찔러본다. 그런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이 누군가가 나타난다(대화는 필자가 현대어로 되도록 풀었으나 일부 원문을 남겼다). "노형老兄은 어디 사시오?" "예, 서울 삽니다." "누구시오?" "송석하올시다." "무엇 하러 댕기시오?" "이 친구가 '刑事 밋친광인가(원문을 그대로 옮김)' .. 2023. 7. 9.
편액 읽어 찾아낸 경주 서악서원 역사 민경 강군한테 툭 던졌다. 강구나, 탈초해라. 2분 만에 반응이 온다. 천계삼년계해 선액숭정후재경자 소진익년신축이 조명복게 天啓三年癸亥 宣額崇禎後再庚子 燒燼翌年辛丑以 朝命復揭 천계 3년 계해년(1623)에 편액을 하사받고[宣額] 숭정후 두번째 경자년(1721)에 화재로 소실되어 그 이듬해(1722) 신축년에 조정의 명령으로 다시 편액을 걸었다. 이 뜻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저 안내판이 심대한 팩트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안다. 조금 더 자세히 본다. 인조 원년 1623년에 '서악서원'으로 사액된 것은 맞다. 저때 와서 임란 때 불타버린 '서악정사'가 국가공인 '서악서원'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 역사가 싹 빠졌다. 서악서원이 다시 불이 나서 도로 세운 시점은 1721년이며, 옛 편액을 본떠 다시 '.. 2023. 7. 9.
우즈벡 답사기:프롤로그 이 블로그에 많은 필진이 참여하고 있는데, 내가 이 블로그에 발을 들여 놓은 계기는 친구들과 그리스 여행을 다니면서 페북에 올린 글을 김태식 단장님이 블로그에 옮겨주시면서 부터였다. 이후 답사기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문화재 관련 일, 학예연구사 관련 활동, 신문 기고 칼럼 등등 이것저것 틈나는 대로 끄적거리고 있다. 돌이켜 보니 한 달에 많아야 3-4건, 적게는 1-2건 올리는 정도였는데, 모처럼 긴 연재를 할 기회가 생겼다. 처음 블로그 시작하면서 썼던 그리스 여행기처럼, 지난 일주일동안[6.30~7.7]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올해 초 만 3년만의 해외여행을 어디로 갈까 고민했는데, 코로나 이전부터 가고 싶었던 고대 실크로드 도시들이 있는 우즈베키스탄으로 정해버렸다. 엄청 더워서, 여름에는 잘.. 2023. 7. 9.
학예사의 업무용 글쓰기 : 전시에서의 글쓰기란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누군가가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 질문을 했다. “교수님. 저는 평소에 교수님 글을 좋아하거든요. 교수님처럼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순간 그 방에 있던 모두의 눈이 반짝반짝해졌다. 그랬더니 교수님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대답하셨다. “글 쓰는 것은 타고 나는 거야.”라고. 나중에 서양 미술사를 전공하는 동기에게 이 에피소드를 말해줬더니, 그 친구도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교수님께 들었다 했다. 나는 두 교수님의 글을 좋아했다. 한 분은 수필 같이 따뜻하게, 다른 한 분은 냉철한 분석으로 차갑게 글을 쓰셨다. 두 분들만의 글쓰기 스타일은 감히 따라할 수도 없는, 그분들만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도 질문을 하면 무언가 글쓰기의 비법 같은 것을 알려주실 줄 알았는데, 저렇게.. 2023. 7. 9.
국가유산기본법으로 혼자 달려가는 문화재청 국가유산기본법이 '23년 4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23년 5월 제정되었고, 1년의 예고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문화재청도 국가유산청으로 조직을 변경하는 수순을 밟고 있으며, 시행령 제정 및 관련법 추가 입법 등 여러 방면에서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안다. 문화재청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른 국가유산기본법의 주요내용을 크게 정리해보면,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첫째, 명칭개선이다. 국가유산기본법의 주요 내용은 과거 유물의 재화적 성격이 강한 문화‘재(財)’ 용어를 버리고,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는 유산(遺産)으로서의 정책 패러다임 변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둘째, 분류체계 재정립이다. 국제기준과 부합하게 분류체계를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분류하고, 통칭 '국가유산'.. 2023. 7. 9.
부산박물관 야외 화장실 맹종죽림에서 와호장룡을 근조한다 어쩌다가 예까지 오게 되었는지 나도 모른다. 부산이라는 데는 나한테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선뜻 오기는 괜히 싫은 도시로 나한테 각인했으니 기자 생활 시작을 내가 전연 원치 않게 강제로 시작했던 데가 예서라는 데서 말미암으리라 본다. 어쩌다 부산박물관을 왔다. 삼십년전 부산 유배 생활에서는 내가 담당한 기관 중 한 곳이기는 했다만 그 기간 11개월간 단 한 번도 디딘 적 없다. 위치는 알았다. 그런 데를 어찌하여 훌쩍 오게 되었으니 경주에서 차를 몰았다. 한바탕 전시실 돌고 나니 니코틴이 땡겼다. 잠시 야외 꼬불쳐 연기 날릴 만한 데를 찾는데 저 수풀 언덕 가운데 오솔길로 화장실 표시가 보여 저기다 하고 찾아가니 그 뒤편으로 이기 뭔가? 맹종죽이라 고창읍성 모양성 정도에나 있을 줄 안 그 맹종죽림이 .. 2023.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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