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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설한 배추장사 나선 백수 수도암 학술대회가 나로선 유럽 떠나면서 뵙지 못한 엄마 찾는 날이었으니 담주엔 아버지 제사라 다시 내려오긴 해야 하지만 마침 잘 됐으니 오늘부터 이른바 최강 한파라 해서 배추를 뽑아야 했으니 그거 손수레로 싣고 날았다. 하도 바람이 매섭게 불어대고 눈발까지 날리는 마당에 콧물 눈물이 절로 흘러 누가 보면 선친 그리워 흘리는 눈콧물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뽑는 엄마가 이르기를 요새도 배차가 자란 모양이라 어수 커여 그러고 보니 속이 옹골차다. 지금 뽑지 아니하면 다 얼어벌 테니 잘됐다 싶다. 저번에 이미 실어다 나른 배차들은 김장독에 들어갔다. 몇 포기 뽑아가서 괴기 쌈이나 해야겠다. 백수가 되다 보면 다 장사로 보인다. 배추 시세는 어떤가? 이문은 남을까? 기름값 빼고 나면 얼마나 남지? 2023. 12. 16.
경복궁 담장 낙서 스프레이, 충배 떠나서? 16일 오전 1시 50분경 경복궁 영추문 좌·우측과 국립고궁박물관 쪽문 주변 담장이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되었다는데 저 시간은 발견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에 관리처인 문화재청은 오후에 보존처리 전문가 등과 합동 조사를 진행하고, 신속하게 복구 예정이라고. 해당 사건의 용의자를 찾고자 종로경찰서와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다고. 하기야 대한민국은 감시카메라 공화국이니. 충배가 떠나니 민심이 흉흉해진 건가? 아님 세트장 안 내줘서 영화계가 분노한 건가? 2023. 12. 16.
김천고등보통학교 김천고등학교 초창기 역사 1930. 4. 김천고등보통학교 후원회 조직 1931. 2. 재단법인 송설당교육재단 인가 |이사: 고덕환, 이한기, 최석태, 최동렬, 김종호 감사 :조상걸, 문창영 취임 송설당교육재단: 상무이사 고덕환, 재무이사 이한기 선임 1931. 3. 교장校章 제정 김천고등보통학교 설립 인가, 5년제 5학급 학교부지 정지 작업 착수 초대 안일영 교장 취임 5. 입학식 거행(이 날을 개교기념일로 정함) 1932. 1. 교가 제정(작사 정열모, 작곡 현제명) 제2대 정열모 교장 취임 8. 본교사 신축 낙성(6.25로 일부 파괴, 1957년 6월 수리) 1933. 10. 제1회 운동회 1934. 4. 교우회 창설 12. 제1회 내한마라톤 1935. 1. 기숙사 신축 낙성(6.25로 일부 소실, 1951년 고등학교 가교사.. 2023. 12. 16.
잦은 비에 실종한 곶감 여느 때 이맘쯤이면 고향 집엔 곶감이 주렁주렁 풍경처럼 달려야 한다. 유난히 잦은 비가 내린 올해는 감농사가 망했다는 소식은 전한 적 있으니 올해 곶감은 이게 전부다. 없는 곶감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법이라 감이 있어야 깎을 것 아니가? 잦은 비는 감 세계의 고공낙하 추풍낙엽을 초래했다. 하나를 집어 삼키니 온몸이 당뇨인 듯한 달기가 느껴진다. 귀하니 더 아껴먹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 옆에선 찬바람에 메주가 익어간다. 2023. 12. 16.
군정기 국대안 파동과 한국현대사 한국현대사 서술에서 문제가 있는 대표적 예가 국대안 파동이다. 이 국대안 파동은 현재 서술된 내용만 보면 멀쩡하게 있는 대학을 대학교수들 의견 무시하고 강제로 통합하려다 싸움난 것을 군정이 한국인 의사 무시하고 밀어붙여 경성대 (서울대)가 남북으로 쪼개진 사건 정도로 써 놨는데, 필자가 파악하는 국대안파동 전말은 이렇다. 1. 당시 국립서울대를 만들기 위해 통폐합하는 해방한국의 소위 대학이라는 것은 해방 이후 급조하여 대학승격이 기획된 것으로 죄다 함량 미달이었다. 특히 해방이전 대학은 제대 하나뿐인데다가 전부 고등농업, 고등공업 등 전문학교였던 탓에 통폐합 없이는 힘든 상황이었다 할 수 있다. 2. 당시 국대안을 반대하던 교수나 학생들은 원래 그 학교 학생들이 아니었다. 대부분 해방이후 급조되어 들어온.. 2023. 12. 16.
점제현 신사비는 낙랑 유물인가? 이 점제현 신사비라는 요물 말이다. 신동훈 박사와도 나눈 이야기만, 이 비는 한사군 중 낙랑군, 그것을 구성한 여러 현 중 점제현과는 눈꼽만큼도 관계없다. 비문 구성, 서체, 비석 모양 등등 모든 면에서 이 비는 국강상광개토지평안호태왕, 약칭 광개토왕 혹은 장수왕 무렵 고구려가 세운 비석이다. 저 비석, 광개토왕비랑 서체도 같고, 그 글자 중 두 줄에 걸쳐 대가리 하나가 들어가는 것도 광개토왕비랑 같다. 저것이 왜 낙랑비로 둔갑했는지 내가 알다가도 모르겠다. 실제 비문 어디에서도 이것이 한사군과 관련한 내용이 없다. 대가리 하나에 글자 두 줄이 들어가는 금석문은 오직 소위 이 점제현비와 광개토왕비 두 개가 있을 뿐이다. 저게 중국비석? 중국에서 저딴 비석 본 적이 나는 없다. 있는 놈 나와봐! *** 이.. 2023.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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