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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인문수준에 대한 생각 일본의 인문학 수준에 대해 약간 써 본다. 첫째로 에도시대 이전 일본 인문학 수준: 일본에서는 이를 굉장하게 포장하여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당시 대륙국가에 비하면 그 수준이 대단치 않다. 텍스트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낮고 무엇보다 글을 읽고 이를 향유하는 사람 숫자 자체가 적었다는 생각이다. 일본 드라마 보면 무가정권 실력자들과 무사들이 대단한 교양인인양 묘사한 것이 많은데, 사실 이들은 싸우기 바빠 책읽을 시간이고 나발이고 없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펠레한테 노벨문학상을 타라고 이야기하면 무리 아니겠는가? 이 시기 일본의 지식계란 공경들과 절의 승려들을 통해 가늘게 이어졌다고 보는데 대충 우리나라 무신정권 시대 문사들의 글짓기에 방불했다고 생각한다. 임란 이후 일본의 책이 고활자로 본격적.. 2022. 12. 31.
[유성환의 AllaboutEgypt] 이집트어로 이 단어는?(23) 1년의 마지막 날들 에파고메네스 윤일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일년의 마지막 5일은 일상적인 날이 아니라 “에파고메네스 윤일(閏日: Epagomenal Days)”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날에 속했습니다. 지난 글에서 잠시 설명 드린 것처럼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태음력이었던 상용력(常用曆: civil calendar)의 1년을 구성할 때 별의 운행에 따라 정한 360일에 이 윤일 5일을 더해서 1년 365일을 확정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인들에게 이 5일은 원래 1 년에는 포함되지 않는 날들로서 각각 오시리스(Osiris) • 이시스(Isis) • 세트(Seth) • 네프티스(Nephthys) • 호루스(Horus) 등과 같은 「오시리스 신화」(Osirian Cycle)에 등장하는 신들의 탄생일로 여겨졌습니다. 또한 이.. 2022. 12. 31.
"왜놈들이 더 이상 옛날의 왜놈들이 아니다"는 유득공의 담대한 선언 우리나라 책이 왜에 전해지다〔我書傳於倭〕 유득공柳得恭(1748~1807),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제5권 왜놈들은 지혜가 날로 트여 더 이상 지난날의 왜가 아니다. 대개 장기(長崎 나가사키)를 드나드는 배들을 통해 중국 강남의 서적을 수입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책 역시 왜에 많이 전해졌다. 무진년(1748, 영조24)에 통신사가 왜에 갔을 때 서기들이 왜의 유학자들과 필담을 나누었다. 그 가운데 기국서라고 하는 자가 말하였다. “《고려사》, 《여지승람》, 《고사촬요》, 《병학지남》, 《징비록》, 《황화집》, 《보한재집》, 《퇴계집》, 《율곡집》 등을 보았습니다.” 또 상월신경이라는 자가 말하였다. “양촌(陽村)의 《입학도설》, 회재(晦齋)의 《구경연의(九經衍義)》, 퇴계의 《성학십도》ㆍ《계몽전의》ㆍ《주.. 2022. 12. 31.
조선후기 유득공이 채록한 농기구 명칭 농기구의 속명 풀이〔農器俗名釋〕 유득공柳得恭(1748~1807),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제6권 리(犁) 우리말로 장기(羘其 쟁기) 달(撻) - 지금도 있지만 우리말 이름이 없다. - 타전혜(打田篲)라고도 한다. 과목을 사용하여 엮어 납작하고 넓게 만드는데 땅을 두드려 곡식 종자를 눌러 준다. 초(耖) - 절아(切兒 써레) - 써레 종류인데, 거나(渠拏)라고도 하고 거소(渠疏)라고도 한다. 우(櫌) 하아(荷兒) 곽(钁) - 광이(廣耳 괭이) - 노작(魯斫)이라고도 한다. 장참(長鑱) - 지보(地甫 따비) - 척화개(蹠鏵蓋)라고도 하는데, 쟁기[耒耜]의 유제이다. 철탑(鐵搭) 소시랑(疏是郞 쇠스랑) 철인구(鐵刃杦) 가내(加乃 가래) 참(鑱) 보십(甫十 보습) 벽(鐴) 이이(犁耳)라고도 하고 경면(鏡面)이라.. 2022. 12. 31.
죽어가는 우물을 살려라!!! 마른 우물 물 구하기〔奪水〕 유득공柳得恭(1748~1807),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제6권 하양 현감 임희택任希澤이 말하였다. “이인도 찰방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역의 건물인 취병루翠屛樓 앞의 큰 우물은 온 역의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인데 갑자기 물이 나오지 않자 역호驛戶들이 당황하여 이사를 가려 했습니다. 그때 어떤 손님이 와서 물 구하는 술수를 말하자 역민들이 일제히 하소연하면서 그 술수를 써 달라고 하였지요. 그래서 돈을 거두어 우물에 제사 지내고 나발 불고 북 치면서 우물을 돌고 한바탕 요란스럽게 한 뒤에 파하고는, 마침내 10리 정도 떨어진 옥천암玉泉庵 앞에서 개울물을 길어다 통에 담아서 수레에 수백 개를 실은 뒤 사람이 영차영차 하며 끌어다 마른 우물에 쏟아붓고 흩어졌습니다. 처음에는 가능.. 2022. 12. 31.
미산선생 휘호도 米山先生 揮毫圖 추사의 애제자 소치 허련(1809-1892)은 큰아들 허은(1834-1867)이 자신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하고, '미산'이란 호를 지어주고 정성껏 서화를 가르쳤었다. 하지만 그가 요절하자 실의에 빠진 소치는 다른 자식들에게는 그림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넷째아들에게 그림재주가 있음을 알게되자, 소치는 '미산'이란 호를 그에게 다시 주고 그림을 가르쳤다. 그렇게 소치의 맥을 잇게 된 아들 미산(형과 구분하고자 小미산이라고도 하는)의 이름은 허형(1862-1938)이었다. 그는 일흔 넘게 살면서 많은 그림을 그렸고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도 했으며, 1928년에는 광주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허형은 그 자신의 예술로써 평가받기보다 아들 허건(1908-1987)과 허림(191.. 202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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