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19509 제국을 지향하는 오스카, WASP로 가는 그래미 오스카 여성 후보 70명 역대 최다…무슬림 첫 남우주연상 후보 정윤섭 기자 / 기사승인 : 2021-03-16 04:53:00 여성 감독 2명 첫 동시 후보…연기상 후보 20명 중 9명이 유색인종 넷플릭스, 최다 후보작·배우 배출…16편 영화로 35차례 호명 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24510577683 오스카 여성 후보 70명 역대 최다…무슬림 첫 남우주연상 후보 여성 감독 2명 첫 동시 후보…연기상 후보 20명 중 9명이 유색인종넷플릭스, 최다 후보작·배우 배출…16편 영화로 35차례 호명(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정윤섭 특파원 = 미국 최고 권위의 영화상 k-odyssey.com 올해 93회를 맞는 아카데미 어워즈 Acardemy Awards는 작년을.. 2021. 3. 16. [도로 찾은 칼리굴라 모자이크화] (3) 원치 않은 활짝 인터뷰 문제의 모자이크 유물이 정확히 언제 누군가에 의해 개인한테 넘어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하나 1955년까지만 해도 이태리 정부 국유물 상태로 국가 틍제 아래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한다. 이때 마지막으로 해당 유물 촬영이 이뤄진 까닭이다. 촬영지는 로마였다. 이후 어느 시점에 빠져나와 개인 손으로 넘어갔다가 적어도 한 번 주인이 바뀌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1955년 당시 문제의 모자이크화가 구체로 이태리 어느 기관에 있었는지는 내가 확인하지 못했다. 본래 그것이 출토한 지점이 로마 남동쪽 30킬로미터 지점 화산분화 호수 네미 Nemi 에서 수거한 칼리굴라 시대 의식용 선박 2척의 바닥재 중 하나로, 그 선박은 그 인근에 건립한 박물관에 보관 전시 중이다가 2차대전 말기인 1944년 전소됐다. 전시.. 2021. 3. 15. 무심한 아들놈 야쓰이 세이이쓰 1918년 9월 10일, 조선총독부의 촉탁이자 고적조사위원을 겸하고 있던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 곡정제일, 1880-1959)는 경성부 아사히마치旭町 잇초메一丁目 143번지, 지금의 서울 중구 회현동 143번지(소월로 16)에 있던 집에 이삿짐을 옮겨놓는다. 그리고 이사했다는 사실을 관제엽서에 인쇄하여 지인들에게 보낸다. 그 중의 한 장이 최근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이 엽서는 다른 것하고는 구별되는 사연이 있다. 바로 이 엽서를 받는 와카야마현의 야쓰이 간조谷井勘藏란 사람이 다른 이도 아니고 야쓰이 세이이쓰 본인의 아버지라는 사실! 보통 생각하기에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족)에게 이사했다는 걸 알려야 한다면 손으로 직접 정성스럽게 "아버님 전상서, 소자가 이번에...."이런 식으로 써서 부치거나, 전화.. 2021. 3. 15. 완판본完板本 연구의 수호자, 전북대 이태영 교수 조선 후기, 현재 전라도 전주(全州) 지역에서 생산되었던 완판 방각본 소설 이 완판본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과 관련해서, 중요한 사람을 꼽는다면 단연 고(故) 류탁일 교수(부산대), 이태영 교수(전북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류탁일 교수가 완판본의 발굴, 완판본 연구의 초석을 놓은 분이라면, 이태영 교수는 완판본의 계승과 발전, 대중화에 헌신한 분이다. 이태영 교수의 주전공은 국어학에서 전라도 지역 방언이다. 그는 전라도 지역 방언을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지역에서 생산된 방각본 소설로 관심이 모아졌다. 그 결과, 국어학의 시각에서 완판본을 어떻게 연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완판본의 활용 방안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모색하였다. 그는 여러 논문을 통해서 완판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리고.. 2021. 3. 15. [도로 찾은 칼리굴라 모자이크화] (2) "어머 이거 그건데?" 웅성이는 보석가게 "어머, 이거 헬렌 집에 있는 그거 아냐?" "맞네 바로 그거네? 이게 그거였어? 어머나" 책 좀 팔아볼 요량으로 강연회가 끝나고는 영문판 자기 책 《Porphyry》에 직접 사인하느라 열중하는 다리오 델 부팔로 Dario Del Bufalo 귓가로 이런 대화가 저쪽에서 들려왔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렸지만 살피니 친필 사인한 본인 책을 막 산 이 지역 돈께나 있는 상류층 아줌마 둘이서 자기 책을 펼쳐놓고는 그에 수록한 유물 사진을 보고 나누는 대화 아닌가? 그네들이 펼치고 놀란 표정을 짓는 사진을 보니 1955년에 촬영된 사진 속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영 사라진 그 모자이크화였다. 대리석과 포퍼리를 이용해 바닥재를 삼고는 그 위에다가 각종 기하학 문양 화려한 모자이크화를 수놓은 너비 1.5제곱미터.. 2021. 3. 15. [옛 글씨를 보다가] 고우古友 최린崔麟의 경우 이 땅의 근대는 참 파란만장했다. 그만큼 많은 인물이 나타났고 스러져갔다. 역사에 향기로운 이름을 남긴 이들만큼이나, 더러운 발자국을 남긴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을 어떤 한 면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어째서 그들이 그런 선택을 했을지, 그들이 남긴 다양한 면모를 두루 살피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우古友 최린崔麟(1878-1958) 글씨를 감상하며 그런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귀한 작품을 보여주시고 사진촬영과 게재를 허락해주신 소장자께 감사드린다). 최린은 대한제국 황실 후원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보성전문학교 교장, 천도교 종법사宗法師, 계명구락부 이사를 역임한 당대 일류급 지식인이었다. 또한 3.1운동 민족대표 33인에 이름을 올린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조.. 2021. 3. 14. 이전 1 ··· 1946 1947 1948 1949 1950 1951 1952 ··· 325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