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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근에서 맥아더까지, 헌책방서 낚아챈 회고록과 회고록들 어제 이만 팔천원에 어느 헌책방 뒤져서 긁어다 놓은 회고록들이다. 회고록은 실록이다. 특히 국가에 의한 관찬사서 편찬이 폐지된 근현대에 저런 회고록은 중대성을 더한다. 이것이 회고록 첫번째 특징이다 장점이다. 회고록은 제아무리 객관을 가장한다 해도 변명과 자랑으로 흐르는 숙명이 있다. 이 지점에서 회고록은 이른바 사료비판이 끼어들 여지를 필요조건으로 제시한다. 거기엔 과장과 거짓과 왜곡이 혼재 탑재한다 실상 광개토왕비도 장수왕의 지 애비 회고록이다. 진짜로 솔직한 회고록은 읽기가 거북하기 짝이 없다. 카사노바 회고록이 그렇다. 이것이 회고록이 주는 두번째 매력이다. 회고록은 관찬사서의 생략을 벌충한다. 나아가 법과 제도가 실제로는 어떻게 삶의 현장에서 통용했는지 그 생생한 목격담이다. 이것이 세번째 매력.. 2023. 7. 24.
조선 서학은 순교사관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조선서학사를 순교사관에 따라 해석하니 실체가 제대로 안 보이는 것이다. 조선 서학자들이 어제까지 성리학을 믿다가 오늘 서학서를 읽고 하루 아침에 정통 기독교신자로 홀라당 바뀌었으리라 보는가? 실상은 그와 달랐을 것이다. 조선서학사를 천주교 순교사에서 해방하여 한국철학사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야 한다. 특히 서학을 유교사의 입장에서 재평가해야 한다. 서학을 순교사관에 묶어두니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종교의 영역에 역사가 머물고, 그 안에 존재했을 다양한 유학과 서학의 대화와 갈등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서학은 종교사가 아니다. 천주교의 전유물로 놔둬서도 안된다. 인간사를 종교사의 영역으로 절대 불가침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 우리는 그것을 왜곡이라 부른다. 선교사가 전도하지도 않았는데 책을 읽고 감화.. 2023. 7. 23.
조선후기, 서학은 "이단 유학"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의 선비들은 모두 바보였다는 말인가?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그 시대 선비들의 고도의 사유에 공감하는 바 많아진다. 조선 후기의 선비들도 바보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조선에서는 일본 고학파 같은 "이단유학"이 나오지 않았을까? 왜 "성리학"을 묵수하는 모습으로 나라가 망할 때까지 간 것일까? 유심히 당시의 사상의 흐름을 보면 눈에 띄는부분이 있다. 바로 "서학"이다. 고도의 성리학 교육을 받은 유학자들이 어느 아침에 홀라당 서학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것도 선교사도 없이, 전해진 책만 읽고, 교황은 이 "선교사도 없이 교회가 일어난 것을 듣고" 기적이라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라 조선의 유학자들에 있어 서학이란 "근대성을 갖춘 이단 유학"이었던 셈이다. 성리학의 .. 2023. 7. 23.
60년대에 이미 헤밍웨이 괴테 모파상을 전집으로 씹어돌린 대한민국 책에 주려 있던 나는 대학 진학과 더불어 게걸스레 채치우기 시작했으니 연전에 말한 대로 내가 그 생활을 시작한 부천 송내 막내 누님 집에는 내가 뚜렷이 기억하기로 서부전선 이상없다로 저명한 레마르크 전집과 삼포능자(미우라 아야코) 전집, 그리고 이상하지만 괴테 전집 세 종류가 있었다. 단칸방 전세인 누님 집 책이라고는 그 뿐이었으니 괴테 전집 말고는 다 뽀갰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요상한 점이 1986년 그때 출판 서지사항을 기억할 순 없으나 그 꽤죄죄한 몰골을 보면 70년대 혹은 그 이전에 저들 전집이 나왔음은 분명하다. 왜 그랬을까? 먹고 살 궁리도 막막한 그때 저런 전집이 나왔다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조금 전까지 어느 헌책방에서 노닥거리다 그 무렵 다른 전집 몇 종에 눈에 띈다. 첫째 모파상 전집.. 2023. 7. 23.
우즈벡 답사기(5):부하라(라비하우스, 이스마일 사마일 묘, 나디르 디반베기 마드라사) 부하라 둘째 날이 밝았다. 첫날은 여행 기간 중 처음으로 흐린 날씨였지만, 다시 햇빛이 쨍쨍한 한여름 날씨로 돌아왔다. 오늘도 역시 모든 일정은 걸어서 소화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라비하우스(Labi Hauz)다. 하우스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오아시스 도시답게 시내 곳곳에는 연못 100여 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주변으로 수로망이 잘 정비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이 연못들을 연결하는 수로망이 오래전부터 발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연못 주변에는 여러 마드라사 건물이 있는데 모든 건물을 소개하기는 어렵고, 가장 잘 알려진 건물인 나디르 디반베기 마드라사(Nodir Devonbegi Madrasah)만 소개하겠다. 17세기(1622-1623)에 지은 건물로 여행자 숙소 목적으로 출발했다가 이후 마드라사로 개조되.. 2023. 7. 23.
조선유학의 전성기는 16세기 말 조선이 건국된 후 발전한 유학의 성장은 눈부신 바가 있다. 조선의 16세기 말, 임란 이전의 유학의 수준은 상당히 높다. 이미 이 당시 중국유학, 중국성리학이 가지고 있던 상당수의 문제의식과 현실참여는 조선에서 구현되었다고 본다. 임란이후의 조선유학은 쇠퇴의 역사다. 예학은 좋게 보면 근대적 논리학의 편린을 볼 수 있고 조선유학의 독특한 부문을 형성한 것이 사실이지만, 유학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성리철학 자체도 16세기 보다 더 깊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꼭 그런 철학적 논쟁이 필요했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사실 16세기 말 조선유학이 발전하여 이룩해야 될 다음 단계는 엉뚱하게도 조선땅이 아니라 일본땅에서 17-18세기에 벌어졌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성리학 극성기의 다음 단계는 내부.. 202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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