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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히 살피는 1925년 을축년대홍수 홍수라는 고고학자 앞에서 1997년 이후 풍납토성 일대에서 있었던 몇 차례 발굴 사례를 보았다. 누누이 지적했고 앞으로도 줄곧 그러겠지만 풍납토성은 넓이가 22만 6천 평이다. 이 중에서 발굴이 이뤄진 곳은 정확한 통계가 없어 모르겠으나 전체 면적 중 10%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발굴다운 발굴은 1997년 이형구로 시작이 되는데 그 이전에는 발굴이 아예 없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1964년에 김원룡이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학생들을 데리고 발굴한 적이 있으며 그에 앞서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에 의한 발굴도 있었다. 사람과 홍수가 합작한 1997년 이전 이 두 발굴은 파란으로 점철된 20세기 이후 풍납토성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 김원룡이 주도한 시범 발굴이 있기 바로 전 해인 .. 2023. 7. 17.
사진 포커싱과 찍는 사람 그것은 일치하지 않는다 사진하는 사람들한테야 너무나 당연해서 새삼할 필요도 없겠지만, 어디다 포커싱을 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진다. 다만 그 포커스가 가는 자리가 모름지기 찍는 사람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외려 반대일 때가 많다. 하는 말이 액면과 속내가 다른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언제나 상처를 주는 말은 전자다. 저 아리땁기만 한 개망초가 마침 내가 찾은 그 순간 싹둑싹둑 짤려 나갔다. 그렇다고 짜르지 마시오 온몸으로 막아서야겠는가? #회암사지 #개망초 #포커스 #사진포커스 2023. 7. 17.
[唐詩]〈금릉 술집에서 이별하며 金陵酒肆留別〉by 李白 風吹柳花滿店香 吳姬壓酒喚客嘗 金陵子弟來相送 欲行不行各盡觴 請君試問東流水 別意與之誰短長 내가 언젠가 누군가 중국요리집 이름을 하나 부탁한다면 반드시 권해주고픈 이름이 만점향滿店香이었는데 사람이 용렬해서인지 아직 그 누구도 내게 그런 부탁을 한 사람은 없었다. 風吹柳花滿店香 吳姬壓酒喚客嘗 술집의 정경을 이렇게 낭만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이백이니 가능했지 싶다. 내가 이래서 이백을 좋아한다. *** Editor's Note *** 이 시를 중문학도 홍상훈 선생은 다음과 같이 옮기고 해설한다. 바람이 버들 꽃 불어 가게에 향기 가득한데 오 땅 미녀 술을 걸러 나그네에게 맛보라고 권하는구나. 금릉의 자제들 전송하러 나왔으니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자 각자 술잔 비우지. 그대, 동쪽으로 흐르는 저 강물에게 물어보.. 2023. 7. 16.
박물관 앞에서 좌절한 혜음원지방문자센터 vs. 박물관 밖의 박물관 경제발전전시관 내가 주말을 다닌 이들 두 곳이 일반에는 물론이요 내가 집중하는 이 문화재 문화업계서도 아직은 생소 그 자체로 본다. 전자는 지난해 문을 연 신생 중의 신생으로 그 이름도 요상한 방문자센터요 후자는 실상 문화 쪽이 아니라 기획재정부 관할 기관인 까닭에 문화 쪽에선 생소할 수밖에 없다. 내가 저들을 둘러본 까닭이 바로 저 이유다. 결론만 말하면 둘은 다 박물관 경계밖에 위치한다. 개중 전자는 박물관이 되고 싶었지만 좌절한 경우요 후자는 언제건 그 영역을 치고 들어갈 만반의 채비는 갖추었지만 아직 내가 파악하지 못하는 모종의 이유로써 그 바깥을 지킨다. 이 파주 혜음원지방문자센터는 장기간 계속한 혜음원 이라는 고려시대 역원驛院이자 사찰 발굴성과를 전시홍보하기 위한 파주 시립 기관이라 보다시피 전시관 기능을 .. 2023. 7. 16.
문맹퇴치와 교사육성, 교육혁명의 양대 축 문맹률 수치는 의미가 없다. 온 국민이 까막눈이었으니깐. 까막눈 민족한테 주어진 해방은 그래서 느닷없었다. 까막눈이 깨어야 했다. 어린아이들은 학교에 보내야 했으며 이미 까막눈인 채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도 써먹으려니 글자를 가르쳐야 했다. 한국전쟁 당시 군인 전부가 까막눈이었다. 갸갸거거부터 갈쳐야 했다. 그런 까막눈들을 가르치려니 학교가 필요했고 교사가 시급했다. 마구잡이였지만 속성으로 길러냈다. 한강의 기적? 웃기는 소리마라. 기적이란 말로도 부족하며 이는 천지창조였다. 홍릉 #글로벌지식협력단지 #한국경제발전전시관 에서 #문맹 #문맹률 #문맹퇴치 2023. 7. 16.
우즈벡 답사기(4):부하라(마드라사, 칼란 미나렛&모스크, 부하라 요새) 6시간을 달려 드디어 부하라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부하라 올드타운에 있는 숙소에 짐을 내리고 칼란 미나렛 방향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장거리 이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걸어다녔다. 숙소에서 1km 내외의 거리는 걸어서 다녔는데,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 편하긴 하지만, 차를 타고 다니기에 약간 애매한 감이 없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실제 골목의 속살을 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생각보다 치안이 좋아서 다니기 편했다. 또 만나는 사람들도 친절해서 골목을 다니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골목에서 눈을 마주치고 가벼운 목례만 해도 반갑게 인사해주고 어디에서 왔는지 묻고,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것이 우리나라 시골 동네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특히 한국에서 일하다 돌아온 사람들은 한국말을 듣고는 .. 2023.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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