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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을 뚫는 향기 한시, 계절의 노래(88) 주씨 전원(周氏园居) 송 미불(米芾) / 김영문 選譯評 높이 핀 꽃 치렁치렁마루 밝게 비추고 연못 물 찰랑찰랑섬돌 둘러 소리 내네 정적 속 향기 들으며권태에서 깨어나고 빗속에 일 없으니한가한 마음 보이네 高花落落照軒明, 沼水涓涓繞砌聲. 靜裏聞香醒倦思, 雨中無事見閒情.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고등학교 때 이 구절을 두고 이미지즘의 공감각적 표현이라고 배웠다. “푸른”은 시각이고 “종소리”는 청각인데 그것이 엇섞여 인식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 해설을 통해 이미지즘이니 모더니즘이니 하는 문학 용어를 들으며 매우 현대적인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공감각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녹아 있는 매우 오래된 감각이다. “달콤한 목소리”, “쓴 소리”, “시린 하늘”을 상기해보라... 2018. 6. 27.
향불처럼 타오르는 향로봉 문수보살 보탑 한시, 계절의 노래(87) 향로봉(香爐峰) 송 황정견(黃庭堅) / 김영문 選譯評 쇠로 향로 만들지 않고바위로 구워내니 코로 향기 못 맡아도눈으로 연기 보이네 향로봉 위에 선문수사리 보탑이 한 가닥 향불처럼향로 속에서 타오르네 香爐不鑄石陶甄, 鼻不聞香眼見煙. 上有文殊師利塔, 好將一瓣此中燃. 한시(漢詩)는 당대(唐代)에 극성했다. 당을 대신한 송나라 시인들은 시를 지을 때마다 고심해야 했다. 이미 당나라 시인들이 거의 모든 표현을 선점한 까닭이다. 북송 황정견(黃庭堅)에서 비롯된 강서시파(江西詩派)는 아예 기존 시의 내용이나 표현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대로 베끼지는 않고 아니고 나름대로 새로운 시어로 포장했다. 이처럼 기존 시의 뜻은 그대로 빌려오면서 새로운 시어로 포장하는 일을 환골법(換骨法)이라 .. 2018. 6. 22.
굴절한 빛이 비춘 이끼 한시, 계절의 노래(86) 녹채(鹿柴) 당 왕유(王維) / 김영문 選譯評 텅 빈 산에사람 보이지 않고 두런두런목소리만 들려오네 반사된 햇볕깊은 숲에 들어 푸른 이끼 위를다시 비추네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返景入深林, 復照靑苔上. 후세 사람들은 왕유를 시불(詩佛)이라 일컫는다. 그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 영향을 깊이 받았다. 게다가 그의 이름 유(維)와 자(字) 마힐(摩詰)을 합하면 ‘유마힐(維摩詰)’이 된다. 유마힐은 석가모니와 같은 시대 재가불자(在家佛者)로 학덕이 높았다. 왕유는 이처럼 그의 삶과 연관된 불교 인연으로 시불이라 불릴까? 물론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시불이라는 그의 별칭은 불교의 이치를 생활화하고 그것을 시로 형상화하는데 뛰어났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봐야 한다. 그의 시에 자주 .. 2018. 6. 22.
물 빠진 수초는 어이할꼬 한시, 계절의 노래(85) 잡시 절구 17수(雜詩絕句十七首) 중 둘째 [宋] 매요신(梅堯臣·1002~1060) / 김영문 選譯評 푸른 풀이물 속에서 싹이 터 날마다물 따라 자라네 물 빠지면어디에 기대랴 헝클어져죽은 풀 되겠네 靑草生水中, 日日隨水長. 水落何所依, 撩亂爲宿莽. 매요신은 구양수·소순흠과 함께 송시의 이지적 특징을 정착시킨 시인이다. 송시의 이지적 특징은 시인들이 현실 속 자잘한 사물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면서 거기에 깊은 의미를 담아내는 경향을 가리킨다. 당시(唐詩)의 광대하면서도 허황하며 비애롭기까지 한 경향과 분명하게 대조된다. 이는 일상 속 사물을 깊이 사유하고 분석하여 진리를 발견하려는 ‘격물치지(格物致知)’ 자세와 상통하는 경향이다. 송나라 초기부터 성리학적 탐색이 지식인 사회의 주류를.. 2018. 6. 22.
비 오는 산중 한시, 계절의 노래(84) 무제(無題) 송(宋) 방저(方翥) / 김영문 選譯評 어둑한 비자욱이 내려 산속 오월날씨 차갑네 큰 강은 전혀깨닫지 못하고 계곡물만 불어여울 세차네 暗雨落漫漫, 山中五月寒. 大江渾不覺, 溪壑有驚湍. 비 오는 날에는 마음이 가라앉는다. 저기압의 작용으로 마음도 저기압이 되는 걸까? 최백호의 노래가 제격이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 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를 들어보렴” 둘다섯의 노래는 더욱 애잔하다. “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모습/ 달처럼 탐스런 하얀 얼굴/ 우연히 만났다 말없이 가버린/ 긴머리 소녀야” 설익은 꿈과 사랑은 세월의 물결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졌다. 박인환은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 2018. 6. 20.
옥문관을 넘지 못하는 봄바람 한시, 계절의 노래(83) 양주사(凉州詞) [唐] 왕지환(王之涣) / 김영문 選譯評 황하는 저 멀리흰 구름 사이로 오르고 한 조각 외로운 성만 길 산에 우뚝 섰네 오랑캐 피리 하필이면「버들 노래」로 슬퍼하나 봄바람은 옥문관을넘지도 못하는데 黃河遠上白雲間, 一片孤城萬仞山. 羌笛何須怨楊柳, 春風不度玉門關. 당시(唐詩) 중에서 변방의 애환, 고통, 고독, 용기, 기상 등을 읊은 시를 변새시(邊塞詩)라고 한다. 왕지환(王之渙), 왕창령(王昌齡), 고적(高適), 잠참(岑參) 등이 이 시파에 속한다. 이 시를 읽으면 우선 첫 구절에서 특이한 느낌을 받게 된다. “황하가 저 멀리 흰 구름 사이로 올라간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백의 「장진주(將進酒)」 첫 구절과 방향이 정 반대다. “그대는 .. 2018.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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