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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탈과 양위, 그 시소게임 방원이는 왜 생전에 셋째 이도한테 양위했을까? 방석이 때문이다. 방석이가 실패한 원인..그건을 전복한 자가 본인이기에 어찌해야 하는지를 너무 잘 알았다. 성계가 실패한 이유는 골육의 정을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석이를 제외한 모든 아들은 죽여버리거나 팔다리를 끊고 지방으로 위리안치했어야 한다. 이걸 본능으로 방원이는 알았다.한데 이도는 이걸 몰랐다. 아들이 병약함을 알았으되 그 아들을 지나 바로 손자에게 갈수밖에 없음을 알았을 것이로대 혈육에 이끌려 후사를 망치고 말았다. 권력은 부자라도 나누는 물건이 아니다. 태양은 하나다. 2018. 2. 25.
화랑세기를 피해가는 한 방법 나는 물건 감정과 전문가는 다르다고 본다. 미술사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 예컨대 도자기가 있다. 나는 도자기 감정을 잘 한다 해서 그 사람이 뛰어난 도자기 연구자로 보지는 않는다. 이 논리대로라면 가장 뛰어난 도자기 연구자는 그 진위를 감정하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사동 같은 데서 일하는 골동품 취급하는 사람들이다. 골동품 취급하는 일과 도자기를 연구하는 일은 다른 영역에 속한다고 본다. 하지만 연구자도 이를 피해갈 수는 없으니, 무엇인가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단안해야 할 때는 서슴없이 해야 한다. 그것이 잘못된 감정일지라도 말이다."1989년 부산에서 발견된 이른바 화랑세기에는 김흠돌 모반의 전말이 확인된다. 그러나 아직도 그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행 중이.. 2018. 2. 25.
"똥에 핀 꽃 왕소군王昭君"-석숭石崇 아래 텍스트는 《옥대신영玉臺新詠》 卷1을 저본으로 삼은 것이다. 제목 왕소군사(王昭君辭)의 '사辭'란 굴원의 대표작을 《초사(楚辭)》라 하거니와, 이는 초 지방 노래라는 뜻이니 이에서 비롯되어 왕소군을 소재로 한 노래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할 듯하다. 이 시에는 아래와 같은 서문에 있거니와, 이 서문이 《玉臺新詠》 찬자의 것인지, 아니면 왕소군사의 원래 저자인 석숭石崇의 것인지 지금 단안은 못하겠지만, 후자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석숭(249~300)은 서진시대를 대표하는 사치가요 권력가였다가 나중에 패가망신했다. 그를 둘러싼 사치 행각은 《세설신어世說新語》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 산발한다.왕명군(王明君)이란 본래 왕소군(王昭君)인데, 曺나라 황제 문제文帝의 휘諱에 저촉된다 해서 이름을 고쳤다. 흉노匈奴가 .. 2018. 2. 24.
태수님 껄떡거리지 마오..이백(李白)의 자야오가(子夜吳歌) 李白의 ‘子夜吳歌’ 4首 중 春歌다. 秦地羅敷女 진나라땅 나부라는 여인采桑綠水邊 푸른 강가에서 뽕을 따네 素手青條上 고운 손 파란 가지에 올리니紅粧白日鮮 붉은 화장 햇살에 희게 빛나네 蠶飢妾欲去 누에가 배고파요 저는 가요 五馬莫留連 태수님 껄떡거리지 마오 2018. 2. 24.
전성남戰城南 : 내 시체 먹어줄 까마귀에게 한漢 악부樂府 중에 전쟁과 관련한 노래인 곡취곡사鼓吹曲辭 중에 나중에는 그 첫 대목을 따서 ‘성전남’(戰城南), 즉 ‘성 남쪽에서 싸우다가’라고 부르는 시 한 편이 있으니 가사와 옮김은 다음과 같다. 戰城南死郭北 내성 남쪽에서 싸우다가 외성 북쪽에서 죽고마네野死不葬烏可食 들판에서 죽어 묻어주지 않으니 까마귀밥 신세爲我謂烏 나 대신 까마귀에게 말해주오且爲客豪 부디 객을 위해 곡이나 해주라고野死諒不葬 들판에서 죽어 묻어주지 않으니腐肉安能去子逃 썩은 육신 어찌 그대에게서 도망치리오水深激激 깊은 물살 세차고蒲韋冥冥 갈대 덮어 어둑어둑梟騎戰鬪死 날쌘 말은 싸우다 죽어버리고駑馬徘徊鳴 둔한 말만 서성이며 울부짓네梁築室何以南何以北 집짓는 사람들 어찌하여 남북을 왔다갔다 하는지禾黍不獲君何食 곡식 거두지 못하니 그대 무얼.. 2018. 2. 24.
카르페 디엠carpe diem : 구거동문행(鷗車東門行) 다음은 漢代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 중에 그 열 세 번째이니 이와 같은 民歌 성격이 짙은 시편은 원래 제목이 없는 일이 허다하니, 이것 역시 그런 신세지만 그 첫 줄을 제목으로 삼아 ‘구거상동문행驅車上東門行’이라 한다. 중국 고대 시가 제목 끝에 흔히 붙는 ‘行’은 노래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모르겠다. 이것이 바로 ‘流行歌’의 ‘行’ 아니겠는가? 아래 시는 그 전체 맥락이 carpe diem에 가깝지만 그 이면은 무척이나 씁쓸하다. 불교의 無常을 떠올리며 짙은 니힐리즘이 있는가 하면, 그리하여 그런 자각에서 마치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뮤직 비디오를 보는 듯한 인상이다. 번역은 다듬어야 할 곳이 적지 않다. 더불어 먼 훗날 이태백의 춘아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연상케 한다. 驅車上東門 구루마 몰.. 2018.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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