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964 음기가 무척이나 센 사천성 아미산 복호사 四川省峨眉山伏虎寺 2016년 10월 사천성을 찾았을 적에 들른 아미산 기슭 복호사伏虎寺라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다른 무엇보다 건축물이 인상적이었고, 또 하나 자리 잡은 곳을 보니 풍수를 모르는 사람한테도 음기陰氣가 너무 센 곳이라는 느낌을 주는 데였다. 눅눅하기 짝이 없었다. 아미산을 저때 세 번째로 찾았는데, 복호사는 처음으로 들렀다. 복호는 글자 그대로는 엎드린 호랑이 혹은 호랑이를 굴복케 하다는 뜻이다. 저 창건 연기 내력에 무슨 사연이 있으리라, 내가 찾아보지는 않았다. 다녀왔다는 흔적 복기 차원에서 몇 장 사진 긁저거린다.저 사찰 고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보재 아닌가 싶었다.인근엔 보국사報國寺라는 거찰도 있다.내가 저 사천성과 이렇다 할 연줄이 있겠는가?그래도 싸질러 다닌 중국 .. 2019. 10. 18. 북한산 비봉 진흥왕순수비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 논문 쓴다고 비봉碑峰에 몇번 올랐다. 보다시피 온통 암반이라, 이 일대에서는 조난사고가 요즘도 심심찮고, 사망에 이르는 일이 많다. 그만큼 험준한 곳이다. 이건 촬영일이 2011년 10월 16일이라고 찍힌다. 그 전에 이곳에 처음 올랐을 적에 나는 진흥왕 순수비眞興王巡狩碑에 대한 기존 해설이 모조리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종래의 압도적인 견해로는 신라 진흥왕이 유가적 왕도정치儒家的王道政治를 표방하기 위해 북한산으로 순수巡狩를 하고는 그 기념으로 이 비석을 세웠다는 것이다. 내가 본 북한산 비봉 현장은 유가적 왕도정치를 표방하거나, 선전할 수 없는 험준한 바위산이었다. 그렇다면 왜 진흥왕은 이런 데 행차했는가? 천신天神과 지기地祇를 제사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천신을 제사하기 위해서는 하늘과 가.. 2019. 10. 18. 구절초 함박한 경주 서악 경주 서악이 구절초 잔치라 온동네 이 꽃 향기로 범벅한다. 서악이 근래 매년 가을이면 이리한 옷을 걸치는 까닭은 그리하고자 한 필연이 있기 때문인데 진병길이라는 걸물 회심의 역작이다. 미친 듯 심어댔고 그 심음을 위해 미친 듯 밭을 개간하고 갈아댔다. 그 미침이 서서히 빛을 본다. 2019. 10. 17. 감나무 접붙지 아니한 고염 감 같지도 아니한 고염이 잔뜩이라 덕지덕지 눌러붙었는데 여전히 떫은 맛이라 주렁주렁 알알이 박혔는데 서리 내릴 무렵 맛이 낫다는 지인 말 들으니 그랬던 것도 같다. 고염은 감나무 접붙이는 줄기라 그러니 감나무 줄기세포라 하리니 감은 고염을 만나야 비로소 감이 된다. 2019. 10. 17. 직인을 위조하는 자는 능지처참 《경국대전》 [僞造] 僞造印信者, 印文雖未成, 處斬, 妻子, 永屬諸邑奴婢。捕告者, 給犯人財産。 직인을 위조하는 자는 설혹 그 직인 글자가 완성되지 못했다 해도 본인은 능지처참하며, 그 처자는 각 고을 노비로 삼는다. 그런 놈을 산 채로 잡아 고하는 사람은 범인의 재산을 준다. 도장 위조하지 마라. 이 자료는 행주기씨 호철씨 글을 옮겨와서 옮긴다. 2019. 10. 17. 상식으로 접근하는 역사, 인질 미사흔의 왜국생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면 내물왕 아들로 복수극에 희생되어 실성왕 때 왜국에 인질로 간 미사흔은 아마 10년? 정도 왜국에서 있다가 박제상의 주선으로 귀국한다. 《사기》와 《유사》에는 왜국에서의 미사흔 삶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구출 과정을 보면 엄격한 감시에 시달리며 실상 죄수와 같은 생활을 한 것으로 묘사 혹은 암시된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아무리 인질이라 해도 10년을 저리 쳐박아둘 수는 없다. 그리고 볼모랑 죄수는 다르다. 그렇다면 미사흔의 실제 왜국생활은 어땠을까? 이건 개돼지도 상상 가능하다. 미사흔에게 여자는 없었을까? 십년 동안 홀아비였을까? 열라 주지육림에 놀았으리라. 어울리는 여자들은 급이 달랐다. 개중엔 왜왕의 딸도 있었으니 아도 배게 했다. 미사흔이 도망가자.. 2019. 10. 17. 이전 1 ··· 3026 3027 3028 3029 3030 3031 3032 ··· 366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