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19428

김룡춘(金龍春) 신라 진지왕 아들이며, 룡수(龍樹) 동생이다. 형이 죽자 그 아들 김춘추를 양자로 거두어 돌보았다. 죽은 뒤 문흥대왕에 추봉됐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4 진평왕 :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룡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했다. 고구려인이 성을 나와 진을 벌려 치니 군세가 매우 성해 우리군사가 그것을 바라보고 두려워 싸울 마음이 전혀 없었다. 유신이 말했다. "제가 듣건대 ‘옷깃을 잡고 흔들면 가죽옷이 바로 펴지고 벼리를 끌어당기면 그물이 펼쳐진다’ 했습니다. 제가 벼리와 옷깃이 되겠습니다". 이에 말을 타고 칼을 빼들고는 적진을 향해 곧바로 나아가 세 번 들어가고 세 번 나옴에 매번 들어갈 때마다 장수 목을 베고 혹은 깃발을 뽑.. 2018. 3. 21.
선덕대왕(善德大王) 신라 제28대 선덕왕을 높여 일컫는 말.삼국사기 권 제41(열전 제1) 김유신上 : 선덕대왕 11년 임인(642)에, 백제가 대량주(大梁州)를 격파하였을 때, 춘추공(春秋公)의 딸 고타소랑(古陀炤娘)이 남편 품석(品釋)을 따라 죽었다. ☞선덕왕(善德王) 2018. 3. 21.
고타소(古陀炤) 훗날 태종무열왕이 된 신라 김춘추 딸이다. 대야성 군주로 임명된 남편 김품석을 따라 임지에 있다가 백제군에 성이 함락될 때 피살됐다. 삼국사기 권 제41(열전 제1) 김유신上 : 선덕대왕 11년 임인(642)에 백제가 대량주(大梁州)를 격파했을 때, 춘추공(春秋公)의 딸 고타소랑(古陀炤娘)이 남편 품석(品釋)을 따라 죽었다. 춘추가 이를 한스럽게 여겨 고구려에 청병함으로써 백제의 원한을 갚으려 하자 왕이 허락했다. (춘추가) 막 떠나려 할 때 유신에게 말했다. “나는 공과 한 몸이고 나라의 팔다리입니다. 지금 내가 만약 저 곳에 들어가 해를 당하면, 공은 무심할 수 있겠습니까?” 유신이 말했다. “공이 만일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 말발굽이 반드시 고구려·백제 두 임금의 뜰을 짓밟을 것이오. 진실로 그.. 2018. 3. 21.
고타소랑(古陀炤娘) 고타소(古陀炤)라는 여자를 높여 일컫는 말인 듯 ☞고타소(古陀炤) 2018. 3. 21.
김품석(金品釋)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 사위로서 선덕왕 11년(642), 이찬이자 대야성 도독으로 있다가 백제군 침략에 성은 함락되고 그 자신도 부인 고타소와 함께 죽었다. 삼국사기 권제5(신라본기 제5) 선덕왕 : 11년(642)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에 백제 왕 의자(義慈)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나라 서쪽 40여 성을 쳐서 빼앗았다. 8월에 또 고구려와 함께 모의하여 당항성을 빼앗아 당나라와 통하는 길을 끊으려 하였으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 [당] 태종에게 위급함을 알렸다. 이 달에 백제 장군 윤충(允忠)이 군사를 이끌고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도독 이찬 품석(品釋)과 사지(舍知) 죽죽(竹竹)·용석(龍石) 등이 죽었다. 겨울에 왕이 장차 백제를 쳐서 대야성에서의 .. 2018. 3. 21.
훈신(訓信) 생몰년 미상. 신라인. 선덕왕 11년(642) 김춘추가 고구려에 청병하러 사신으로 갈 때 수행했다. 삼국사기 권 제41(열전 1) 김유신上 : 나중에 유신은 압량주(押梁州) 군주(軍主)가 되었다. 춘추가 사간(沙干) 훈신(訓信)과 함께 고구려에 예방하러 갈 때 대매현(代買縣)에 이르니 고을 사람 사간 두사지(豆斯支)가 청포(靑布) 300보(步)를 주었다. 2018. 3. 2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