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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은 종기가 아니다 작금 우리 문화재 현장에 통용하는 변형이라는 말이 좋게 다가오는 일은 없다. 그리하여 언제나 말하기를 이 문화재는 창건 당시 모습에서 잦은 변형을 겪었다고 하면서, 그 무수한 변형들을 무엇인가 정상적인 것들을 방해하거나 훼방한 비틀기로 간주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네 문화재 현장에서 변형은 언제나 우리가 수술을 통해 바로잡거나 제거해야 할 종기로 통용한다. 더불어 그런 까닭에 변형은 언제나 훼손과 동의어다. 이런 변형관觀, 곧 변형에 대한 생각은 그런 까닭에 변형 저편, 훼손 이전 상태를 필연적으로 이상향으로 상정한다. 이 이상향을 우리네 문화재 현장에서는 원형이라는 말로 치환하며 무한한 찬사를 바친다. 그곳은 서방극락정토요 천국이다. 원형이라는 말이 성립가능한지는 잠시 차치하고, 이 원형은 거의 해당 문.. 2019. 6. 5.
변기턱 걸친 불알 같은 거돈사지 느티나무 폐사지 축대 모퉁이를 걸친 느티나무 족히 수백살은 될 터인데 그렇다면 저 모습으로 수백년을 버텼다는 뜻이다. 자빠지지 않으려 용을 썼던가? 변기 턱에 거시기 올려놓고 편히 용변 보는 자세인데 그래도 버겁기는 마찬가지라 아둥바둥 버틴 너가 조금은 안쓰럽다 2019. 6. 5.
Sun Setting behind a 감이파리 감 이파리 뒤로 하루 해가 진다. 2019. 6. 4.
연세대의 봉준호 마케팅 연세대 신촌캠퍼스 백주년기념관, 그러니깐 이 대학 박물관이 입주한 건물에 걸린 봉준호 대형 사진이다. 이번에 이 대학 출신 봉준호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타니 잽싸게 교내 곳곳에 붙였다고 한다. 대략 교내 곳곳 열군데 정도 붙였다 한다. 이 봉준호 마케팅이 듣자니 연세대 총장 선임과도 맞물려 묘하게 돌아가는 모양이다. 봉준호는 이 학교 사회학과 출신인데 지금은 아마 이 학과가 사회과학대로 짐을 싸고 나가지 않았나 하는데 봉준호가 다닐 땐 인문대학 문과대학 소속이었다. 이 친구가 88 아니면 89학번 아닌가로 아는데, 나는 복학생이었으므로 같은 문과대라 해서 같은 건물에서 제법 자주 지나치기는 했겠지만 도통 기억에 없다. 이리 큰 인물될 줄 알았다면 그때 잘 보일 걸 그랬다. 지금 총장이 김용학. 사회학과.. 2019. 6. 4.
다시 만난 이한열 연세대 신촌캠퍼스 학생회관이다. 모르겠다. 내가 다닐 땐 학생회관이었는데 지금도 그리 부르는지는. (다시금 사진을 보니 학생회관 맞구만) 암튼 이 학생회관에 한열이 대형 걸개판화가 걸렸다. 이 그림 자신은 없으나 그때 그 그림이다. 32년전 그 그림이다. 누렇게 뜬 상태를 보니, 더 그런 심증을 굳혀준다. 이 걸개그림이 남았다니, 더구나 그 그림을 30년이 더 지나 마주하니 한 대 얻어맞은 듯 띵 하다. 내 세대, 특히 한열이와 같은 시대, 그와 같은 공기를 같은 캠퍼스에서 호흡한 이들한테 이 그림은 뭐랄까? 언제나 트라우마다. 경찰이 쏜 최루탄 맞아 백양로에서 피흘리는 한열이를 부축하는 이 그림은 이미 한열이가 세상을 떠난 1987년에 걸렸다. 몇년 전이었다. 그때 모교 재상봉행사가 있어 참석했더니 저.. 2019. 6. 4.
북한인권운동 투신 윤현 목사를 추억하며 윤현 목사가 타계했다. 이 소식은 우리 공장 한반도부에서 아래와 같이 다뤘다. '인권운동 1세대' 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명예이사장 별세 이 소식을 전하며 우리 공장 장용훈 부장이 SNS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거니와, 취재하면서 두어번 뵈었다...한국의 인권운동을 하시다가...북한인권에 관심을 가지신 분...그 분과 대화에서 진심을 느꼈다...솔직히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북한인권단체 별로 신뢰하지 않지만...윤 이사장님에게는 결이 다른 북한인권에 대한 진정성을 읽을 수 있었다...남한의 인권, 북한의 인권 모두에 목소리를 높였던 분...삼가 명복을 빕니다...덧...일부 신문에서 이분의 부고기사를 쓰면서 북한인권운동가로만 소개를 하던데....그건 이분의 절반도 소개하지 못한거와 마찬가지다... 전적.. 2019.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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