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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주차장이라?" 그제다. 점심시간 짬을 내서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에 들렀다. 박물관 입구 안내판을 보니 왕실의례와 관련한 공간을 근자에 재단장했는지 혹은 새로 꾸몄다 했으므로, 이곳을 돌아봤다. 그곳을 돌아보고는 위층으로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는데, 그 중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할머니 부대랑 마주쳤다. 각중에 지나치는 나를 붙잡고 개중 어떤 할매가 묻는다. "아재, 일로가마 주차장이지요?""엥? 뭔 주차장? 할매 주차장 가야대여?" 같은 일행이지 싶은 다른 할매가 나랑 같은 방향으로 계단을 올라오다가 문제의 주차장 할매한테 말한다. "니리갈꺼 업써. 암꾸도 볼끼 엄써. 차 두대밖에 엄써. 고마 올라가.""그라까? 볼끼 이키 없노? 가 고마"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실 지하1층 홀에는 저 순종어차를 갖다 놓았다. 아마도 동네.. 2018. 3. 11.
임금과 신하, 재물과 베품 "천하에 부릴 만한 신하가 없음을 걱정하지 마라. 그런 그를 알아보고도 부릴 만한 임금이 없음을 걱정하라. 천하에 쓸 만한 재물이 없음을 걱정하지 마라. 재물이 있어도 그것을 분배할 줄 아는 사람이 없음을 걱정할지니라" (天下不患無臣, 患無君以使之: 天下不患無財, 患無人以分之) 管子 牧民篇에서 2018. 3. 11.
덕동댐을 찾아서(1)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과 덕동호 덕동댐은 1971년 박정희 정권이 입안하고, 이듬해 시행에 들어간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 일환으로 건설됐다. 경주를 古都 분위기에 어울리게 개발한다는 취지를 표방한 이 개발계획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됐으니, 하나가 경주 분지 일대에 산재하는 신라시대 유적 환경을 정비하는 ‘사적지구 정비계획’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을 관광과 연계한다는 취지에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배후 시설인 ‘관광시설 계획’이 그것이니, 보문관광단지 개발은 두 번째 계획의 핵심이었다. 물론 이 두 계획을 위한 도로와 상하수도 정비 등 ‘관광환경 및 기반시설조성’ 계획도 다른 주축을 이룬다. 덕동댐은 이 중에서도 보문관광단지 개발과 직접 연동한다. 1971년 건설부가 작성한 《경주관광개발종합계획》을 보면 먼저 관광시설 계획 투자 방향으로.. 2018. 3. 10.
Titus Livius (Livy), The History of Rome, 리비우스 로마사 책 전체에 대한 영어번역은 아래 참조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3Atext%3A1999.02.0026 http://mcadams.posc.mu.edu/txt/ah/Livy/ 티투스 리비우스(Titus Livius)는 고대 로마 역사가다. 라틴 이름이 Titus Livius이며, 영어로는 Livy로 표기하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다. 기원전 59년 혹은 64년 파타비움Patavium 출생이니, 이곳은 베네치아(Venetia), 현재의 이탈리아 파두아Padua다. 서기 17년 고향에서 죽었다. 가이유스 살루티우스 크리푸스(Gaius Sallustius Crispus, 혹은 살루스트Sallust), 그리고 타키투스Tacitus와 더불어 고대 로.. 2018. 3. 10.
《원화군현도지》(元和郡縣圖志) 약칭 《원화군현지》(元和郡縣志)라고도 한다.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완비된 전국 지방지리 총서로서 전 40권이다. 체례가 완비됐으며, 전국을 커버하니 100도(道) 47진(鎭)을 강(綱)으로 삼고, 부(府)·주(州)·현(縣)을 목(目)으로 삼았다. 각 지방 행정구역별로 그 연혁을 기술하되, 위로는 삼대(三代)로 소급하며, 아래로는 이 책이 편찬된 당대(唐代) 원화(元和) 연간에 이른다. 편찬 책임자는 이길보(李吉甫, 758~814)이니, 字를 홍헌(弘憲)이라 하며 조주(趙州) 찬황(贊皇) 사람이다. 어사대부(御史大夫) 이서균(李棲筠)의 아들인데, 음보(廕補, 음서)로 좌사어솔부창조참군(左司御率府倉曹參軍)이 되었다. 정원(貞元) 연간 초에 태상박사(太常博士)가 되고 관직이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中書侍郞同.. 2018. 3. 9.
《괄지지(括地志)》 애초 전 550권이며 서략(序略) 5권이 더 있었다. 당초(唐初)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의 넷째 아들로 위왕(魏王)에 책봉된 이태(李泰)가 주편한 거질 지리서(地理書)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와 고야왕(顧野王)의 《여지지(與地志)》의 양대 先代 지리서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형태의 지리서 체례를 열었다고 평가되며 여기에서 이룩한 지리서 편찬 전통은 후대의 《원화군현지(元和郡縣志)》와 《태평환우기(太平圜宇記)》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미 남송(南宋)대에 이르러 그 원전은 망실되어 버리고 그 잔편(殘篇)들만이 후대 다른 서적들에 산발적으로 인용되어 전할 뿐이다. 편찬 책임자 이태는 “好士愛文學”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아버지 태종 또한 그를 총애해 그에게 문학관(文學館)을 세우도록 허락했다. 이에 .. 2018.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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