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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도(伊處道) 신라 법흥왕 시절 불교 공인과 포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차돈(異次頓)의 다른 표기임이 확실하다. 고운집 제1권 기(記) 신라 수창군 호국성 팔각등루 기문〔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 : 천우(天祐) 5년(908·효공왕 12) 무진년 겨울 10월에 호국의영도장(護國義營都將) 중알찬(重閼粲) 이재(異才)가 남령(南嶺)에 팔각등루(八角燈樓)를 세웠다. 그 목적은 국가의 경사를 기원하고 병란(兵亂)의 흔단(釁端)을 없애기 위함이었다…기개가 드높은 자는 지망(志望)이 유달리 고상하고, 마음이 올바른 자는 신교(神交)가 반드시 정대하게 마련인데, 용년(龍年) 양월(羊月) 경신일(庚申日) 밤에 알찬이 꿈을 꾸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또 며칠 밤이 지나 다시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성 동쪽 장산(.. 2018. 4. 6.
임종(林宗) ☞림종(林宗) 2018. 4. 6.
림종(林宗) 신라 선덕~진덕왕 무렵 권력자 중 한 명이다. 벼슬은 각간에 이르렀으며, 진덕여왕 시대에는 알천(閼川)·술종(述宗)·호림(虎林)·염장(廉長)·유신(庾信)과 더불어 우지암 회의를 통해 국정 운영 주축을 이루었다. (양)아들로 길달이 확인된다. 삼국유사 제1권 기이(紀異) 제1 도화녀(桃花女) 비형랑(鼻荊郞) : 비형이 명을 받아 귀신 무리를 시켜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놓았다. 그래서 다리를 귀교(鬼橋)라고 했다. 왕이 또 묻기를 “그들 귀신 중에서 사람으로 출현(出現)해 조정 정사를 도울 만한 자가 있느냐”고 하니 “길달(吉達)이란 자가 있사온데 가히 정사를 도울 만합니다.”고 했다. “그러면 데리고 오도록 하라”고 하니 이튿날 그를 데려 와 왕을 뵈니 집사(執事) 벼슬을 주니 그가 과연 충성스럽고 정.. 2018. 4. 6.
길달(吉達) 신라 진지왕 시대 각간(角干) 림종(林宗)의 (양)아들로, 건축토목 전문가였던 듯하다. 진지왕 유복자인 비형랑이 이끄는 무리에 속했으며, 흥륜사(興輪寺) 남쪽 문루(門樓)를 세우기도 했다. 삼국유사 제1권 기이(紀異) 제1 도화녀(桃花女) 비형랑(鼻荊郞) : 비형이 명을 받아 귀신 무리를 시켜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놓았다. 그래서 다리를 귀교(鬼橋)라고 했다. 왕이 또 묻기를 “그들 귀신 중에서 사람으로 출현(出現)해 조정 정사를 도울 만한 자가 있느냐”고 하니 “길달(吉達)이란 자가 있사온데 가히 정사를 도울 만합니다.”고 했다. “그러면 데리고 오도록 하라”고 하니 이튿날 그를 데려 와 왕을 뵈니 집사(執事) 벼슬을 주니 그가 과연 충성스럽고 정직하기가 비할 데 없었다. 이때 각간(角干) 림종(林.. 2018. 4. 6.
구문(仇文) 생몰년 미상. 신라인. 검군의 아버지.삼국사기 권제48(열전 제8) 검군 열전 : 검군(劍君)은 대사(大舍) 구문(仇文)의 아들로 사량궁(沙梁宮)의 사인(舍人)이 되었다.cf. 검군(劍君) 2018. 4. 6.
근랑(近郞) 생몰년 미상. 진평왕 무렵 이찬에 있던 대일(大日)이라는 고관의 아들로 화랑으로 다음 사료로 볼 때 화랑 무리를 이끌었다고 추정된다. 삼국사기 권 제48 (열전 제8) 검군 열전 : 검군(劍君)은 대사(大舍) 구문(仇文)의 아들로 사량궁(沙梁宮)의 사인(舍人)이 되었다. 건복(建福) 44년 정해(진평왕 49: 627) 가을 8월에 서리가 내려 여러 농작물을 말려 죽였으므로 다음 해의 봄으로부터 여름까지 큰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자식을 팔아 끼니를 메웠다. 이때 궁중의 여러 사인(舍人)들이 함께 모의하여 창예창(唱倉)의 곡식을 훔쳐 나누었는데 검군만이 홀로 받지 않았다. 여러 사인들이 말하기를 “뭇 사람이 모두 받았는데 그대만이 홀로 물리치니 어떤 이유에서인가? 만약 양이 적다고 여긴다면 청컨대 더 주겠다.. 2018.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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