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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릉 석인상은 서역인과는 관계없는 guardian 11년 전 오늘, 그러니깐 2014년 3월 8일 나는 내 페이스북 계정이 다음과 같이 썼다. 괘릉 석인상..항용 이를 두고 아랍인이 들어왔네 안 왔네 하는데 난 저렇게 생긴 아랍인을 본 적이 없다. 아랍인 종자가 개량됐나?이를 두고 지인들과 왈가왈부하는 와중에 나는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들어왔건 말건 그렇다고 해서 저것이 아랍인상일 수는 없습니다. 이게 제 요집니다.동아시아 보편학의 관점에서 보면 저건 guardian일 뿐입니다 무덤의 진묘수, 사찰의 사천왕상이나 금강역사와 상통하는 가디언이지요. 몇 년 뒤내 저 주장과 딱 일맥상통하는 논문이 제출됐다. 저자는 내가 아니다. 저 딱 한 줄로 충분한 말을 어찌 논문으로 그리 구구절절히 쓸 수 있는지 나는 그 재주가 놀랍기만 하다. 저에서 무슨 말이 더 필.. 2025. 3. 8.
히타이트 서울전에 부친다 산통 깨고 싶은 생각없다.다만 냉혹히 짚자는 뜻일 뿐이다.저 전시 국립김해박물관이 심혈을 기울였고 아무리 국립이라 해도 지방 소재라는 핸디캡이 있었다.그런 가운데서도 듣기로는 꽤 호평받고 관람객 역시 그에 호응해 많았으니 저거 준비한다 똥을 뺀 윤형원 관장 필두로 김해박 직원들이 무척이나 고생한 점 높이 치고 수고했단 말 전한다.저걸 한성백제박물관이 가져와서 서울 전시를 어제 개막했다.우연히 얼마전 한수 대박관장 부친상 빈소 조문길에 한성박 김지연 관장과 잠시 동석했다.그엔 한성박 다른 직원들도 다 같이했다.앞에 앉은 김지연더러 내가 막 웃으며 그랬다."히타이트? 안 된다. 폼페이 이집트 미라 갖다 놔도 안 된다. 고고학? 죽었다 깨나도 장사 안 된다.유럽 왕실로 가라! 덮어놓고 유럽 왕실 이름만 걸어놓.. 2025. 3. 8.
자가 미라화로 열반을 완성한 승려 In 2014, researchers made a remarkable discovery when they conducted a CT scan of a Buddha statue estimated to be around 1,000 years old. To their surprise, they found the well-preserved remains of a monk in a lotus position within the statue. 2014년 연구자들은 약 1,000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을 CT 스캔하면서 놀라운 발견을 했으니 놀랍게도, 불상 안에서 연꽃 자세를 취한 승려의 잘 보존된 유해를 발견한 것이다.이 불상은 11세기 또는 12세기에 만든 것으로 여겨지며 중국 명상 스쿨 Chinese Med.. 2025. 3. 7.
[톨룬드 맨] 마차 기차로 옮긴 늪지 미라 [톨룬드 맨] 마차 기차로 옮긴 늪지 미라 https://heriworld.com/818 [톨룬트 맨] 마차 기차로 옮긴 늪지 미라2000년 이상 평화롭게 쉬고 있던 곳에서 발견된 이 Tollund Man을 옮길 때, 발견 후 시신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P. V. 글롭스Globs 요청에 따라 사람들은 큰 상자를 만들었다. 이 발굴을 참관한 사람은heriworld.com 2025. 3. 7.
이강회와 정약용(2005) 편집자주) 앞 문순득 관련 기사 덧붙여 과거 옛 내 기사 중에 덤으로 아래가 걸려 전재한다. 내가 기자로서 이런 기사도 썼나 한다. 영혼이 없어 써서 그런가? 그 옛날 일이 다 흐리멍덩하다.Out of sight out of mind *** "연암과 초정의 북학파 사상, 전라도까지 침투" 기사전송 2005-06-29 05:00 안대회 교수, 다산 제자 이강회 연구 통해 규명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우리는 매양 한산의 승리(閑山之勝)를 사방에 요란하게 뻐기면서 말하기를 우리 배는 질박하고 저네들 배는 정교하고 부드러우니 질박한 배로 부드러운 배를 부딛치면 도처에서 부숴지기 때문에 이겼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지혜와 덕을 겸비한 이충무(李忠武)가 출현하여 출기입신(出奇入神)한 전.. 2025. 3. 7.
문순득을 기폭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12년 특별전 편집자주) 문순득 관련 논급을 오늘 다른 분 글을 통해 접하다가 문득 그 옛날 내가 기자시절 쓴 기사가 생각나 검색해서 다시 전재한다. 작성시점을 보니 벌써 13년이나 흘렀다. 2012년 기사다. 당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지금의 국립해양유산연구소가 주최한 이 특별전이 중요한 이유는 이후 관련 연구 기폭제가 되었기 때문이다.물론 선행 연구를 발판으로 저 기획을 하게 되었지만 저 일은 문순득을 대중의 장으로 불러낸 단초였다.이 의미를 부각해야 한다. *** 부활하는 흑산도 홍어장수 문순득 송고 2012-09-19 10:58 국립애양문화재연구소 특별전(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홍어장수 문순득文淳得(1777~1847)은 1802년 신안군 흑산도 인근 바다를 표류하다가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를 거쳐.. 2025.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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